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인생을 살아온 것치고 꽤 많은 글들을 써보았다고 생각했지만 평론은 처음이었습니다. 평할 평에 논할 논 자를 써서 평론이겠지요. 방금 막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평론이란 ‘사물의 가치, 우열, 선악 따위를 평가하여 논함. 또는 그런 글’;이라고 하네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썼던 글은 어떻게 보면 평론에서 평이란 중요한 요소를 놓쳤던 것 같습니다.
가대문화상을 알게 되고 새로운 분야의 글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년도 평론에 수상자가 선정되지 않았다는 학보사의 기사를 읽으며 궁금증이 생겼고, 평론은 치열한 사유의 결과물이라는 교수님의 말씀이 문뜩 날아와 꽂혔습니다. 사유라는 말을 곱씹어본 것이 얼마나 오랜만이었던지, 글을 쓰기 시작하며 사유가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해보았습니다. 과학은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에 설령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오려해도 그 실증성을 검증하려면 이전 지식의 축적이 필요했습니다. 때문에 평소 연구계획서나 레포트를 쓸 때면 항상 선행 문헌의 고찰을 통해 아이디어가 독창적인 것이 맞나 검증해야 했었는데, 이번 글은 아주 오랜만에 그런 과정에서 자유로웠습니다. 설령 그것이 원래 평론을 쓰는 방식이 아닐지라도 부러 다른 평론들을 찾아보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래서인지 글의 완성도는 미흡하고 표현은 투박할지라도 글을 쓰는 과정이 무척 즐거웠었습니다.
평론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해석 혹은 해설의 과정이기에 부족한 작품에 대한 해제를 하고 싶지만 해설에 대한 해설을 한다는게 아이러니인 것 같아 망설여지기도 하네요. 짧은 글은 아니기에 많은 분들이 제목만 읽고 지나가실 지 몰라 간단하게 제목에 대한 해제를 남기고자 합니다.
시상식이 있기 며칠 전 가대학보 홈페이지에 수상 공지가 올라갔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평소에는 외부에서 글을 쓰니깐 수상을 해도 조용히 묻혔었는데 학교 주최의 대회를 나오니 감사하면서 부끄럽게도 많은 분들이 알아주시고 축하를 해주셨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한 후배가 일년만에 카톡을 보내왔더라고요. 혹시 자크 라캉을 좋아하냐고. 제가 쓴 글 제목을 보고 떠오른 생각이었다네요.
라캉의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라는 말은 각종 자기계발서에서 열심히 살라는 뜻으로 오용되고 있지만 본래의 의도는 욕망의 주체성 상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게 자연스러운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라캉의 관점은 (인간은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 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제 평론에서의 해석 관점은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겠네요. 평론의 제목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를 다른 말로 조금 풀어보면, 욕망을 함을 욕망한다, 자기의 욕망을 욕망한다, 혹은 욕망하는 자신에 대한 나르시시즘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존의 목적에 대한 논의는 수도 없이 있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의 유무 자체에 관해서도 단언하기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욕망의 대상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욕망함 그 자체가 삶이 된다,는 한 갈래의 생각이 아쿠다가와의 소설을 통해 제가 다다른 해석이었고 이번 평론을 이루는 큰 줄기였습니다.
제목에 대한 해제를 쓰다보니 말이 길어지고 또다시 글을 쓰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부족한 사유에 학교를 대표해 가대문화상을 선사해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 오랜만에 생각의 흔적을 정리해볼 수 있게 해주신 주최측 학보사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주마등처럼 지나쳐버리는 수많은 순간들을 붙잡고 늘어지는 엉겁의 시간이 제게 주는 의미에 관해 절감할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앞으로는 그 의미가 저의 개인적 실현을 넘어서 다른 분들에게도 전해질 수 있게끔 글을 쓰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