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기본역량 진단 평가와 우리 대학의 진로
대학 기본역량 진단 평가와 우리 대학의 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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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9.18 23:58
  • 호수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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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지난 3일 대학구조개혁위원회에서 심의한 '2018년 대학 기본역량 진단' 최종 결과를 각 대학에 통보했다. 6월 20일 1단계 평가 발표와 8월 23일 2단계 평가 발표를 거쳐 각 대학의 이의 신청을 검토한 후 그 결과를 최종 확정한 것이다. 평가대상 4년제 일반대학의 64% 정도에 해당하는 120개 대학이 최상위 등급인 ‘자율개선 대학’으로 확정되었으나 30개 대학은 정원감축을 권고받는 ‘역량 강화대학’으로, 또 10개 대학은 정원감축 권고와 함께 재정지원 제한을 받는 ‘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확정된 것이다. 이에 따라 이른바 대학 살생부라고 일컬어졌던 대학 진단평가의 후폭풍은 예상보다 훨씬 거셌다. 기대 이하의 등급을 받은 대학들은 정원감축 권고와 재정지원 제한은 물론 학교 이미지의 실추와 이에 따른 입학지원자 감소라는 2중 내지는 3중고에 시달려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들 대학의 저항과 반발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였다. 교육부의 평가에 강력히 반발하여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였고 소송을 불사하겠다는 구호도 등장했다. 일부에서는 총장 및 보직자들이 사퇴하는 내홍을 치르기도 했다. 우리 대학은 자율개선 대학으로 평가받아 정원감축에 대한 압박이 없이 교육부의 재정지원을 받게 되었고 학생들은 국가장학금과 함께 학자금 대출을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늘 학생 수 부족과 재정적 압박에 시달려온 우리 대학으로서는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과가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한국의 대학들이 평가에 따른 탄식과 누적된 피로감을 토로하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되어버린 듯하다. 박근혜 정부 시절 ‘대학구조개혁평가’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 이제 대학들은 ‘대학역량진단평가’에 시달려야 한다. 사실 제목이 좀 차이가 날 뿐 큰 틀에서 보자면 전혀 다른 성격의 평가도 아니다. 대학평가에 관한 한 정권이 바뀐들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대학들은 왜 끊임없이 이런 종류의 평가를 받아야만 하는가? 자율에 대한 침해인가? 아니면 교육에 대한 통제인가? 그러나 이와 같은 단편적 진단에 앞서 대학 평가의 배경과 목적을 살펴보면 오늘 한국의 대학들이 처해있는 고단하고도 절박한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진단평가의 기본 취지는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인한 미충원 등에 대처하고, 양적 성장에 치우친 고등교육의 질적 수준 제고가 시급하다는 판단과, 대학 경쟁력의 주요 요인 중 하나인 재정지원을 양질의 대학에 집중하여, 대학 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되어 있다.

 

사실 저출산에 따른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는 핵폭탄급 위력으로 대학뿐 아니라 오늘의 한국 사회 전 분야를 강타하고 있다. 그것은 산업화 이후 우리가 겪어왔던 다양한 형태의 사회변동 충격 그 이상이 되고 있다. 흔히 학령인구의 감소라는 말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 변화는 오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대학 위기의 직접적인 진원지가 되고 있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가령 올해 예상되는 신생아 수를 33만 명으로 가정해 18년 후 최대 대학진학률 80%로 잡아본다면 현재 48만 명에 가까운 대학 정원이 어떤 결과는 가져올 것인가는 물 보듯 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향후 한국 대학의 절반은 소멸할 것이라는 예측이 전혀 과장된 말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대학의 위기를 가중해온 요인은 실로 다양하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과거 정권들의 반복된 실책은 물론이고 양적 팽창에만 몰두한 방만한 대학 운영, 한국 대학사회의 고질병이 되다시피 한 사학재단의 비리와 변칙, 등록금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국 사학들의 구조적 요인들. 이 모든 것들이 오늘의 대학을 위기로 몰아가는 주요 요인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는 대학의 존립 기반 자체를 뿌리째 흔들어놓는다는 점에서 그 근본적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볼 때 작금의 대학 평가는 마땅한 해결책이 부재한 가운데 최소한의 고민을 담아낸 국가행정의 고육책이라고 봄이 타당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 문제의 초점을 교육정책의 실패와 같이 책임소재를 규명하는 일에 맞출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문제의 해결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 또한 자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곧 본격적으로 다가올 이 거대한 쓰나미 앞에서 우리 대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물론 그 답은 쉽지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교육부의 진단평가를 좋은 등급으로 통과하고 신문사의 대학평가에 순위를 올리는 일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이것들이 일시적 위안에 불과한 미봉책에 불과할 뿐이라는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대학은 여러 면에서 불리한 입지를 점유하고 있다. 대학의 규모나 소재지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대학의 인지도나 사회적 영향력이라는 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입학생들은 여전히 경인 지역 출신에 편중되어 있고 통합 이후 20년이 넘었지만 3개 교정은 여전히 제각각 움직이고 있다. 게다가 열악한 재정은 우리 대학의 발목을 잡는 주요 요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나아가 종교적 색채를 강하게 풍기는 대학의 이미지가 미래의 다원주의 시대에 어떤 요인으로 작동할지는 어느 사람도 쉽게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 보건대 분명한 점은 대학의 존립과 생존에 관한 한 우리도 결코 낙관할 처지가 못 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느끼게 되는 이런 위기의식을 늘 존재해 온 터여서 어떻게 보면 전혀 새삼스러울 게 없어 보이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 이런 위기담론은 불행히도 통제와 관리의 수단으로 전락해 대학 운영의 효과적인 방편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예견되는 위기가 분명해 보인다면 지금은 대학 운영의 전 면모를 점검해 보아야 할 시점이 되었다는 얘기다. 이를 통해 우리가 미래의 쓰나미 앞에서 견딜 수 있는 충분한 자생력을 지니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대학의 기초체력은 튼튼한지를 살펴보아야 하고, 취약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고 이를 강화할 방편은 무엇인지를 재단해 보아야 하며, 최악의 경우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한계치는 무엇인지를 면밀히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단기처방이 아니라 중장기적 비전에 의거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해야 하고 해야만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명확히 나눠야 할 것이다. 또한 이것이 진정 중차대한 사안이라면 이 모든 일을 보직자들의 일방적 행정으로만 돌릴 수도 없고 돌려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이 과정에서 학사개편이나 구조조정이 고려될 수 있다면 보직자와 교수 및 학생의 3자 협의체를 구성해 서로의 반목과 불신을 최소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취약학문의 불안감을 해소할 방안도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가운데 획일화된 한국 대학의 현주소 속에서 우리 대학만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그 정체성을 경쟁력으로 삼을 방안이 무엇인지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보다도 경계해야 할 양극단은 성과 지향적 대학 운영방식과 이상주의적 시각이다. 전자가 대학 운영진이 흔히 범하게 되는 오류라고 한다면 후자는 교수들의 보편적 취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바라보는 냉철함과 이를 토대로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열린 시야다. 나의 생각이 아니라, 너와 나 다시 말해 모두의 지혜가 필요한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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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합 2018-10-13 20:21:21
편집장이 쓴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