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존인가요, 전시회인가요?
포토존인가요, 전시회인가요?
  • 지선영 기자
  • 승인 2018.09.18 22:54
  • 호수 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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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위해 오랜만에 전시회를 찾았다. 다양한 예술을 접하려 한 달에 한 번꼴로 방문했던 미술관이었지만, 어느샌가 사진관이 되어버린 전시 관람 문화에 자연스레 발길은 뜸해졌다. 오늘 역시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일부러 사람이 없는 오전 시간에 방문했음에도 미술관은 북새통이었다. 1초에 한 번씩 셔터 음이 울리고, 작품까지 막아서며 인증샷을 찍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카메라에서 ‘다다다다’하는 연속 촬영음이 울려 퍼져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은 하나 없어 보였다. 개중에는 바닥에 설치 전시된 작품까지 밟아가며 사진을 찍던 이도 있었다. 그들은 입장하기 전, 플래시 사용과 영상 촬영 금지를 사전 고지하던 안내원들의 부탁을 새까맣게 잊은 듯했다.


대중을 움직이는 ‘이미지’, ‘과시욕’
현대인들은 더 이상 ‘찰나’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어디서나 사진을 찍어 기록한다. 그곳이 전시회일지라도 예외는 없다. 이제 집에 앉아 블로그로 ‘○○○ 전시 후기’만 검색해도 전시회 모든 작품을 미리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대중들은 육안 대신 카메라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기 시작한 듯하다.

또 다른 현대인의 특성은 무엇일까. 바로 글보다 이미지 한 장으로 스스로를 대변한다는 것이다. SNS에 자신의 사진을 1:1 비율로 맞춰 게시하며, 남들에게 비칠 이미지를 직접 구축하고 형성한다. 사진작가 코코 카피탄은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하고자 사진을 이용하는 셈”이라 했다. 이제 사진은 ‘기록용’은 물론 정체성을 표현하는 일종의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알렉스카츠 전과 자코메티 전 등 굵직한 전시 도슨트를 맡았던 김찬용 전시해설가. 그는 사진을 중시하는 현대인들의 현상을 이렇게 분석했다. “90년대와 달리 이제 핸드폰에 내장된 디지털카메라에 의해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가 보편화되었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레 삶에 대한 기록을 글 보단 이미지로 남기는 시대가 도래했다 볼 수 있죠. 그 과정에 모두와 공유하는 나의 일상이라는 특징이 있다 보니, 과시욕도 일면 작용했으리라 생각됩니다.”


현대 전시회, 이대로 괜찮을까                     
이제 비평과 감상이 목적인 전시회는 대중들의 관심을 받기 어려워졌다. 전시 콘텐츠는 ‘찍기 위해 올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에 맞춰 기획되고 있다. 대중들의 과시 욕구를 충족시켜야만 대중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에 ‘화제성만 앞세운 자극적인 전시회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는 개탄의 목소리도 들린다. 전시 기획들이 마케팅과 이미지에만 집중하여 단순 일회성에 그칠 뿐이라는 것이다.
김영미 작가 역시 그의 저서 <젊은 기획자에게 묻다>에서 “전시의 상당수가 해외의 유명 전시를 그대로 들여오거나, 테마 위주로 급조한 함량 미달의 전시를 과대 홍보하며 한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며 “겉으로 드러나는 매체 위주로만 구성하고 있는 이런 전시들은 철학이나 콘텐츠를 풀어내는 깊이가 부족해 아쉬움이 따른다”고 현대 전시회의 한계점을 언급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 자체를 막연히 잘못됐다고 비판할 수만은 없다. 시대가 변화하며 자연스레 나타난 현상이다. 전시산업 관계자의 입장으로 바꿔 생각해보면, 이러한 전시기획도 새로이 등장한 타깃의 ‘과시 욕구’ 충족 방향을 찾은 것뿐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은 변화하는 전시문화의 흐름 역행이 아니다. ‘새로운 형태의 대중문화’를 얼마나 가치 있고 효과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 이를 깊게 고민해야 한다.


‘나’부터 실천해야하는 에티켓
김찬용 전시해설가는 “주최 측의 노력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한다. 전시 에티켓을 관람객이 충분히 인지할 수 있도록 홍보와 스태프 교육이 사전에 이루어져야 한다”며 전시문화 기획·주최자의 올바른 역할 수행이 필수로 전제되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미술관은 매시간 진행하던 도슨트의 작품 해설을 과감하게 줄이는 추세다. 그 대신 애플리케이션과 큐알 코드를 활용한 스마트 해설 방식이 도입하고 있다. 관객 스스로 작품을 느끼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이 때문에 관객 스스로의 ‘에티켓 지키기’도 과거보다 더욱 중요해졌다. 그러나 현실은 음식물 반입 금지, 플래시 촬영 금지 등 가장 기본적인 에티켓들도 잘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다. 기자가 다녀온 취재 현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화생활’은 현대인의 팍팍한 삶에 내리는 단비다. 하지만 관객들 서로 간 배려가 전무하다면 비는 그치고 만다. 더 달콤한 단비를 위하여 전달자와 수용자는 스스로 문화생활의 기본적인 에티켓을 지켜나가야 한다. 각 전시회 기획과 공간에 맞는 감상 매너 숙지를 더해보자. 전시문화의 장(場)은 더욱 쾌적하고도 넓게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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