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로그] 어둠 속의 대화: 보이는 곳에선 볼 수 없었던 것들
[저널로그] 어둠 속의 대화: 보이는 곳에선 볼 수 없었던 것들
  • 박서연 기자
  • 승인 2018.09.18 23:18
  • 호수 3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람들은 빛이 있는 곳에서는 무엇이든 볼 수 있다고 믿는다. 나 또한 그랬다. 그러나 특별한 체험을 하고 온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역설적이게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만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 

<어둠 속의 대화>는 빛이 완벽히 차단된 암흑 속에서 로드 마스터와 함께 7개 테마를 체험하는 100분 동안의 여정이다. 1988년 독일 프랑크프르트에서 시작된 이 전시는 지난 30년간 32개국 160개 지역에서 진행되었다. 한국은 2007년 예술의 전당을 시작으로, 현재 서울 북촌에 전용관을 두고 있다.

핸드폰, 시계 등 빛이 새어 나올 수 있는 모든 물건은 사물함에 보관해야 한다. 손에는 안내원이 나누어준 지팡이만 쥘 수 있다. 그렇게 어둠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처음 10분 동안은 숨 막히는 어둠이 너무 답답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으며 지팡이에 온몸을 맡겨 한 걸음 한 걸음 떼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점차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을 사용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촉각을 사용하여 대상 파악에 집중했고, 청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로드 마스터, 그리고 같이 체험을 하는 일행들과 난 도움을 주고받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숨 막힐 듯 답답하던 암흑의 공간은 포근하고 안정적인 공간으로 바뀌었다. 암흑 아래서 우리는 모두 같았다. 시각이 제한되었기에 편견 없이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그동안 사람을 사귀는 데 있어서 시각적인 부분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빛이 다 차단된 어둠 속에서 오히려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 놓이자, 평소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시각장애인이 느낄 불편함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어둠 속의 대화>는 안전을 위해 벽이나 높은 턱 같은 위험한 요소를 설계하지 않았지만, 현실에선 무분별한 전봇대, 파손된 점자블록 등이 시각장애인들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준다. 실제로 2017년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16년 교통약자 이동 편의실태조사’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의 보도 이용만족도는 46점으로 비장애인 평균 58점에 비해 낮다. 보도 곳곳에 안전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보이는 곳에선 느끼지 못했던 문제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들어가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100분 동안의 여정을 마치고 빛을 다시 마주했다. 빛이 참 반가우면서도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당연하게 누리던 빛이 아닌, 주어지는 빛을 본 <어둠 속의 대화>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