우리는 갑도 되고 을도 된다
우리는 갑도 되고 을도 된다
  • 변은샘(영어영문·졸)
  • 승인 2018.06.07 10:24
  • 호수 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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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아홉살,  아빠와 먹으러 갔던 고깃집에서의 일이다. 그 날은 아빠가 회사에서 손님에게 한 소리를 들어 심기가 매우 심상한 날이었다. 고기를 먹으러 둘만 나갔던 것도 그런 심상함을 고스란히 엄마에게 풀어냈기 때문이었다. 결국 화가 난 엄마는 ‘알아서 먹어’로 상황을 종료시켰다. 집에서 저녁밥을 얻어먹지 못한 아빠는 내 손을 끌고 고깃집으로 갔다. 가는 내내 슬금슬금 눈치를 봤던 기억이 난다.

사단은 고깃집에서 벌어졌다. 주문하기 위해 서있는 아줌마에게 아빠는 잔뜩 성난 얼굴로 퉁명스럽게 메뉴판의 항정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둘’ 하고 말했다. 하필 주문을 받은 그 아줌마는 부산스럽게 종종거릴 뿐 일은 굉장히 느렸다. 주문한지 20분이 지나도록 밑반찬도 나오지 않은 걸 보면 그랬다. 나는 아빠 목울대에서 인중까지 분노게이지가 서서히 차오르는 걸 보고 있었다. 결국 미간에 성깔이 일렁거릴 때쯤 아빠의 화가 터졌다. 주문을 받은 아줌마가 달려오고 주방 사람들이 소리에 뛰쳐나오고 결국 사장아저씨가 나와 굽신거리면서 항정살을 1인분 더 주겠다고 할 때쯤 아빠 성깔이 미간에서 인중으로 내려갔다.

다음 사단은 내가 냈다. 이제 내가 화가 났기 때문이다. 나는 회사에서 갑질을 당해 기분이 속상한 아빠가 또 다른 갑질로 다른 사람을 속상하게 만든 것에 화가 났다. 결국 이번엔 내 성깔이 터졌다. “아빠도 손님한테 회사물건 팔면서 왜 고기 파는 아줌마한테 함부로 해? 아빠한테도 그러면 좋겠어?” 혹시 아빠가 화낼까봐 무서워, 그러나 또 너무 화가 나서 오들오들 떨리는 목소리로 쏘아붙이다가 내가 거기서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한마디, “나 집 갈래”를 던지고 식당을 나왔다.

갑을은 사람 자체가 아니라 사람에게 어떠한 역할이 부여됐을 때 가능해진다. 그런데 그 역할이라는 것이 고정된 것이 아니다. 개인으로 만났으면 무례하지 못했을 식당아줌마한테 아빠가 화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아빠는 손님, 아줌마는 종업원이라는 역할을 식당 안에서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정’주부이자 동시에 가정‘주부’였던 엄마에게는 저녁밥을 차려주는 역할이 있었기에 ‘알아서 먹어’가 아빠의 입을 막는 말이 될 수 있었다. 영악하게도 나도 내게 부여된 역할을 잘 알고 있었다. 어른이자 아빠에게 나는 말대꾸를 할 위치에 놓여있지 않았지만 나는 그 때 내가 아빠와 밥을 먹어줄 유일한 사람이자 아빠가 내 미움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의 '집 갈래'가 힘을 얻은 배경이었다. 갑과 을은 이렇게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 속에서 재정의 된다.

따라서 갑을이 정의되는 것은 ‘일터권력’이 아니라 ‘상황’ 속에서다. 얼마 전 한진에서는 전에 일했던 운전기사들에게 연락을 취해 돈으로 이들의 폭로를 막으려 했다. 운전기사들은 이를 고스란히 기자들에게 폭로했다. 조현민이나 이명희는 갑을관계가 일터권력으로만 완성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전에 한진의 기사였던 사람들은 이제 폭로자가 되었다. 이제 전 운전기사는 폭로자가, 과거 상급자였던 한진은 회유자로 위치하고 있다.

사람들은 각자 다양한 위치성을 가진다. 갑을관계는 자신이 가진 단 한가지 위치가 스스로 강하게 부각되어 자신의 위치가 변동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때 만들어진다. 갑을이 단지 한진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학교 안에서만 해도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갑이 되고 을도 된다. 학점을 주는 교수에게는 을이다가 새로 들어와 멋모르는 후배에게 순식간에 갑이 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우리는 방금 전에 내가 을이었던 사실을 순식간에 망각한다. 우리 안에 다양한 위치성을 인지하고 있을 때 우리는 언제든 상대도 나의 갑도 되고 을도 될 수 있는 사람임을 깨닫을 수 있다.

아홉 살 그 때 일 이후로 아빠는 내 앞에서 주문을 할 때는 슬금, 내 눈치를 보고 보다 정중히 주문한다. 그 때 그 일이 나도 모르는 새 나를 갑으로 만든 셈이다. 계속 터져나오는 폭로는 많은 조현민과 이명희들을 이제 슬금, 눈치를 보고 보다 정중히 사람들을 대하게 만들 것이다. 한진은 변하는 상황 속에서 일터에서 찰나의 갑을관계가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 보여준다. 영원한 갑과 을이 없다는 점에서 갑을이라는 말 자체가 형체없는 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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