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이몽] 함께 뛰었던 마라톤
[동지이몽] 함께 뛰었던 마라톤
  • 이은혜 수습기자
  • 승인 2018.11.27 0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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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아침에 눈을 뜨고 밖을 나가보니 알싸한 공기가 깔려있었다. 수능 공기였다. 대한민국에서 수능을 쳐 본 사람이라면 느끼는 그 온도다. 수능이 다가왔음을 알려주는 신호는 이 뿐만이 아니다. 식당 및 매장에서는 수험표 10% 할인이라는 광고를 앞세우고, 유명 연예인은 개인 sns를 통해 수험생들을 향한 응원 동영상을 올린다. 각종 교회나 절에서는 100일 전부터 함께 수능대박을 기원하기도 한다. 새삼 고3이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는 대상이었음을 실감하며 걷다보니 저절로 나의 4년 전 이맘때가 떠올랐다.

3이란 명찰은 나에게 마패와 같은 존재였다. 암행어사가 된 마냥 대한민국 고3’이라고 외치면 모든 것이 나에게 맞춰졌다. 스트레스로 예민해 보일 때는 다들 내 눈치 보기 바빴고 가족끼리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를 때도 일 순위 결정권자였다. 물론 그 마패의 무게가 무거워 가끔 짓눌릴 때는 있었다. 그럴 때 마다 가족을 비롯해 주변사람들은 힘을 모아 나를 꺼내주기도 하였다. 정작 수험생 본인은 자신이 이겨낸 줄 알았지만 말이다. 마패는 시간이 갈수록 커졌고 내 시야를 다 가려버렸다. 볼 수 있는 거라곤 자기 밖에 없었던 고3이었다.

수능 날 새벽 6, 어머니는 여느 때처럼 나를 깨우며 따뜻한 아침밥을 차려주셨다. 긴장이 되어서 그랬는지 제대로 밥이 넘어가지는 않았다. 비장한 마음으로 부모님의 응원과 함께 고사장에 들어선 후 정신없이 오전이 흘러 점심시간이 됐다. 집에서 챙겨온 도시락을 꺼내자 평소에 내가 좋아하면서 속까지 편한 반찬들이 놓여있었다. 든든했던 밥 덕분에 끝까지 시험을 마무리하고 수험장을 나왔다. 부모님이 환한 표정으로 교문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왈칵 눈물이 쏟아 내릴 것만 같았다. 누구보다 빨리 뛰어 내려가며 품에 안기자 그 하루의 모든 긴장이 풀렸다. 그렇게 내 수험생활도 끝이 났다.

이제 더 이상 나는 도움의 대상도, 관심의 대상도 아닌 보통의 존재이다. 그런데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게 이토록 힘든 일이었는지, 밥 한 끼 손수 챙겨먹는 것조차 어렵다. 아침에 혼자 일어나는 일은 또 얼마나 어려운지. 돌이켜보니 수능 당일까지 부모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없었다. 당시 수험생 때는 나 혼자와의 싸움이라며, 외로운 마라톤 경기를 뛰었다고 생각했었다.

허나 이는 큰 착각이었다. 늘 내 옆에는 함께 뛰며 물을 건네주는 부모님이 계셨고 힘내라며 응원해주는 지인들이 있었다. 한모금의 물도 없이 과연 완주를 할 수 있었을까. 분명 도중에 힘들어서 포기했을 것이다. 그 때는 잘 몰랐지만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해야 감사한 마음을 다 전할 수 있을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진 빚을 어떻게 다 갚아야 할지 막막하다. 신년 계획서에 가족과 주변 사람 챙기기1순위로 적으면 되려나. , 일단 오늘 부모님 밥 한 끼라도 제대로 해드리고 나서 고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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