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인 컬처] 80년대 한 소녀가 소격동에서 보내는 편지
[본 인 컬처] 80년대 한 소녀가 소격동에서 보내는 편지
  • 김다빈 기자
  • 승인 2018.12.03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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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의 '소격동' 뮤직비디오 분석

서태지는 소격동에 살았다.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소격동은 옛 기무사인 보안사가 있었던 곳으로 학원 녹화 사업이 이루어졌다. 학원 녹화 사업이란 전두환 정권 때 강제 징집된 대학생들에 대한 정훈 교육 계획을 말한다. 당국은 80년대 당시 학생운동에 대한 탄압을 명목으로 강제징집을 실시하고, 군 복무 중 정신적·육체적인 폭행을 일삼았다. 서태지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는 소격동을 소재로 2014<소격동>을 만들었다.

아주 늦은 밤 하얀 눈이 왔었죠. 소복이 쌓이니 내 맘도 설렜죠. 나는 그날 밤 단 한숨도 못 잤죠. 잠들면 안돼요. 눈을 뜨면 사라지죠” -서태지 <소격동> 가사

얼핏 개인의 사랑이야기쯤으로 보이기 쉬운 이 문구. 어떻게 이 가사가 사회비판적 노래로 해석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 법하다. 하지만 <소격동> 뮤직비디오를 보면 그 의문이 풀린다. 서태지 또한 JTBC와의 인터뷰에서 “1980년대의 서슬 퍼런 군사독재 시절을 고증하지 않고서는 내가 살던 어린 시절 분위기를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 사회적 이야기를 넣었다고 언급했다.

*<소격동> 뮤직비디오는 서태지Ver.과 아이유Ver.으로 나뉜다. 서태지Ver.에는 여학생이, 아이유Ver.에는 남학생이 화자로 나와 이야기를 전개한다. 또 소격동 뮤직비디오는 화면 비율에 따라 현재와 과거가 나뉜다. 더 작은 화면이 과거, full 화면이 현재를 의미한다.

힘차게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보며 남학생은 생각에 잠긴다. (출처_유튜브 원더케이 채널)
힘차게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보며 남학생은 생각에 잠긴다. (출처_유튜브 원더케이 채널)

뮤직비디오는 종로 독서실 앞, 한 남학생이 택시를 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때 넘어져 있던 여학생이 바람개비를 들고 급히 택시로 달려간다. 여학생의 무릎에 생긴 상처가 눈에 띈다. 앞서가던 소독차로 인해 바람개비가 연기에 뒤덮이지만, 바람개비는 힘차게 돌아간다. 남학생은 그런 바람개비를 보며 생각에 잠긴다. 이 뒤로도 여학생은 계속 남학생 앞에 나타나고 둘은 점점 가까워진다. 그러던 어느 날 여학생이 라디오를 들려주고, 남학생의 표정은 심각해진다.

여학생이 남학생에게 라디오를 들려주고 있다. (출처_유튜브 원더케이 채널)
여학생이 남학생에게 라디오를 들려주고 있다. (출처_유튜브 원더케이 채널)

이때 여학생이 들려준 라디오는 당시 독재정권의 현실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 추측된다. 여학생의 무릎에 난 상처는 투쟁에 맞서 싸우다가 생긴 시민들의 희생, 바람개비는 그들이 얻고자 했던 자유라 해석된다. 그리고 소독차의 연기는 마치 연막탄을 연상케 하는데, 이는 민주화운동 시기 때 정부가 가했던 물리적 폭행으로 보인다. 하지만 바람개비는 이러한 공격에도 힘차게 돌아간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아마 이때가 남학생이 처음 자유(바람개비)’를 인식하고 이에 대해 고민한 시점이다. 자유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 남학생에게 여학생은 본격적인 현실(라디오)에 대해 알려준다. 남학생은 충격에 빠진다. 결국 여학생은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그 당시 시민을, 남학생은 독재정권에 무비판적으로 잘 따르던 평범한 시민을 의미한다.

다음날 아침 여학생은 남학생에게 종이학을 건네고, 그의 친구들은 무시하고 가자며 눈치를 주지만 남학생은 그 종이학을 받아든다. 종이학엔 야간 등 등화관제 훈련에 적극 참여합시다불빛이 모두 사라지는 밤에 만나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등화관제: 전쟁 중 적기의 야간공습에 대비하고 그들의 작전 수행에 지장을 주기 위하여 일정 지역의 일반등화를 일정 시간 동안 강제로 제한하는 일.

(화면 비율이 full로 바뀐 모습) 약속 장소에 찾아가지만 여학생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모양의 종이만 널브러져 있다. (출처_유튜브 원더케이 채널)
(화면 비율이 full로 바뀐 모습) 약속 장소에 찾아가지만 여학생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모양의 종이만 널브러져 있다. (출처_유튜브 원더케이 채널)

늦은 밤, 약속 장소에 찾아가지만 바닥엔 사람모양의 종이가 널브러져 있을 뿐 여학생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때의 화면 비율은 full화면. , 남학생이 여학생을 찾아간 시기는 80년대가 아닌 현재이다. 다시 시간은 80년대로 돌아간다. 계속 현재 시점에서 노래를 부르던 아이유는 80년대로 넘어가 쌓인 눈 위에 바람개비를 놓는다. 그렇게 뮤직비디오는 끝이 난다.

현재에서 노래를 부르던 아이유가 과거로 넘어가 눈 위에 바람개비를 놓는다. (출처_유튜브 원더케이 채널)
현재에서 노래를 부르던 아이유가 과거로 넘어가 눈 위에 바람개비를 놓는다. (출처_유튜브 원더케이 채널)

남학생이 여학생을 만나러간 시기는 과거가 아닌 현재다. 그리고 여학생은 끝내 그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은 현재에 여학생과 같은 인물(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시민)의 부재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사람 모양의 종이는 과거 불합리한 정책에 맞서 투쟁하다 다친 사람들을 의미한다. 아이유가 눈 위에 놓은 바람개비 역시 여러 의미를 담아 설치한 장치이다. 독재정권에 투쟁했던 시민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이들을 기억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서태지는 뮤직비디오 속 인물들을 빌려 우리에게 자유를 위해 싸워온 청년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현재에서 투쟁하길 당부하고 있다. 우리가 사회의 중요한 일들을 잊지 않고 기억할 때 비로소 정치 참여는 시작된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 참여는 바로 우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첫걸음이다. 생계에 치여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는 항상 마음속에 새기고 살아야 한다. 자유를 위해선 항상 기억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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