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로그] 여전히 내 가슴을 저미는 판결
[저널로그] 여전히 내 가슴을 저미는 판결
  • 이나영 기자
  • 승인 2018.12.03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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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을 잃었다. 옆에서 항상 밝게 통역을 해주던 마시코 미도리도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손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우에무라 다카시 교수는 오랫동안 원고석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재판 결과에 큰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재판 시작 전 호탕하게 웃으며 머리를 만지던 우에무라 교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재판 결과 발표 2시간 전, 우리는 삿포로에 위치한 한 법률 사무소에 방문했다. 우에무라 교수는 재판 이후 발표할 판결보고 내용을 연습하고 있었다. 그는 취재를 위해 삿포로까지 온 본보 기자들에게 대견하고, 고맙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1심의 마지막 재판인데도 그에게서 불안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승소를 예상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당연히 승소할 거라고 생각했다.

삿포로 지방법원에 들어섰다. 우리를 포함해 약 120명쯤 몰린 원고 우에무라 다카시 명예훼손재판은 총 65명만이 참관할 수 있었다. 재판에 참관하기 위해서는 방청정기권을 뽑아야 했다. 일종의 추첨이다. 뽑은 막대가 빨간색이면 참관, 하얀색이면 재판장에 입장하지 못했다. 운 좋게 나와 2명의 기자는 빨간색 막대를 뽑았다. 보도부 장현진 기자만 하얀색 막대를 뽑았지만, 한 일본인이 우리가 학생이라는 이유로 자리를 양보했다. 그렇게 본보 기자들 모두 재판장에 입장했다.

재판 시작 전에는 사진촬영금지 휴대폰사용 금지 박수 금지 대화 금지 등 몇 가지 주의사항이 공지됐다. 재판 관계자는 이를 어기는 행동 시 재판장에서 퇴장당할 수도 있다고 강한 어조로 안내했다. 엄격하고 무거운 분위기에서 재판이 시작되었다. 오카야마 타다히로 재판장만이 입을 열었다. 그를 제외한 모두는 정숙한 상태를 유지했다. 하지만 재판은 30분이 채 되지 않아 기각이라는 결과로 끝나버렸다.

재판이 끝난 당시 우에무라 교수 측근에게 들은 말은 여전히 뇌리에 깊게 박혀있다.

우에무라 교수님 잘 부탁드려요.

한국에서도 이 부당한 재판 결과를 널리 알려주세요.”

그렇게 나는 재판 당일 새벽 4시까지 <본교 우에무라 교수, 삿포로서 부당판결받아> 기사를 썼다. 빡빡한 하루 일정에 기사 마감이 겹쳤지만 피곤하진 않았다. 얼른 기사를 작성해 많은 사람이 본 재판과 우에무라 교수의 이야기를 알아줬으면 했다. 이 재판은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것이기에 더 그러했다. 119, 말로만 들었던 일본 우익세력의 힘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부당판결이라는 재판 결과는 보름이 지나도록 내 가슴을 저며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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