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심사평] 세상을 보는 ‘눈’이 우리가 사는 이 땅을 향해야 한다
[소설 심사평] 세상을 보는 ‘눈’이 우리가 사는 이 땅을 향해야 한다
  • 안용희(국어국문) 교수
  • 승인 2018.12.11 10:07
  • 호수 3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외투를 꺼내 겨울을 준비하고 한 해를 돌아보아야 할 시간이 왔다. 이 계절에 맞춰 가대문화상 소설 부문에 응모한 열여섯 편의 글은 올해의 소중한 결실이라 생각한다. 결과에 앞서 응모자들에게 감사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이번 심사에서는 세상을 보는 자신만의 ‘눈’, 그것을 문장으로 풀어낼 솜씨, 더하여 오랜 시간을 견뎌낼 창작자의 자세에 중점을 두었다. 무엇보다 이번 응모작들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눈에 띄었다. 적지 않은 글을 이만한 솜씨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창작자로서의 인내심 역시 보증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눈’은 조금씩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먼저, 장르소설로서 일정 수준에 도달한 글들이 눈에 띄었다. SF소설로서 손색이 없는 「7일의 인간」을 필두로 하여 「바래다줄게」, 「내리막길」은 로맨스소설의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영혼과의 교감을 그린 「은방울꽃」도 판타지적 색채가 강했다. 모두 웬만한 웹소설보다 뛰어난 흡인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7일의 인간」이 SF라는 외피 아래 인생의 본질을 바라보는 ‘눈’을 지녔다면, 여타 소설들은 글솜씨에 비해 말하는 바가 투박했다. 「상사화(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성냥팔이 2016」처럼 익숙한 서사를 패러디하는 소설도 비슷하게 평가할 수 있겠다. 「성냥팔이 2016」은 영화 「서치」(2017)에서처럼 ‘지금’의 미디어를 활용한 점이 돋보였지만 기존 서사에 대한 메타적 인식이 충분하지 않았다.

청춘으로서의 자의식과 가족 관계에 대한 고민 등 성장통을 다룬 소설들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그 중에서 「나의 자기소개서」는 취업용 자기소개서의 의미를 귀신을 볼 수 있다는 판타지적 설정에 기대어 흥미롭게 풀어냈다. 미스터리 기법을 빌려 가정폭력을 다룬 「다시 만날 아이」도 나름의 긴장감을 확보했다. 하지만, 전자에서는 귀신 보는 능력을 설정한 이유가 설득력이 없었고, 후자에서는 관습적 전개가 아쉬웠다. 이밖에 폭력적 관계들을 진지하게 반성하는 작품들도 강세를 보였다.

최종적으로 당선작을 고르는 데, 「담배 두 개비」, 「7일의 인간」, 「영원한 이방인으로부터」 등 세 편을 두고 고민했다. 「담배 두 개비」는 키치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미학적 수준에 도달했지만 삶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7일의 인간」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끌고 가는 필력을 칭찬하고 싶지만 SF소설의 장르적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자신이 창조한 세계를 구체화하기 위한 섬세함이 필요해 보인다.

2014년 이후 우리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 변화가 ‘비극’으로부터 도래했다는 점은 마음이 아프지만 이제 변해야 한다는 믿음과 의지는 돌이킬 수 없다. 이 길을 지켜 나가는 데는 세상 위에 굳건히 뿌리 내린 ‘우리’가 필요하다. 「영원한 이방인으로부터」를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는 세상을 보는 ‘눈’이 우리가 사는 이 땅을 향해야 한다는 생각이 크게 작용했다. 이 소설은 ‘청춘 학원물’의 톤을 유지하다가 이면의 진실이 드러나자 전체 분위기에 변화를 주는 등 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쓴 점에서 단연 돋보였다. 다만,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편지글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더 고민해야 하겠다. 다시 당선을 축하하며 앞으로도 건필을 기원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