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훈 난민연구센터소장, “난민은 우리와 같은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송영훈 난민연구센터소장, “난민은 우리와 같은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 김다빈 기자
  • 승인 2018.08.29 00:52
  • 호수 3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송영훈 교수

난민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전쟁이나 이념 갈등으로 발생한 재화를 피하기 위해 다른 나라, 지방으로 가는 사람’이다. 그야말로 자국을 포기하고 망명한 자들인 것이다. 국제사회 내에서도 난민은 ‘인도적 차원에서 수용해야할 집단’으로 여겨진다. 심지어 이들을 대하는 모습에 따라 한 국가의 국제적 이미지가 평가되기도 한다.

제주도에 예멘 난민이 500명 넘게 들어왔다. 그리고 이번 달 초 청와대 예민 난민 반대 국민 청원은 71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하지만 난민을 수용하느냐, 마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근거와 고찰 없는 반대는 혐오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이 누구인지, 이렇게 먼 나라까지 온 이유가 무엇인지에 궁금증을 가져보아야 한다. -편집자주-

푹푹 찌는 무더운 8월의 어느 날, 세 시간에 걸쳐 강원도 춘천에 위치한 강원대학교를 찾았다. 그곳에서 난민연구센터소장을 맡고 있는 송영훈(정치외교) 교수를 만났다. 그는 자신을 ‘난민 문제 연구자’라 불러 달라했다. “다름을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가치관의 소유자와 나눈 대화를 소개한다.

Q1 우리나라 난민 인정률은 4%로 알려져 있다. 심사기준이 엄격해 보이는데 사실인가.
(*난민 인정률: 난민 심사를 통해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들의 비율)
난민 인정률만 가지고는 난민심사기준의 엄격한 정도를 판단할 수 없다. 법무부 통계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난민 신청자 100명 중 3.8~4% 정도만 난민 인정을 받는다. 흔히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OECD 국가)도 난민 인정률이 일정하지 않다. 약 10%에서 60%로 편차가 크다.

Q2 다른 나라 난민 인정사례가 궁금하다.
예상치 못한 전쟁이 발생하면 난민들은 주변국으로 이동하게 된다. 따라서 독일이나 프랑스는 당연히 난민 인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반면 상대적으로 난민심사기준이 엄격한 영국은 애초에 난민심사를 통과할만한 사람들만 간다. 때문에 영국의 난민 신청자는 적지만, 난민 인정률은 높게 측정된다. 스웨덴도 이와 마찬가지다.
기계적으로 인정률을 높이려 하다보면 난민정책의 의미를 잃을 수 있다. 난민정책은 ‘우리는 난민들을 얼마나 잘 지원하고 있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Q3 실제로 우리나라 난민 인정자들은 어떤 복지를 받나?
생계비 지원이 필요한 난민 인정자에게 1인당 43만 원을 지원한다. 물론 수입이 생기게 될 경우 지원은 중단된다. 난민 심사를 거치지 않은 난민 예정자들에게는 아무런 생계비를 지원하지 않는다. 실제 제주 예멘 난민 신청자들은 생계비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고, 취업이 제한된 상태다. 이번에 특별히 제주 예멘 난민의 취업 제한 기간을 6개월에서 2개월로 줄였지만, 이것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난민 신청자의 취업활동에 대한 법’에 의하면 난민신청자는 난민 인정을 받기 전 6개월 동안 취업을 할 수 없다. 일할 능력이 없거나, 그러한 부양자를 둔 사람은 예외다. 하지만 지난달 1일, 국가인권위원회는 “난민 심사기간 동안 생계·주거 문제에 대해 국가차원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정부는 이러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번에만 특별히 취업제한 기간을 2개월로 줄였다.)

Q4 지난달 7일 자유한국당 강석호 국회의원이 ‘가짜 브로커 엄벌’ 등 난민제도 악용 방지를 위한 ‘난민 심사 기준 강화 법안’을 발의했다.
가짜 브로커를 엄벌하기 위해 여러 제도가 필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난민제도 악용방지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난민심사기준강화가 아니라, 심사절차의 구체화이다. 법을 발의한 ‘그분’들은 실제 난민 현장에 가보지도 않았고, 포퓰리즘(본래 목적보다 대중의 인기를 목적으로 하는 정치형태)적인 사고를 하는 분들이다. 마치 난민을 잠재적 범죄자처럼 취급하는 담론은 이방인 혐오에 불과하다.

Q5 지난 14일 세계 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난민을 단순한 지원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권리와 의무를 다하는 공동체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셨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여기에서 ‘권리와 의무’는 선거권과 같은 개념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들에게도 자유권이 보장 돼야 한다. 발언할 수 있고, 취업 기회에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으며,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 말이다. 우리가 난민을 지원받아야 하는 대상이라고만 생각한다면 그들의 진정한 자립이 어려워질 수 있다. 그리고 기존의 공동체에게 난민은 지원해야만 하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Q6 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드린다.
모든 난민은 성공적인 정착을 해야 하나?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도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모두 성공하는 게 아니듯, 난민들도 그렇다. 성공하고 잘 될 ‘기회’를 주어야 하지 그 난민들이 무조건 성공하고 잘 돼야만 하는 게 아니다. 물론 난민들이 우리와 100% 동등한 기회를 가질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이 자신들의 꿈을 향해 걸어갈 때 최소한 차별 받지 않고 경쟁에 참여할 기회는 주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