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심사평] 좋은 글을 만드는 작업은 언제나 뼈를 깎는 고통을 수반한다
[평론 심사평] 좋은 글을 만드는 작업은 언제나 뼈를 깎는 고통을 수반한다
  • 박주식(영어영문) 교수
  • 승인 2018.12.11 10:07
  • 호수 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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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가대문화상 평론부문에 네 편의 작품이 응모되었으나 당선작을 정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대신 가작을 한 편 선정할 수 있었던 점을 위안으로 삼게 되었다. 응모된 작품 중에는 문학평론이라 할 만한 글도 있었고 서평에 해당하는 글도 있었으며 대중음악에 관한 글도 있었다. 각각의 응모자들이 해당 분야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가져왔고 또 그런 관심을 하나의 의미있는 글로 남기고자하는 흔적이 다분했음에도 불구하고 심사를 하다보면 늘 아쉬운 것은 그런 의욕과 실제 결과물 사이에는 적지 않은 틈새가 벌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심사자로서는 가급적 당선작을 선정하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나 엄밀한 심사라는 평가기준을 쉽게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다양한 형식의 글을 통해 모종의 특별한 영역에 국한됨이 없이 삶과 문화의 현장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고 개입하고 있다는 점은 심사자에게는 자못 큰 위안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평론은 비판적 글쓰기의 전형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심사를 하다보면 적지 않은 학생들이 평론을 단상이나 수필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평론은 사유의 명료함과 구성의 치밀성을 담보로 하는 글이다. 평론문은 무엇보다 하나의 주제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그것을 치밀하게 검증해 나아가는 고차원적 사유 과정을 요구한다. 나아가 유려한 문장과 표현의 멋스러움은 평론의 품격을 높여주는 또 다른 필수요건에 해당된다. 흔히 평론을 창작과 구분하기도 한다. 창작이 예술적 글쓰기라고 한다면 평론은 학술적 글쓰기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평론 역시 창작 못지않은 인간의 창조적 역량이 요구된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원칙을 숙지하고 있다하더라도 좋은 글을 만드는 작업은 언제나 뼈를 깎는 고통을 수반한다. 평론이 모종의 주제에 대한 단순한 단상이나 수필에 머물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청춘이 모순을 끌어안는 방식-아이유와 혁오의 디스코그래피를 중심으로〉는 음악평에 해당하는 글로써, 대중음악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다루고자하는 과감한 시도가 돋보였다. 전반적으로 글의 흐름 자체는 큰 무리 없이 전개되었으나 소재에 대한 보다 참신한 시각과 진단이 조금은 아쉬웠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기형의 《고향》비평-리얼리즘의 관점에서 내용과 형식을 중심으로〉는 글쓰기의 내용과 형식이 평론이라기보다는 위에서 얘기한 대로 감상문이나 단상에 가깝다는 이유로 선정에서 제외했음을 밝히고자 한다. 글쓰기의 내용과 구성뿐 아니라 글의 전개가 지나치게 피상적인 나머지 심사자의 눈을 사로잡는 힘이 부족했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더군다나 글의 키워드라고 할 만한 리얼리즘에 대한 오해가 있다는 점도 커다란 흠으로 남게 되었다.

다음으로 〈프레임 속의 인간〉은 《나치의 병사들: 평범했던 그들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라는 죙케 나이첼과 하라트 벨처의 저서에 대한 서평을 표방하는 글로서 탄탄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논지 서술의 자연스러움과 여유를 느끼게 하는 ‘괜찮은’ 글로 분류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정의 범주를 비껴가게 만든 것은 글의 상당부분이 책의 정보에 대한 해설에 치우치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지막으로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코》와 《마죽》을 읽고〉는 평범해 보이는 스토리를 다각적인 시각을 통해 살펴보고자 하는 치밀한 분석력이 돋보이는 글이었다. 사물을 바라보고 경험을 형상화하는 넉넉한 안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부드러움과 질서가 잘 어우러진 탄탄한 구성 역시 글의 품위를 돋보이게 하는 또 다른 요소가 되고 있다. 다만 가끔씩 돌출하는 어색한 문장들, 분석의 깊이가 지나쳐 오히려 내용이 정리되고 잘 가두어지기 보다는 엎질러지는 듯한 느낌 등이 티로 남게 되어 당선이 아닌 가작으로 선정했음을 밝혀두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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