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법이 알고 싶다] 심신미약, 그 기준이 뭔데?
[그 법이 알고 싶다] 심신미약, 그 기준이 뭔데?
  • 장현진 기자
  • 승인 2018.10.31 16:19
  • 호수 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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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출처 : 국가법령정보센터
형법 제10조(심신장애인)
①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
③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에는 전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최근 한 국민청원이 110만 명을 돌파했다. 제목은 ‘강서구 피시방 살인 사건, 또 심신미약 피의자입니다’이다. 이는 사건 피의자가 우울증 증상과 함께 심신미약을 주장한 것에 대한 반대 청원이다. 그는 아르바이트생이 불친절했다는 이유로 수차례 흉기로 찌르는 잔인한 범죄를 저질렀다. 이 사건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고, 온 국민을 분노케 했다. 그런데 이런 그에게 심신미약이 인정되면 감형이 된다. ‘심신미약 기준법’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형법 제10조는 ‘책임 없는 자에게 형벌을 부과할 수 없다’는 형벌 책임주의 원칙을 따른다. 형법상 만 14세 미만에게 처벌하지 않듯이, 행위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에는 “사물을 변별하는 능력”, “의사를 결정하는 능력”과 같은 자세한 설명이 없다. 이에 재판부는 매번 다른 판단을 보였다. 조현병, 조울증과 같은 내인성 정신질환뿐만 아니라 치매나 최면상태 등의 의식장애도 심신장애 미약으로 봤다. 그리고 사안에 따라 음주, 약물중독, 충동 장애를 심신미약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강간, 살인에도 심신미약은 적용됐다. 2008년 여자 어린이를 유인해 강간, 폭행하여 중상해를 입힌 조두순은 법원에서 검찰의 구형량인 무기징역보다 낮은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이 “조 씨는 술에 취하면 정상적 행동을 하지 않는 자신의 성향을 알면서도 술을 마신 뒤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알코올 의존증 환자로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한 조 씨의 손을 들어줬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의 피의자 김 모 씨 역시 피해망상 등의 심신미약이 인정돼 검찰이 구형한 무기징역보다 낮은 징역 30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강서구 피시방 살인사건 이후로 심신미약 관련법을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이 법의 원래 취지가 ‘약자 보호’인 만큼 폐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관련 법 조항과 기준의 세부화는 필수다. 엄격한 기준에 의한 판결이 아니면 이 법은 면죄부로 악용할 도구에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정신장애 항목을 세분화하고, 사물 변별 능력과 의사결정 능력에 대한 개념화를 확실히 하여 치료 대상과 처벌 대상을 엄격히 구분해야 할 것이다.
 
해외에서 힌트를 얻을 수도 있다. 예컨대 독일은 형법상 생물학적으로 손상이 있는 정신질환의 경우(뇌 손상으로 인한 정신질환) 외에는 심신미약을 인정하는 사례가 제한적이다. 책임능력 판정에 관한 이론이 다양한데, 심신미약으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는 대표적으로 세 가지다. 첫째, 실행행위의 중간에 발생한 정신 질환은 인정하지 않는다. 범죄를 저지르는 도중에 공황상태에 빠진 것은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형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 행위자 스스로 심리적 공황을 일으킨 것으로 보일 때다. 이는 우리 형법 제10조 3항과 비슷하다. 마지막 셋째는 성격상의 결함에 의해 심리적 공황이 발생한 경우다.

이외에도 독일은 심신미약과 관련한 구체적 이론을 법전에 명시하고 있다. 물론 누구도 심신미약에 대한 기준을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보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법률 마련은 필요하다. 형법 제10조의 ‘약자 보호’라는 원래 취지가 퇴색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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