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호롱이의 죽음에만 슬퍼하는가
사람들은 왜 호롱이의 죽음에만 슬퍼하는가
  • 지선영 기자
  • 승인 2018.10.31 16:19
  • 호수 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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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잘린 고양이의 사체를 길가에 버려둔 ‘영남대학교 고양이 사건’, 스트레스로 인해 수족관에 매일 머리를 박는다는 ‘흰고래 벨루가’ 이야기가 알려지며 ‘동물권 유린’ 문제가 수면으로 떠올랐다. 동물권 유린 문제는 사람들의 인식에서부터 근본적인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

인간은 동물을 자신보다 하위의 개념으로 인지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부터 우리는 항상 동물을 사람보다 열등한 존재, 유희의 대상으로만 여겨왔다. 선사시대의 동물은 농경과 목축의 대상이었고, 가축의 보유량은 그저 재산의 척도를 판가름하는 기준에 불과했다. 또한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잔혹한 ‘동물수집’ 역시 빈번하게 일어났다.

동물원의 유래는 무려 5,000년 전,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진귀한 동물들을 수입해 모아놓으며 지배계층의 권력을 상징하던 문화가 오늘날 동물원의 시초가 됐다. 또한 우리나라에선 삼국시대부터 관상용 동물을 길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외에도 인간은 동물끼리 싸움을 붙이는 경기를 개최하거나, 동물을 학대하며 출연시키는 서커스 문화까지 만들어냈다. 인간은 자신들의 즐거움만을 창출하기에 바빴다.

이는 2018년이 된 지금, 현시대의 관점으로 바라보아도 크게 다른 부분이 없다. 지금도 우리는 그저 인간의 유희를 위해 물고기를 잡아 아쿠아리움을 만든다. 야생의 동물들을 한데 모아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카페를 차린다. 과연 동물들은 언제까지 괴로워야 할까.

 


동물권 보장에 불씨를 붙인 퓨마탈출사건
대중들은 이번 ‘퓨마탈출사건’을 계기로 동물원 윤리 의식과 억압받는 동물권에 관해 점차 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9월 18일, 대전 오월드 동물원에서 퓨마 ‘호롱이’가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탈출한 호롱이는 신고가 접수된 뒤 4시간 30여 분만에 수색대의 엽총으로 사살됐다.

이를 두고 네티즌들은 “동물원 측 부주의 탓인데 사살은 너무한 것 같다”, “생포할 수도 있었던 것 아니냐”와 같은 댓글로 과잉대응의 문제점을 꼬집고 나섰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살된 호롱이를 교육상의 명목으로 박제한다는 추측성 후속 기사가 보도됐다. 그러자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동물원 폐지’, ‘호롱이 박제 중단 요구’와 관련된 청원이 봇물 터지듯 올라왔다.

결국 사체 박제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아직도 ‘동물원 폐지’에 대한 담론이 뜨겁다. 호롱이의 죽음과 함께 부실한 동물원 관리 실태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에 11일 보신각에서는 국내 최초 동물권 행진 운동이 개최됐고,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캠페인(#동물원에_가지않기)과 청원도 지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삶, 죽음, 동물권.


동물원만이 동물들을 아프게 하나
하지만 동물권 침해는 동물원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동물원 폐지에 대한 논란이 일어난 것은 동물원은 우리들에게 특별한 추억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동물원은 매번 견학이나 데이트, 소풍에서 빠지지 않는 필수코스였다. 어릴 적 부모님과의 추억이, 또 소중한 연인과의 하루가 담겨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동물원은 우리에게 항상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 장소였지만, 동물들에게는 고통의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이제 깨닫게 된 것이다. ‘지부작족(知斧斫足,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이란 사자성어처럼 우리는 동물원에 대한 좋은 기억 때문에 더 크게 아픔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동물권 침해’는 비단 동물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쿠아리움, 애견카페, 야생동물카페 등 동물권은 일상생활에서도 끊임없이 유린당하고 있다. 실제로 농식품부 반려동물 보호 및 관련 산업 육성 세부대책에서 진행한 ‘동물 관련 영업 현황’에 따르면 2015년 기준 3,288개소수의 동물 판매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처럼 동물카페와 동물원은 사용 면적의 차이만 있을 뿐, 동물들이 받는 스트레스와 피해는 결코 경중을 따질 수 없는 사안임에 틀림없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동물들
동물 전시장은 동물들에게 엄청난 정신적 피해와 외상을 끼친다. 실제로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에서 2017년 8월 실시한 ‘동물카페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 카페들이 동물 종의 구분 없이 강제적 합사를 병행하거나, 제대로 된 예방접종과 단순한 배설물 관리마저 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조사대상의 절반이 넘는 업체에서 외상을 입은 동물들이 발견되었으며, 모두 무기력하거나 틀에 박힌 것같이 가소성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정형행동’의 증세도 보였다. 덧붙여, 이러한 동물카페는 주로 유동인구가 많은 번화가에 있다. 그 때문에 동물들은 길게는 14시간까지 운영하는 영업시간동안 쉴 틈 없이 방문객에 의해 노출되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이외에도 동물 전시장에서는 만지기, 먹이 주기 체험 등이 점차 성행한다. 때문에 동물은 하나의 마케팅 전략이 됐다. 업주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작디작은 유리 상자에 강아지를 가둬놓는가 하면, 국내 관광지에서는 아직도 말이나 당나귀를 학대하며 이동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즐비하다. 모두 동물원보다 심하면 심한 수준이지 어디하나 덜 한 곳은 없었다.

 


올바른 법제정과 수요 감축이 필수
수많은 동물학대를 방지하기 위해선 구체적이고 강력한 법안이 필수적이다. 현재 ‘야생생물 보호 관리 법률’에는 상업적 동물 거래를 제한하는 조항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범위가 멸종 위기의 야생 동물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에 실효성 있는 규제라고 보기 어렵다. 그 때문에 사각지대의 동물들을 구제하기 위해선 좀 더 구체적이고 세분된 동물카페 규제법안 마련이 가장 시급하다. 이에 동물권행동단체 ‘카라’는 비정상적인 반려동물 문화와 법률을 정상화하기 위해 ‘동물보호법 개정안 발의’를 노력 중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해결책은 불필요한 수요를 줄여나가는 것이다. 공급은 수요가 있기에 존재한다. 동물 전시장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일상생활에 만연한 동물 학대를 인지하는 것이 첫째다. 커다란 동물원만이 직접적인 동물 학대의 장소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평소 즐겨 찾는 동물카페, 동물 쇼 등과 같은 일상의 편의시설들 역시 그들을 아프게 하는 주범이다. 사람들의 장난감으로 전락한 동물들은 아직도 사회 곳곳에서 쉴 새 없이 고통받고 있다. 아직 우리 곁엔 또 다른 ‘호롱이’들이 자유를 위해 울부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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