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 그렇게 우리는 더 큰 사회적 존재가 된다
낯섦, 그렇게 우리는 더 큰 사회적 존재가 된다
  • 승인 2018.08.29 02:14
  • 호수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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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주도에 예멘 출신 난민들이 유입되면서 난민 수용에 대한 찬반양론의 여론이 시끄럽게 부딪혔다. 논쟁 초기에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는 반대 여론이 약간 우세하였다. 6월 20일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반대 49.1%, 찬성 39.0%로 약 10%P 차이를 보였다. 논쟁의 진행 과정에서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난민 범죄의 증가와 난민의 취업에 따른 일자리 부족에 대해 걱정하였다. 국가는 자국민의 안전과 보호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난민 수용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난민에 의한 범죄 증가와 혼란은 가짜 뉴스에 근거한 과장된 것이라 보았다. 우리 역시 과거 난민이었다는 역사적 기억을 소환하며 보편적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2주 후 다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찬반의 격차는 반대 53.4%대 찬성 37.4%로 미세하지만, 더욱 벌어졌다.

예멘 난민에 대해 우리는 왜 이리도 싸늘한 반응을 보이는 걸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예멘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그리고 예멘인을 만나 본 적은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아마 대부분은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 거의 알지 못했을 것이며, 만나본 적이 있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낯선 존재와의 조우. 문제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지독히도 사회적 존재이다. 여기서 사회적이라는 것은 전체 인류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우리의 선배 인류에게 사회란 구체적 삶을 공유하며 제한된 자원을 함께 수렵·채집하고 병원균에 대처할만한 면역력을 함께 키운, 혈연에 근거한 소규모의 내집단에 한정되었다. 이들에게 낯선 외부인은 자원을 빼앗는 약탈자였고 면역력 없는 병원균을 전파하는 침입자였다.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할 때 그들에게 묻어간 천연두가 원주민 상당수를 죽음에 이르게 했음을 기억해보라.) 그들은 내집단의 안전을 위해 낯선 외부인에 대해서 물리적으로 방어하고 공격하였다. 심리적으로는 위험에 대한 공포와 혐오라는 시스템을 낳았다. 외집단에 대한 공포와 혐오의 심리는 그렇게 형성되었다.

물론 이제 내집단과 외집단의 구분이 예전처럼 단순하지는 않다. 낯선 사람이 우리의 자원을 빼앗고 병원균을 전파시킬 것이라 의식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집단과 외집단을 구분하고 외집단을 두려워하고 혐오하는 흔적은 여전히 살아있다. 문화와 양육의 영향을 받지 않은 영아조차도 익숙한 대상을 선호하고 낯선 것을 거부하는 행동을 보인다는 결과는 이런 경향이 학습과 의식 이전에 형성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모르고 낯설수록 외집단에 대한 그러한 감정은 더욱 즉각적이고 강해진다. 감정은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이다. 그래서 더 힘이 세다. 보편적 인권과 공동체 의식이란 인간의 숭고한 가치에 대해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다만 이것은 상당한 성찰이 필요하며 간접적이고 추상적이다. 대니얼 카너먼이 이야기한 직관, 감정에 근거한 자동적인 시스템(시스템 1)이 성찰과 숙고에 근거한 의도적 시스템(시스템 2)에 비해 우선한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사회적 상황이 한 몫 더했다. ‘헬조선’이라 부를 정도로 어려워진 사회·경제적 상황에서 청년층은 가장 큰 박탈감을 느낀다. 심리적으로 고갈된 상황에서 친 사회적 행동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시사하듯 심리적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외집단에 대한 호의가 생기기는 쉽지 않다.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를 이긴 팀을 형제국이라 부르며 호의적 태도를 보인 것은 3·4위 결정전이었지 예선전은 아니었다. 이번 난민 수용과 관련한 여론 조사에서 20대의 반대 여론이 더욱 높았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외집단에 대한 공포와 혐오는 변화가 불가능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 공포와 혐오의 심리 시스템이 존재하지만 동시에 공감의 심리 시스템도 존재한다. 거울 뉴런과 같은 존재는 인간이 타인의 마음을 읽으며 감정을 공감할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인용하여 유명해진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되게 보게 된다”는 문구는 인간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그들을 알고 함께 협력하고 공감할 기회가 늘어난다면 외집단에 대한 수용은 인권이라는 추상적인 당위 대신 구체적인 경험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더 큰 사회적 존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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