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심사평] 들끓는 청춘의 시 258편을 만났다
[시 심사평] 들끓는 청춘의 시 258편을 만났다
  • 김지연(국어국문) 교수
  • 승인 2018.12.11 11:47
  • 호수 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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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기와 우울, 증오와 갈망, 절망과 위로, 고독과 구원...... 들끓는 청춘의 시 258편을 만났다. 그리고 <흑연염화>, <숲으로 품어 숯으로 피다>, <무화과의고민>, <사랑의 여름>, <뜨거운 겨울>, <거렁뱅이 바가지 긁는 노래>, <휴지> 등을 우선 선별했다.

<휴지>에는 만물의 영장인 거대한 나무가 배설물과 오물에 닦여 버려지는 ‘휴지’의 부조리극이 시화되었으나, 시상의 전개가 추상적 잠언으로 흘렀다. <거렁뱅이 바가지 긁는 노래>에서 시적 자아는 이 시대 재벌의 행태에 대한 폭로와 저항의 눈초리를 보여주었지만, 김지하의 <오적>을 떠올리게 하는 발상법을 보여 사회 현실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특유의 객관적 시선을 확보하지 못했다. <뜨거운 겨울>에서 화자는 혹한의 겨울을 뜨겁게 견디고 ‘大寒’의 숲에 불어오는 ‘大韓’의 봄바람을 노래했으나, ‘뜨거운 겨울’에 대한 묘파가 다소 진부해졌다. <사랑의 여름>에서 시적 자아는 혼돈스럽고 강렬한 첫사랑의 색깔을 더위와 장마가 교차하는 ‘여름’의 풍경으로 묘사했으나,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사랑의 내밀한 감수성이 애매한 행복감으로 빠져버렸다.

가작 <무화과의고민>에는 젊은이의 시적 동기가 당차게 표현되어 있다. 꽃턱이 항아리 모양으로 비대해져 내벽에 숨은꽃차례가 열매가 되는 무화과는 꽃이 보이지 않아 ‘無花果’라고 한다. 수줍은 꽃봉오리로 만인들을 설레게 하고, 향기롭고 화려한 꽃으로 아름다운 매력을 뽐내고 싶다는 시적 자아 ‘무화과’의 진솔한 내면이 진정성을 느끼게 한다. 마음이 고운 당신이 아름답다는 공익광고 같은 말들이, 形骸처럼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솔직담백한 이야기도 여운이 남는다. 이 시는 젊은이가 고민할법한 민낯을 보여주고 있으나, 초라하게 보이는 자신을 뒤엎고 청춘의 향연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이어졌다면 상상력의 조화를 이루었을 것이다. 

또 하나의 가작 <숲으로 품어 숯으로 피다>에는 삶과 사랑의 여정을 ‘숲’과 ‘숯’의 콘트라스트로 구도화하려는 상상력이 펼쳐져 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시를 쓰기 위해 절차탁마의 과정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학생을 보게 되어 안쓰럽기도 하였다. 하나의 숲은 다른 하나의 숲과 풍요롭게 한 몸을 이루려는 꿈을 갈구했으나, ‘나’의 몸은 잔혹한 어둠에 쫓겨 숯으로 타버렸다. 초록빛으로 충만한 청춘의 한 몸을 기대했으나, 숲이 숯으로 피어버린 비극적 상황이 사랑의 명암과 아이러니를 사색하게 한다. ‘나’는 숯이 되어 ‘너’의 숲이 숨쉴 바람길을 열었고, 못 다한 숯의 사랑은 숲의 “달콤한 몸 내음”에 안겨 숲과 숯은 비로소 한 몸이 된다. 그런데 숲과 숯이라는 이원적 상상력이 단순한 결말로 이어져 시의 완성도가 떨어졌다.

당선작 <흑연염화>에는 깨달음을 향한 역설적 인식이 ‘흑연염화’라는 변증법적 발상에 녹아 있다. 고독하게 내면을 응시하고, 진지하게 세계를 탐구하며, 혼신의 힘을 쏟아 지혜를 통찰하려는 심연이 느껴진다. 특히 마음속에 격렬하게 타오르는 감정 ‘炎火’는 ‘拈華微笑’의 경지를 떠올리게 해서, 그 참신한 착상에 미소를 짓기도 하였다. 그런데 암흑의 백지장과 마주한 차디찬 흑연의 혼돈이 마침내 동경에의 정열로 염화의 춤을 추게 된다는 시상의 전개가 거칠다. 이미지와 정서를 조응시키는 조탁의 과정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흑연염화’의 상징과 달, 빙옥, 눈동자로 응축되는 함축적 표현이 상상력의 아름다움을 불러일으켜서 당선작으로 올렸다. 이 시를 쓴 학생이 하얀 눈동자의 암흑 속 흑연이 빙옥의 염화로 빛나는, 차디차고 찬란한 ‘흑연염화’의 춤을 추는 시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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