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도 100을 향한 '빽'
순도 100을 향한 '빽'
  • 오명진 기자
  • 승인 2018.08.29 02:05
  • 호수 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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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명진 기자

기자들에게 퇴고 요청하는 일명 ‘빽’ 기록을 경신했다. 그런데 앞으로 얼마나 더 갱신할지 모르겠다. 무한한 퇴고 가능성을 가진 이들이다. 마감주인데도 원고 안 주고 해맑게 ‘언니~’하며 조잘거리는 기자들이 사악해 보였다. 신기하게도 욕을 하고 있는데 웃음이 난다. 분명 지난 한 주는 지옥이었는데. 애정이 있으니 이렇겠지 싶다. 오늘은 날이 밝기 전 마감을 끝냈다. 그래서 내 엔도르핀 수치는 천장을 뚫는다. 이번 브리핑에서는 기자들의 만행을 만천하에 드러내겠다고 다짐하였는데 기분이 너무 좋다.

그래서 학보사는 힘들기만 한 곳이라 할 수가 없다. 힘들어도 그만큼 상응하는 보람이 찾아온다. 이 감정을 기자들과 공유할 날이 오길 고대하기에 할 말은 해야겠다. 아직 힘듦을 겪어보지 않은 기자가 수두룩하다. 더 책임감을 느끼고 열심히 하라 말해주고 싶다. 학보사 기자라는 것만으로도 그럴 명분은 충분하다.

기자들은 지금 ‘나 자신 이름을 걸고 나가는 글에 얼마나 자신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 내가 온전히 쓴 글의 순도를 100이라 쳤을 때, 마감을 마치고 종이에 찍혀 나온 내 글의 순도는 어느 정도인지. 이번 310호에 진짜 내 글은 얼마나 있는지. 충분히 고민하고,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정립하고 쓴 글은 내 글이기 마련이다. 누구의 피드백을 받아 고쳐도 내 글로 보인다.

나도 글을 잘 쓴다고 자부할 수 없다. 한석봉 어머니처럼 눈 감고 자판을 잘 두드리면 그렇다 하겠지만 말이다. 다만 남들에게 내 말을 잘 전달하기 위해 깔끔하게 쓰려 노력한다. 말보다 글에 힘이 있는 편인데, 글조차 못 쓰면 어쩌란 말인가 싶어서. 학보사에 들어와 부단히 노력하고 연습하고 읽었다. 모르는 게 나오면 무지에 부끄러움을 느껴 그 감정 자체를 앎으로 덮으려 했다.

2년 전 수습 때 겪은 일이 하나 있다. ‘스트레이트 단신’ 형식도 몰랐던 시절이다. 기자가 꿈이라 학보사에 들어온 것도 아니었고, 처음이니까 대충 어디서 본 기사처럼, 비판적이게, 그럴듯하게 하면 될 줄 알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국장한테 바로 빽 당했다. “이렇게 쓰는 거 아니야. 너 스트레이트는 알아?”라는 국장님 말에 그 길로 곧장 도서관을 갔다. 충격받고 자료 검색란에 ‘기사 작성’을 입력했다. 그렇게 처음 접한 기사 교재가 이재경이 지은 <기사 작성의 기초>다. 브리핑을 읽으며 책 제목에 형광펜 치는 기자들 모습이 상상돼 기쁘다. 누군가 실제로 행한다면 그를 향한 국장의 애정 공세는 물론이고, 당신은 자신에 대한 애정도로 마리아관 옥상을 뚫을 것이다.

이번 호 브리핑 제목은 ‘우리, 손으로 똥 싸지 말자’다. 지난 금요일에 학보사 나온 기자들은 알 테다. 앞으로 글 못 써오면 빽 주는 시늉과 함께 “너! 손으로 똥 싸지 마!”하자 장난 반 진심 반 협의한 사실을. 정말 우리 손으로 똥 싸지 말자. 똥은 자기가 싸도 더럽다. 남이 싸면 더 더럽고. 만지기조차 싫어서 방치할 것이다. 학보 만드는 사람들이 손으로 똥 싸면 그게 똥 만드는 거다. 똥슈탈트 붕괴가 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겠지 싶다. 기자들에게 충격요법으로 작용한다면 좋은 일이다.

두 달 공백 때문에 손이 근질거린다. 기자들에게 공식적으로 하고 싶던 말이 많았던 탓인지 티엠아이(투 머치 인포메이션)를 방출했다. 더 늦기 전에 학보 소개를 해야겠다. 이번 호는 독자 퍼스트형 학보다. 방학 때 어쩌다 기자협회보의 <벽을 허물었다, 독자가 다가왔다> 기사를 읽게 됐다. 가톨릭대학보도 마리아관 구석에서 쌓아올린 벽을 허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저번 학기 대비 오피니언 한 면을 더 늘려 독자들의 참여 기회를 확대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기획한 세 교정 소통 톡 ‘가가오톡’, 기자 무한정 돌려막기 대신 학생 기고자를 데려오기로 한 ‘동지이몽’,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따온 생활법률 알림 코너 ‘그 법이 알고 싶다’와 독자 참여 제고가 최종 목적인 ‘학보 돋보기’까지. ‘인생 찻집’과 ‘[ ]人’은 브리핑 다음 지면에 설명되어 있으니 참고하시라. 장장 이틀에 걸친 워크숍에서 탄생한 아이템들이다.

어느 학보사든지 개강호 낼 때마다 하는 말이겠지만 정말 이번 호는 알차다. 전할 학내 소식은 아직 없어도 독자들이 알아야 할 아이템들을 선별해 기획했다. 최저임금, 예멘 난민, 히로시마 한국인 원폭 피해자 등. 이제 독자만 늘어나 주면 된다. 독자로 숨 쉬는 학보이기에 독자가 간절하다. 다음 호에도 “손으로 똥 싸지 않을 테니, 다가와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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