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옥자는 정말 봉준호만의 '판타지'일까
영화 옥자는 정말 봉준호만의 '판타지'일까
  • 김다빈 기자
  • 승인 2018.10.31 16:20
  • 호수 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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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도 옥자가 있었다
"슈퍼돼지는... 혁명이죠!"라며 프레젠테이션하는 루시. (출처_네이버 영화 스틸컷)

영화 <옥자>는 미란도 그룹의 회장 루시의 프레젠테이션으로 시작된다. 루시는 자신의 아버지를 ‘사이코패스’라 칭하며, 아버지의 비윤리적 경영방식인 노동착취를 비판한다. 그리고 자신은 아버지와 다르다며 사람들에게 미란도 기업의 새로운 사업을 어필한다.

“전 세계 8억 5백만 명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세계는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지만 모두 그들을 모른척합니다···(중략) 강압적이지 않은 교미 방식으로 탄생한 아름답고 특별한 이 동물은 사료도 적게 먹고 배설물도 적게 배출할 겁니다. 하지만 고기 맛은 끝내주죠. 슈퍼돼지는 대자연의 선물, 축산업계의 혁명이죠!”

-영화 <옥자> 中 미란도 그룹 회장 루시의 말

영화에 등장하는 슈퍼돼지 ‘옥자’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동물이다.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슈퍼 돼지를 개발했다는 미란도 기업의 주장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의문이 든다. 유전자 조작(GMO) 식품은 들어봤어도, 유전자 조작 돼지라니! 너무 판타지 아닌가.

 


우리 곁에 이미 존재했던 유전자 조작 돼지
인간들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탄생된 유전자 조작 동물은 더 이상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었다. 학술지 네이처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우리나라 기초과학연구원(IBS)은 돼지의 근육성장을 저해하는 유전자 마이오스타틴(MSTN)을 제거한 근육강화돼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돼지는 옥자처럼 사료는 덜 먹으면서도 근육은 20% 더 많이, 더 빠른 속도로 불기에 몸집이 크다. 이는 사료도 적게 먹고 배설물도 적게 배출하는 <옥자> 속 슈퍼돼지와 다를 바가 없다. 기초과학연구원 연구진 측은 “식용돼지 공급과 그들의 정자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언론을 통해 밝힌 바 있지만, 아직 특정 유전자를 제거해 만든 가축에 대한 규제가 없어 유통되고 있진 않다.

같은 방식으로 먼저 개발된 유전자 조작 동물 ‘벨지안 블루(BELGIAN BLUE)’도 있다. 이는 영국산 소와 벨기에산 소를 교배하고 마이오스타틴에 변이를 일으켜 정식으로 육성했다. 이들은 일반 소보다 근육량이 약 2배나 더 많다. 하지만 국제동물보호단체 페타(PETA)에 따르면 벨지안 블루는 특이한 유전형질 때문에 심각한 건강의 위협을 받는다. 봉준호 감독은 작년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옥자의 하나뿐인 젖꼭지와 비대칭적인 콧구멍은 유전자 조작 동물의 이상변이를 소재로 한 것”이라 했다. <옥자>에서 유전자 조작으로 몸에 두드러기가 난 돼지, 뒷다리를 저는 돼지도 현실 돼지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실험실에 다녀온 옥자. 눈이 구슬퍼 보인다. (출처_네이버 영화 스틸컷)

가축 사육의 실체
옥자가 미란도 회사 실험실로 끌려 들어간다. 다른 돼지들을 살리기 위해 옥자에게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실험실로 들여보낸 ALF(동물해방전선, Animal Liberation Front) 대원들이 숨죽이며 옥자의 모습을 지켜본다. 곧 화면을 보던 그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리곤 이와 같은 대화가 이어진다.

“옥자를 실험실에 보내지 말았어야 해” “제발 꺼주면 안될까?” “안 돼. 이걸 녹화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해” “우린 지옥인 줄 알면서도 옥자를 저곳에 보냈어” “아니. 저런 짓까지 시킬 줄은 몰랐어”  ‘짝짓기를..’ “짐작은 했어! 솔직히 짐작은 했잖아!” “끄란 말이야!”

 

마치 살인 현장을 마주한 것처럼 보이는 ALF 대원들의 태도는 다소 과장스럽게 보여 진다.
하지만 이들이 보고 있는 카메라 앵글 속 상황은 현실과 전혀 다르지 않다. 강제 교미를 통한 출생. 동물이 아닌 인간의 이야기라면 어떨까? 우리의 머릿속엔 끔찍한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출생뿐만 아니다. 인간의 먹이로 태어나는 돼지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도살당하기 전까지 끔찍한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암퇘지들은 스톨(감금틀)에 한 마리씩 갇혀 살아간다. 수컷 중 소수는 정자 공급용 씨돼지로 별도 관리되고, 나머지는 모두 ‘비돈육’, 즉 살찌울 목적으로 사육된다. 새끼돼지는 태어나 겨우 3~4주 만에 어미로부터 분리된다. 암퇘지는 스톨에 갇힌 채, 수퇘지 정액이 든 튜브가 생식기에 꽂혀 인공수정 된다. 옥자가 수퇘지에게 강제로 교미당하는 것처럼 실제 축산공장의 암퇘지들도 자의와 상관없이 임신된다.”

-한겨레21에 실린 영화<잡식가족의 딜레마> 황윤 감독의 글 중에서

2015년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가 축산법 개정을 요구하며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70년에서 2010년대까지 농가 수는 급격히 감소했지만, 사육 돼지·닭 수는 급격히 증가했다. 이는 오늘날 공장식 사육으로 길러지는 가축의 수가 증가해왔다는 증거다. ‘농장이 아닌 공장’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은 갈수록 늘고 있지만, 이미 도축되어 마트에 진열된 고기를 먹는 우리는 그 사실을 알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옥자>가 말하고자 하는 건
사실 <옥자>는 채식이나 동물권을 논하기엔 시각적으로 덜 자극적인 영화다. 동물 학대에 대한 사실적인 연출도 영화 막바지에 조금 보여줄 뿐, 그것이 주가 되지 않는다. 동물권이나 채식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저 ‘국경을 넘는 미자와 옥자의 좌충우돌 우정이야기’정도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와 동물권이 함께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단 하나, 영화를 다 보고난 뒤 느끼는 왠지 모를 찝찝함 때문이다.

 (옥자를 미자 몰래 미국으로 보낸 할아버지가 죄책감에 미안 하는 표정으로)

“벌써 몇 년째냐 너랑 나랑 둘이서 이 산 속에서 지낸 것이”

(할아버지의 말에 미자는 단호한 표정으로 소리친다.)

“아니지! 세 식구지!”

영화 후반부 옥자와 미자의 모습. (출처_네이버 영화 스틸컷)

미자도 결국은 ‘옥자’만을 자신의 가족이라 생각한다. 옥자를 구하기 위해 희생해야할 돼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동물 ‘옥자’를 결국 돈을 주고 사온다. 모든 동물을 해방 시키겠다던 ALF 대원들도 종국에는 동물 보호를 위해 옥자 한 마리쯤은 기꺼이 미끼로 사용한다. 미자에게 옥자를 판매한 미란도 그룹도 자본의 부를 불러오는 돼지만 소중하게 여긴다. 이 영화 속에서 동물권을 침해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미자도, ALF도, 미란도 기업도 모두 본인만 생각했을 뿐 동물의 권리는 생각하지 않았다.

니콜렛 한 니먼의 책 <돼지가 사는 공장>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슈퍼마켓에서 무기력하게 쇼핑하는 일은 그만두어야한다는 깨달음이다.” 니먼의 말처럼 우리는 최소한 우리가 먹는 고기가 어떻게 생산되었는지 자각하고 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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