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는 계속된다
축제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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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6.07 10:26
  • 호수 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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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가 끝났다. 2018학년도 아우름제는 ‘청춘의 마지막 조각’을 주제로 지난 5월 24일과 25일 양일간 열렸다. 축제 기간 동안 학생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고, 학생은 물론이고 교직원과 동네 주민까지 마음껏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드는 즐거움을 누렸다. 특히 이번 축제는 술 판매가 금지되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판매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술판이 벌어지자 참가자들의 흥은 더욱 고조되었다는 후문도 들렸다. 상고시대 동예의 축제였던 ‘무천’에 관한 기록에도 있듯이 자고로 축제란 ‘무리가 모여서 노래하고 춤추며 술을 마시는데 밤낮 쉬지 않는’ 행위임은 분명한가보다.

원래 축제(祝祭)는 신적인 존재에게 기원을 한다는 의미의 축(祝)과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의 제(祭)의 합성어이다. 축제는 신성한 종교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현대로 오면서 축제는 종교적 의미보다는 유희적 활동으로도 그 기능을 이어오고 있다. 플라톤은 고대 그리스의 축제를 ‘삶의 역경을 일시적으로 잊고 휴식을 취하는 인간과 신의 교섭의 시간이자 장소’라고 표현했으며 네덜란드 인류학자인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축제를 ‘실제 삶의 영역 밖에서 비롯되는 일탈에서 오는 자유와 즐거움’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철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미하일 바흐찐(Mikhail Bakhtin) 역시 ‘엄숙한 문화’의 반대편에 위치한 ‘웃음의 문화’로 축제를 명명한다. 공식적인 문화인 엄숙함은 지배계급이 생각하는 관점을 드러내며 교육적인 기능을 수행했다. 때문에 비공식적인 문화인 축제는 ‘제 2의 세계’를 구축하며 공식적인 세계를 뒤집거나 전복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연극학자인 빅터 터너(Victor Turner)는 이와 같은 ‘제 2의 세계’를 인간 사회가 현실에서 채우지 못하는 것을 채우기 위해 만들어진 세계라고 정의한다. 이른바 축제의 시간에는 현실의 원리에서 잠시 벗어나 억압으로부터 일시적 해방을 맛보려는 인간의 욕망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축제가 시작되던 날, 극장에서는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를 개봉했다. 미스 캐스팅, 감독 교체설, 80% 이상의 재촬영, 다스 베이더의 부재, <스타워즈> 시리즈와의 장르적 연계성 등 영화 역사상 유례없는 갈등과 억측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흥미롭고 볼만하다. 이 영화는 진지함으로 가득 찬 <스타워즈> 시리즈의 캐릭터들 중에서 유일하게 허당끼가 있어 인간적인 매력도가 높은 캐릭터인 한 솔로의 이야기이다. 한 솔로가 어떻게 ‘솔로’라는 성을 얻게 되었는지, 영혼의 단짝과도 같은 츄이와 랜도를 만나고 밀레니엄 팔콘을 얻어 꿈꾸던 파일럿이 되었는지를 스토리텔링한다. <스타워즈>를 애정하는 관객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한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에 대해 말한다. <스타워즈>의 중요한 인물들은 매번 두 개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두 개의 길 중 어느 길이 더 옳은 길인지 더 편안한 길인지는 가보지 않고는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스타워즈>의 인문들은 그저 “원하는 대로”라는 직관적인 판단으로 결정을 내리고 그 길에 들어서게 되고 주변 인물들은 그 선택을 존중한다.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홀로 탈출하게 된 한 솔로에게 연인 ‘키라’는 “떠나라”고 말한다. 스포일러라 말할 수는 없지만 ‘키라’ 역시 자신만의 길을 선택하고 모험을 떠난다. 한 솔로 역시 츄이가 자신의 종족을 돕기 위해 솔로를 떠나려고 할 때 그의 선택을 존중한다. <새로운 희망>에서 레아 공주는 한 솔로가 반란군을 떠나자 “사람은 자신의 길을 따르는 법이죠. 그 누구도 그를 대신해서 선택할 수는 없어요”라고 말한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라는 말은 우리 삶의 가장 큰 격려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답답하고 불투명한 미래에 겁이 날 때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는 가장 큰 선물이다. <스타워즈>와 같은 모험담에서 선택의 자유가 가능한 이유는 용서와 구원 때문이다. 언제든 용서받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용기를 내어보라는 것이다. 원하는 대로 저질러보고 혹여라도 바라던 결과를 마주할 수 없을 때에는 구원받으면 된다. 

곧 방학이다. 자유를 짓누르던 학업과 일상에서 벗어날 시간이다. 무엇을 생각하든, 어떤 생활을 계획하든 원하는 대로 해볼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도 되는 시간이다. 우리에게도 용서와 구원은 언제든 열려있다. 마음이 울부짓는 진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용기를 내보는 것,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고 알차고 의미있게 만들어줄 것이다. 축제는 끝나지 않았다. 자유가 있는 한 축제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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