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수] 하얀 마스크
[최우수] 하얀 마스크
  • 양석민(일어일문 2)
  • 승인 2018.12.11 10:07
  • 호수 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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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마스크

경기도 외곽에 위치한 내가 다니던 학교는 괴담이 많았다. 밤 12시가 되면 이순신 동상 앞에 지나갈 때 칼로 베이니 가선 안 된다. 신사임당 동상도...뭐에 당한다 그랬는데. 4학년 복도 중간 남자 화장실 4번째 칸은 사용해선 안 된다. 변기에서 손이 나오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학교괴담에선 왜 밤 12시가 일종의 ‘약속의 시간’이다. 왜 하필이면 밤 12시일까. 숫자 4야 원체 불길한 숫자로 악명이 높아서 그런다 치지만. 아마 오늘이 어제가 되고 내일이 오늘이 되는 경계선이 되는 그 시간의 특징이 어린이들에게 기묘한 느낌으로 다가온 걸까. 그 당시 나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미신을 별로 믿지 않았고 개의치도 않았다. 나는 그 점으로 다른 애들 앞에서 허세를 부리곤 했다. 그래서 일부러 부모님 몰래 나와 밤 12시에 동상 앞을 거닐었으며 다음 날 그 사실을 애들에게 침 튀기며 자랑했다. 어떤 애들은 증거도 없이 저런다면서 볼멘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어느새 나는 반에서 ‘괴담을 부수는 아이’로 통하기 시작했다. 퇴마사라는 별명도 생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뜻이 전혀 맞지 않지만, 그런 식으로 애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걸 즐겼던 건 사실이다. 화장실 괴담을 풀기 위해 일부러 해당 변기에서 일을 보기도 했다. 당연히 변기에서 손이 나오는 일은 없었다. 그 외에도 친구들은 여러 괴담을 찾아서 내게 들려줬고, 나는 그 애들을 데리고 괴담 장소로 가서 괴담 따윈 거짓이란 걸 보여줬다. 오버하고 싶을 때는 “에휴~ 바보같은 귀신들이 뭐가  무섭냐?”라며 있지도 않은 정체불명의 대상을 도발하기도 했다. 괴담은 편견이다. 아주 얼토당토않은 편견.


한 번은 눈물까지 찔끔하며 놀란 적이 있었다. 학교 1층 왼쪽 복도 구석에 처박혀 있는 과학실. 그 구석에 처박혀 있는 인체 모형이 밤에 살아 움직이다 아침이 되면 다시 잠든다는, 더 나아가 그 인체 모형과 눈이 마주치면 서로의 몸을 뒤바꿔버려 자신의 영혼은 모형에 갇히고 모형이 자신의 인생을 대신 살게 된다는 무시무시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어떤 녀석은 눈 마주치면 그냥 모형이 기분 나쁘게 웃을 뿐, 그 이상은 별 거 없다고 했다. 확실하지 않았다.


“10시부터 움직인대.”
“아니거든~?! 12시부터거든~?!”


확실하지 않았다.


“둘 다 가보면 되지. 아! 아니면, 10시부터 12시까지 기다리면 되겠네.”


괴담에 흥미를 보인 친구 3명과 함께 가려고 했으나, 그 3명 전부 나오는 길에 집에서 붙잡혔다. 어쩌면 몇 명은 막판에 겁을 먹어 거짓말한 것일 수 있다. 다행히 그 날은 부모님 둘 다 친가에 들을 일이 생겨 집에 계시지 않아 쉽게 나올 수 있었다. 그 전까지의 괴담은 그냥 칼에 베인다, 내 몸을 만진다, 죽는다(...) 등, 단순한 서술뿐이라 별로 현실성도 없고 겁도 안 났지만, 인체모형 괴담은 나름 구체적으로 짜인 설정 때문에 긴장이 되었던 것 같다. 과학실에 당도하자마자 나는 집에서 가져온 손전등을 켜고 과학실 구석구석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 손전등은 사흘 전, 아버지가 ‘생각해보니 다른 집에 다 있는데 우리 집만 없는 것 같다’면서 퇴근길에 사고 돌아오신 물건이다. 나는 그 때 이미 과학실 괴담을 파헤칠 계획을 머릿속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마침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의자는 다 치워진 채 4인용 책상만이 남아 있었고 세척대가 2개 벽면에 설치되어 있었다. 맨 뒤엔 아직 치우지 못한 과학용품들이 놓여 있었는데, 시험관 안에서 뿌리내린 감자와 양파, 그 옆에는 내장을 드러낸 개구리와 토끼가 진열되어 있었다. 처음엔 그게 뭐였는지 알 수 없었으나 눈을 감은 토끼 머리를 보고 식겁했다. 이런 게 있었구나...하고. 그렇게 시간을 지체한 덕분에 알아차리는 게 늦었던 것 같다. 애초에 이 과학실엔 인체모형이 없다. 그럼에도 괴담 내용은 그렇게 상세하다니. 어이없는 결말에 실컷 웃고 난 다음 집으로 돌아가려 뒷문을 열었다.


“뭐야 너 임마!”


깜짝 놀라 손에 쥔 손전등의 전원을 바로 켰다. 움푹 파인 눈과 떨어져나간 코, 부패한 피부. 나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고 앞문을 통해 달려 나갔다. 너무 급했던 탓일까, 나는 앞문을 나가 왼쪽으로 몸을 돌리자마자 보기 좋게 발이 엉켜 넘어졌다. 뒤에선 정체모를 괴인이 접근한다. 솔직히 아무리 대담한 나였어도 그 상황에서 안 울고는 못 배겼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넘어져 울먹이는 나에게 꿀밤을 먹였다.


“그러게 왜 뛰어. 다리는 안 다쳤고?”


그 사람은 그 말을 하고선 잠바 주머니에 하얀 마스크를 꺼내 코와 입을 가리셨다.


요즘은 거의 사라진 모양이지만, 우리 때만 해도 교내 각종 사소한 업무를 맡아보시던 아저씨들이 학교마다 한 분씩 계셨다. 교내 주차, 물품 옮기기, 불량 학생 잡기, 시험지 출력, 교내 방범, 단속 등을 하며 교내나 학교 주변에서 작은 공간을 얻어 거주하는 그런 분들을 어떤 이는 ‘아저씨’, 어떤 이는 ‘김씨 이씨 박씨’, 어떤 이는 ‘소사 아저씨’라고 불렀다. 우리 학교 소사 아저씨는 언제나 맡은 일만 처리하고 학생들이나 교사에게 쓸데없이 말을 걸지도 않았기 때문에 학생 대부분이 그의 존재만 알 뿐 그 이상을 아는 녀석들은 없었다. 우리 학교 아저씨는 날씨가 더울 때나 추울 때나 항상 마스크를 끼고 근무하셨기 때문에 아무도 아저씨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었다. 애들 사이에선 ‘하얀 마스크’라고 불렸다. 빨간 마스크의 아버지라거나, 빨간 마스크의 입을 찢어버린 의사였는데 우리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입 찢을 애를 고르고 있다는 괴담도 우리 학교에 있었다. 당연히 난 그딴 이야기 믿지 않았다. 하지만 뭐, 증명할 방법이 있나. 11살짜리 꼬맹이가 40은 넘게 보이는 아저씨한테 “혹시 미치광이 의사셨나요?”라고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차마 그 괴담을 풀어서 자랑하진 못하겠고, 나는 그냥 마스크 아저씨라고 부르면서 마음속으로 하얀 마스크 괴담을 믿는 녀석들과 차이를 두곤 했다. 마스크 아저씨에게 크게 혼나는 동안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집에 돌아오는 동안은 그래도 밤에 학교 무단침입을 하다 걸렸는데 마스크 아저씨한테 혼나는 선에서 끝난다는 것에 엄청난 안도감을 느꼈다. 동시에 다음날 친구들에게 자랑할 걸 생각하니 흥분되기도 했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었다. 어두컴컴한 실내가 기다리고 있다.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어라, 안 켜진다. 전등의 상태가? 어차피 바로 잘 거라 큰 상관은 없지만.  ...아. 손전등을 두고 왔다. 물론 지금 당장은 없어도 된다. 문제는 내일 밤이다. 부모님은 내일 저녁쯤 돌아오신다. 오늘 고장 난 전등이 내일 아무 일 없다는 듯 작동될 리 없다. 분명 아버지는 밤에 불이 안 들어오는 걸 알고 손전등을 찾으실 것이다. ‘사길 잘했다니까?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지’라고 자화자찬하며. 그런데 손전등이 사라져있으면 범인은 불 보듯 뻔했다. 부모님은 집을 비운 상태였고 나는 외동이니까.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갈까? 아냐, 아냐. 어차피 마스크 아저씨가 문을 잠근다고 하셨다. 내일 학교에서 마스크 아저씨를 찾아가 두고 간 손전등에 대해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분명 어두웠고 아저씨도 내 무릎을 확인한 뒤 혼내는 데 열중했기 때문에 손전등을 못 봤을 수도 있다. 그럼 최악이다. 호기심 많은 애들이 복도를 거닐다가 주운 사람이 임자라는 식으로 가져갈 테니까. 최고의 결말은 가정교육 잘 받은 애가 분실물 보관함에 손전등을 맡기는 것이다. 물론 단 한 번도 분실물 보관함에 뭐가 채워진 걸 본 적이 없지만. 그 날 밤, 내 나이 11살 생애 처음으로 교회가 아닌 다른 곳에서 두 손 모으고 기도를 했다.


다음날, 첫 번째 쉬는 시간에 가장 먼저 분실물 보관함으로 달려갔다. 텅 비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다. 기대는 사람을 좀먹는다. 그 다음 1층 과학실 쪽으로 달려갔다. 선생님께 혼날 수도 있었지만 달릴 수밖에 없잖은가. 과학실엔 손전등 따윈 없었다. 나는 집에 가서 부모님께 크게 혼날 걸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스크 아저씨에게 가서 마지막 희망을 걸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쉬는 시간, 나는 애들에게 과학실에 인체모형 따윈 없었다고 말해주었다. 애들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워 할 것이다. 대단하다고 해주면서 내 담력을 칭찬해 줄 것이다. 애들한테 인정받으면 지금 이 불편한 기분이 조금이라도 가라앉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응... 그래?”


아이들은 수긍했다. 수긍에 그쳤다. 맨 처음 이순신 동상 이야기를 했을 땐 다들 눈빛이 초롱초롱했었는데 말이다. 내가 괴담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그 이야기를 듣는 사이 반 애들도 괴담에 대한 환상과 공포가 무뎌진 것이다. 어쩌면 예정된 수순인 셈이다(재밌는 건, 내가 귀신이 없다 말해줘도, 그리고 ‘그럴 거 같더라’고 맞장구를 쳐도 다시 그 장소를 들어가 본 애는 한 명도 없었다). 그 뒤로는 괴담 문의도 잘 안 들어오고, 나에 대한 관심도 적어졌다. 퇴마사라는 별명도 서서히 잊혀졌다. 하지만, 이래선 나는 위로받지 못한다. 재밌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아, 근데, 바보같이 손전등을 두고 왔다니까. 아, 오늘 집 가면 엄마한테 죽었다~”
“야, 우리 지우개 따먹기 하자!”


애들은 반응도 하지 않았다. 나는 뭔가 울컥했지만 티를 낼 순 없었다. 그냥 지우개 따먹기를 구경하면서 적당히 훈수나 둘 뿐이었다. 그날따라 지우개도 안 챙겨서 놀이에 끼지도 못했다. 점심시간 후, 불우이웃성금으로 1000원을 가져왔어야 했는데 깜빡해서 애들 보는 앞에서 회초리로 손바닥을 맞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혼나고 맞고 벌섰던 것 같은데, 그 당시엔 워낙 어려서 곧이곧대로 체벌을 받아들였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귀신엔 안 쪼는 새끼가 회초리에 쪼냐?”


평소 사이가 안 좋았던 녀석이 비아냥거렸다. 이름은 이태양. 신기하게 그 때 친하게 지냈던 녀석들 이름은 다 까먹었는데 그 녀석 이름만큼은 똑똑히 기억한다. 아마 그 날 전까지 내가 퇴마사로 관심을 끈 걸 아니꼬워했던 게 아닐까. 아니면 그냥 농으로 뱉은 말일 수도 있다. 의도가 어찌됐건 울고 싶던 차에 뺨 때려준 보답으로 나도 뺨을 때려줬다. 누군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때려주는 것과 남의 보증을 절대 서지 않는 것 이 둘이 성경이 내게 준 가르침이다. 물론 그 당시엔 교회에서 주는 빵 때문에 간 게 전부였지만. 엎드려서 엉덩이를 맞고, 남아서 반성문을 쓰고, 이태양과 강제적으로 악수를 한 다음에서야 귀가 허가가 떨어졌다. 친구들은 한참 전에 하교하여 혼자서 고개를 처박고 운동장을 나왔다. 노을 질 시간대라 고개를 푹 숙였는데도 햇빛이 자꾸 눈을 간질였다. 운동장이 그날따라 넓게 느껴졌다. 이유 모를 서러움이 밀어닥쳤다. 손전등을 못 찾았을 때도, 애들이 싱거운 반응을 보였을 때도, 회초리에 맞았을 때도, 이태양과 주먹다짐을 했을 때도, 엉덩이를 맞았을 때도, 반성문을 쓸 때도, 강제 악수를 했을 때도 울컥하지 않았는데 눈물이 차오르려 했다. 아마 인생에서 처음으로 고독이라는 감정을 자각한 순간이었으리라.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되든 말든 이 세상은 전혀 관심도 없구나 하는 느낌. 이제 손전등은 관심 밖이었다. 집 가면 손전등 때문에 엉덩이를 맞겠지, 엉덩이를 까면 이미 학교에서 맞아 든 멍 때문에 자초지종 설명을 요할 테고 설명 다하면 더 맞겠지, 손전등 값 때문에 몇 달간은 용돈도 끊기겠지.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을 정도로 비참한 기분이었다. 물론 엉덩이를 맞을 땐 또 아니겠지만. 운동장을 다 빠져나올 때쯤, 마스크 아저씨가 정문을 통해 들어오셨다. 우는 모습을 들키는 것만큼 쪽팔린 상황은 없다. 나는 눈물을 닦으면서 목례를 했다.


“...어젯밤에 그 놈이냐?”


나는 코를 훅 들이마시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고 간 거 있지?”
“...네.”
“받으려면 따라와라.”


그렇게 한마디 하시고는 한 번 뒤돌아보지 않고 제 갈 길을 가셨다. 나도 별다른 대꾸 없이 뒷짐 진 아저씨를 따라갔다. 그래도 문제 하나가 해결되는 것 같아 마음이 진정됨을 느꼈다. 나는 소매로 물기 가득한 눈을 닦으며 계속 걸었다. 나는 오히려 왜 우냐고, 꼬치꼬치 캐묻는 어른들보다 마스크 아저씨 같은 부류가 더 편했다. 전자의 어른들에겐 다 말해준 뒤엔 ‘결국 니 잘못이네’라는 잔소리를 한 번 더 듣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저씨를 따라 도착한 곳은 후문 옆 수위실. 내가 따라가지 않더라도 마스크 아저씨에게 돌아갈 장소는 이 곳밖에 없었을 터이다. 밖에서 좀 기다리라는 말을 하시고 수 초 뒤, 내 손전등을 가지고 나오셨다. 내게 건네주면서 하는 말이,


“말 안 하고 내가 가질라다 돌려주는 거야 이누마.”


그러면서 씩 웃으시는 것이다. 마스크로 입은 가려졌지만 눈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나는 좀 놀랐다. 그 아저씨가 ‘표정’ 짓는 걸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감사 인사를 할 타이밍을 놓쳐버릴 정도로 벙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아저씨는 수위실에 들어가고 난 뒤였다.


마스크 아저씨가 마스크 아저씨인 이유는 진짜로 항상 마스크를 착용했기 때문도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아무도 그의 맨얼굴을 본 적이 없다는 건 실제적인 의미도 있지만 상징적인 의미도 내재한다. 그는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만을 행할 뿐 교내에서 그 누구에게도 자신을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딱딱하고 사무적인 말투, 마스크를 써도 가려지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 일을 맡는 시간 외엔 초소에서 나오지 않는 효율적인 행동거지. 선생님들의 업무 지시를 받을 때도 ‘네’, ‘알겠습니다’ 외에 다른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말 안 듣고 교칙 어기는 학생들을 잡아 넘길 때는 그냥 눈빛과 완력으로 처리할 뿐이었다. 마스크, 무표정, 침묵이 어우러져 무서운 카리스마를 뿜어내 문제아들로 하여금 겁을 주는 효과가 있어 의외로 수월하게 선도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아, 그 아저씨가 소사야?”


신임 교사 중엔 도리어 우리에게 묻는 경우가 있을 정도였다. 그는 없는 듯 있었다. 그가 마스크로 가린 건 하관만이 아니었다. 성격, 이름, 얼굴, 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알려준 적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그가 궁금해졌다. 아무도 의뢰하지 않았지만, 더 이상 퇴마사는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지만 나는 ‘마스크 아저씨’의 괴담을 파헤쳐보기로 결심했다. 사실 거짓말이다. 당시 초4였던 나는 괴담을 파헤쳐야 한다는 명목을 만들어야만 마스크 아저씨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더 이상 애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은 것에 상심한 마음을 채워줄 위안과, 말상대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본심을 마주하기엔 좀 쑥스러웠던 걸까. 11살 주제에 자존심만 높았던 것이다. 손전등을 돌려받은 그 다음 날부터 나는 꾸준히 수위실에 계신 마스크 아저씨를 찾아갔다. 물론 처음부터 마스크 이야기를 꺼낸 건 아니고, 그냥 실없는 얘기를 던지면서 거리를 좁혔다. 아저씨도 처음엔 퉁명스레 대꾸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반응도 해주시고, 아저씨 쪽에서 꽤 재밌는 얘기를 해주기도 했다.


“전 모기도 그렇지만 매미가 진짜 싫어요. 시끄러워서 귀 떨어질 것 같아요.”
“하긴 매미가 좋아할 구석은 없지. 근데 좀 지나치게 미움받는다고 생각하거든, 아저씨는.”
“왜요?”
“원래는 덥고 땀나서 짜증이 나는 건데, 거기서 울어제껴버리니까 짜증이 확 매미로 쏠리는 거지.”
“어...”
“그러니까, 원래는 날씨 때문인데, 순전히 매미 때문에 짜증나는 줄 아는 거지. 감정의 원인과 감정의 표적이, 안 맞는다 이 말이야. 원래 인간이 되게 똑똑한 것 같아도 멍청할 땐 그렇게 멍청할 수가 없어. 진실을 보지 못하는 거지.”
“왜요?”
“인간은 날 때부터 비겁하거든. 있는 그대로 판단할 수는 없고, 그러기도 싫으니깐 지 좋을 대로 이유를 만들고, 그 이유가 진짜인 줄 알고.”


아저씨가 똑똑하다는 건 조금 대화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사실 아저씨의 말 중 못 알아먹은 게 태반이었지만. 사실 아저씨도 내가 알아먹으리라 생각해서 한 얘기는 아닐 것이다. 아저씨는 마치 지금까지 자신 혼자서 정리하고 쌓아둬야만 했던 자신만의 철학과 논리를 분출하는 듯 했다. 나는 변기 역할. 싫지 않았다.


“아저씨는 왜 맨날 마스크를 쓰세요?”
“안 알려줘.”  “너도 학교 얘기나 좀 해줘봐라.”  “바쁘니까 나중에.”


세 번이나 거절당했다. 네 번째로 끈질기게 물어봐서야(그때 난 참 배려가 없던 아이였다)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거창한 서사시를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아저씨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교에서 공부 중이었다. 고향에선 아저씨의 성공을 위해 이것저것 지원해주셨다고 한다. 나름 수재였다고 하신다. 장학금도 잘 타오고. 그리고 한센병에 걸렸다(아저씨는 문둥병이라고 말했다). 정말 뜬금없지만, 원래 모든 불행은 예기치 못하게 찾아오는 법이다. 어쩌다 병에 걸려버린 건가? 사실 원인을 추론할 여유조차 그에겐 없었다. 호적이 파였고 소록도로 강제 수용되었다(호적이나 격리, 수용 같은 단어들의 뜻을 몰라서 아저씨는 아이의 눈높이에서 설명을 해주곤 했다).


“소록도 가서 뭘 하셨는데요?”


아저씨는 그냥 엄청 고생했다는 말밖에 하지 않으셨다. 뭘 어떻게 고생했냐고 꼬치꼬치 캐물었지만, 더 물어보면 뒷얘기 더 안 해줄 거라는 협박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도 않은 기억이라서? 부모님한테 혼나고 종아리 맞는 것 이상의 고생은 모르는 초등학생에게 들려주기엔 너무 잔혹해서? 그 나이에 학대, 고문, 징용, 사살, 해부, 정관수술, 낙태, 죽은 태아가 담긴 시험관 이야기를 초4에게 해봤자 악영향 빼고 더 주겠냐는 생각이셨을까. 시험관에 담긴 개구리와 토끼만 봐도 속이 울렁거리는 녀석에게 말이다. 이해도 못했을 것이다. 아마 믿지도 않았겠지. 성인이 되고 막 찾아봤을 때도 순간 믿지 못했으니까. 그렇기에 아저씨는 당시 어린 나에게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아저씨는 청년기를 그 섬에서 봉인당해야 했다. 피부가 부패하고, 코가 떨어져 나간 건 그 때의 일이라고 한다. 1960년대에 들어서(훗날 조사해본 결과 1963년) 강제격리수용제도가 폐지되었다. 아저씨가 소록도에서 나갈 수 있었던 건 그때부터였다. 사실, 아저씨는 63년 이전에 이미 한센병 환자가 아니었다. 진작 완치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게 그런 건 별로 중요치 않았던 모양이다. 지옥 같던 섬을 나와 가족들과 친구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겨우겨우 고향집에 당도했다. 아저씨가 말은 안하셨지만, 당도하기까지도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겐 자리가 없었다. 어느 누구도 대놓고 ‘문둥이에겐 집에 있을 자리 없다’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집안 공기를 읽는 건 초등학교 시험 국어 지문보다 쉬웠다. 그는 고향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도 받아주지 않는 아저씨는 정말 겨우겨우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를 한 명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사정을 자초지종 설명하고 그 친구 연줄로 얻어낸 게 현재 이 초등학교의 소사 아저씨 자리라고 하셨다. 자신의 사정을 이 학교에 관련된 사람들이 알면(물론 아는 사람들은 다 알 테지만) 그때 고향집에서처럼 쫓겨날 게 뻔하다. 그래서 마스크로 자신의 흉물스러운 코와 입을 가리고 일을 하시는 거라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니 그때 당시의 나도 이야기가 무겁고 비극적이라는 건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걸 신나게 들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아저씨는 지금 나를 위해서 재밌게 이야기를 꾸며내고 계시거나 허풍을 떨고 계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면 ‘에이~거짓말’이라고 받아들이는 원리처럼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다른 애들에 비해 무섭거나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잘 흔들리지 않았다. 아저씨의 이야기 또한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만큼은 내가 사는 현실이 그러리라 생각할 수도 없었으니까. 병에 걸렸다고 섬에 격리한다는 것도, 다 나았는데도 병균 취급을 당한다는 것도, 가족들에게마저 버림받는다는 것도, 쫓겨날까봐 마스크를 벗지 못한다는 것도 다 농담이고 허풍 같았다. 하지만 아저씨의 태도도 그랬다. 아저씨는 정말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감정적으로 되는 법이 없었다. 여유롭게, 마치 남 일처럼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심지어 고향에서 쫓겨난 이야기를 할 땐 소리 내며 웃기까지 하셨다. 그래서 더더욱 아저씨의 사연을 진짜라고 믿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저씨는 이미 모든 걸 포기했기 때문에 그런 태도를 일관할 수 있던 것 같다. 해탈은, 어쩌면 포기와 같은 말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그 이야기를 믿을 수 없던 이유가 또 있었다. 당시 나는 고작 그런 이유로 그런 취급을 받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내 생각 패턴이 어땠냐하면 말이다. 코가 떨어져나가고 피부조직이 괴사한 아저씨의 맨얼굴은 정말이지 못생겼다. 하지만, 못생겼다는 이유로 그런 고생을 한다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동화나 만화에서나 나오는 과장 아니던가? 당장 우리 반에 유부송이라는 녀석도 지독하게 못생긴 녀석이었다. 때문에 반에서 놀림당할 때도 있긴 하지만, 섬에 격리되고 커서 일자리도 못 얻고 무엇보다도 엄마 아빠에게 외면당할 미래라고는 생각할 수 없잖은가? 결혼은 힘들 수 있겠다. 그 정도로밖에 생각할 수 없는 꼬맹이였던 것이다. 물론 아저씨는 내가 그 정도로밖에 생각 못한다는 걸 알기에 더더욱 나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던 거였겠지만 말이다. 나는 심각성을 전혀 몰랐다. 그저 천진난만하게 아저씨와 재밌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었다. 어쩔 땐 너무 문어체 느낌으로 말하기도 하셨지만, 그게 아저씨의 지식과 입담과 맞물려 나로 하여금 이야기에 쏙 빠져들게 했다. 아마 국문 쪽을 전공하시지 않았을까. 비단 아저씨의 과거사만 갖고 대화를 한 건 아니었다. 어쩔 땐 학교에서 일하면서 겪은 경험이나, 세상 돌아가는 거에 대해 조금씩 들려주기도 하셨다. 나도 퇴마사로서의 활약과 학교생활을 나누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뼈가 되는 덕담도 많이 해주셨던 듯하다. 그 당시엔 와 닿지 않았다는 게 문제지만.


“그런다고 마스크를 안 벗어요? 여름에 덥잖아요!”
“덥기야 덥지. 그치만 이걸 안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건 모르죠!”
“지금까지 그랬단다.”
그때쯤, 나는 사회시간에 여성의 사회진출에 대한 수업을 들었다.
“에이 아저씨. 내가 학교에서 배운 건데, 그게,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 인식이란 게, 바뀐대요. 예전에 그랬다고 지금도 그럴 꺼라는 건 아니죠.”
 초 4면 남한테 막 뭔가 가르쳐주고 싶은 나이가 아닌가. 어떻게든 아는 척하고 싶고 말도 많이 하고 싶어진다. 아저씨는 그에 대한 대답 없이 시간도 늦었으니 빨리 집에나 돌아가라고 말하며 나를 돌려세웠다.
“아 알았어요 갈게요. 근데 쫓아낸다고 해도 아저씨가 말을 들을 필욘 없잖아요. 아저씨가 뭐 죄진 것도 아니고, 그 사람들이 못된 거 아니에요?”
아저씨가 멈칫했다.
“...못됐다기 보단 불쌍한 거다.”
“네? 불쌍해요?”


아저씨는 내 반문을 못 들은 체하고 들어가셨다. 나는 그 때 아저씨의 ‘불쌍하다’는 뜻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때 일주일간 이야기를 한 것만으로 아저씨에 대해서 전부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했다. 사흘인가 나흘인가 뒤, 여름방학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나는 그날도 애들과는 먼저 작별인사를 하고 마스크 아저씨를 찾아갔다. 나는 마스크 아저씨와 자주 이야기를 나눈다는 걸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저씨와 단둘이 있을 땐 무슨 이야기를 해도 들어줄 것처럼 굴면서, 막상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내가 마스크 아저씨와 친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건 뭔가 거부감이 들었다. 아저씨도 그걸 아는 모양인지 내가 친구들과 있을 때 마주치면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당시 나는 불쌍한 마스크 아저씨의 말상대를 해드린다는 자신의 선행에 우월감에 심취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던 게 아닐까. 그저 불쌍한 아저씨의 기분을 풀어줘서 착한 아이가 된다는 명목 하에. 현실을 파악하지도 못한 채 상대에게 무턱대고 희망을 불어넣는 것만큼 무책임한 행동은 없다. 아저씨는 마스크를 벗고 화단에 물을 주고 계셨다. 그리고 나를 보고 씩 웃어주셨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내 한마디로 아저씨가 스스로 채운 마스크를 벗어던졌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이제 아저씨도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건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의 착각에 불과했다. 아저씨는 행복해지지도 않았고, 애초에 그 마스크는 아저씨가 스스로 채운 것도 아니었다.


아저씨가 마스크를 벗은 후부터, 오랜만에 학교에 괴담이 나돌기 시작했다. 내가 과학실에서 인체모형의 비밀을 폭로했을 땐 반응도 안하던 것들이. 마스크 아저씨는 사이비 미친 의사는 아니지만 딱 우리 나이 대 아이들의 싱싱한 간을 빼먹는 식인인간이다. 그래서 호시탐탐 우리들을 노리고 있다. 그리고 아저씨랑 살이 닿는 일은 없도록 하라. 아저씨 얼굴처럼 살이 썩어들고 코나 귀, 잇몸이 떨어져 나갈 테니까.


“야, 그게 말이 되냐?”


나는 그게 허무맹랑한 헛소문임을 당연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퇴마사’로 이름을 날린 나도 괴담이 퍼져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안될 게 뭐가 있어. 딱 봐도 징그러운 게 뭐가 있지.”
“야, 그거, 아저씨가 무슨 병인가 걸려서 그런 거야. 뭘 간을 빼먹어. 구미호도 아니고.”
“어. 문둥병. 나도 알거든? 그 병이 원래 그런 병이래. 어린애 간 빼 먹으면 나아서 문둥병 환자들이 애들 납치하고 그런대. 우리 엄마가 그런 거거든? 너가 우리 엄마보다 똑똑하냐? 또 또 센 척해요.”


그 괴담은 애들 사이에서 도는 게 아니었다. 집에서도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대체 그런 문둥이가 왜 학교 소사 일을 보는 거냐, 학교가 미친 거 아니냐, 애들한테 옮으면 어쩌려고 그러냐, 그거 아저씨 환자 아니에요 다 나았는데,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거 없잖냐, 그 말을 어떻게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냐, 사람들 말 들어보면 시체가 움직이는 거 같다더라, 그런 사람이 학교에서 일하면 어디 징그러워서 진학시키려고 하겠냐, 이러다 집값도 떨어지는 거 아니냐. 사실 집값 얘기부턴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아저씨 험담인 게 확실하긴 했다. 마스크를 낄 때까지만 하더라도 ‘좀 뒤가 구린 사람 아냐?’ 이상의 부정적인 시선은 없었다. 하지만 마스크를 벗자, 학교 학생들, 교직원, 학부모, 심지어 인근 주민들마저 그를 아니꼽게 여겼다. 동네 공기를 읽는 건 초등학교 시험 국어 지문보다 쉬웠다. 애들은 아저씨가 다가가면 대놓고 도망갔다. “시체가 움직인다!”, “식인종!”이라 놀리며 튀는 녀석들도 있었다. 교직원들은 한없이 아저씨 앞에서 차가워졌다. 전에도 소사 아저씨를 무시하는 분위기를 풍기긴 했지만, 이젠 그냥 아예 인간 취급도 안하는 듯 보였다. 인도의 불가촉천민처럼. 박스나 종이뭉치를 옮길 때 손이 닿으면 바로 몸을 뒤로 빼는 것도 보았다. 동네에 좀 늙은 어르신들은 전생에 못되게 살아서 받은 천벌이니, 문둥이들 중엔 빨갱이가 많다느니 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아저씨가 마스크를 벗은 지 일주일도 안 되어 형성된 분위기다. 나는 아저씨에 대한 소문과 취급에 대해 귀를 바짝 모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저씨를 좋아했기 때문에 남 일로 여길 수도 없었고, 분명 이런 상황에 몰린 건 내 책임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냥 100퍼센트 내 책임이었다. 마스크 아저씨, 아니 문둥병 아저씨가 저런 취급을 받게 된 건 내 책임이다. 아저씨는 자신이 어떤 취급을 당하고 사람들이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자신을 볼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더운 땡볕에도 마스크를 끼고 일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마스크를 벗겨버렸다. 세상은 절대 그 마스크를 벗지 말라고 아저씨의 인생에 걸쳐 신신당부했건만 멋모르는 꼬맹이가 그 룰을 어긴 것이다. 하지만 그 책임은 온전히 아저씨가 지게 되었다. 그 당시에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나는 당연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고작 병 때문에, 그것도 환자도 아닌 완치된 정상인인데 이 정도로 핍박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결과를 몰랐다고 해서 회피하는 건 옳지 않다. 그럼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당연히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아저씨에게 씌워진 누명을 벗겨내는 일이었다. 친구들에게,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 내가 말을 전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의 편견을 깨부수는 일. 괴담 타파와 다를 바 없다. 그리고 나는 일류 퇴마사였다. 아저씨는 간을 빼먹을 사람도 아니고 전생에 천벌을 짓지도 않았다. 아저씨는 환자도 아니고 더구나 보균자도 아니다. 아저씨와 가까이 지낸다고 몸에 이상이 생기지도 않는다. 그건 다, 괴담일 뿐이라고, 말해줘야 했다. 증거는? 여기 있지 않은가?! 애초에 증거라고 하면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내놓는 당신들 쪽에서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순신 장군 동상이 칼을 휘두르는 거, 증거 있나? 화장실에서 올라온 손, 본 적은 있나? 인체모형, 그건 애초에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퇴마사가 아니었다. 그저 사람들 시선에 벗어나는 걸 두려워하는 겁쟁이에 불과한 초등학교 4학년 11살짜리 꼬맹이. 나는 아저씨를 구렁텅이로 빠뜨렸고, 외면했다. 주변에서 아저씨의 흉을 볼 때 입 닥치고 있었다. 더 이상 아저씨의 초소에 놀러가지도 않았다. 단둘이 마주쳤을 때 인사도 하지 않았다. 물론 아저씨도 나를 보고 아는 척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밤마다 침대에 눕고 ‘내가 아저씨의 수위실에 놀러간 걸 목격한 사람이 혹시 있으면 어쩌지’라며 혼자 끙끙대다 잠에 들었다. 아저씨는 그런 눈초리를 받으면서도 더 이상 마스크를 쓰지 않으셨다. 나를 불러다가 책망하지도 않으셨다. 신경 쓰지 말자, 신경 쓰지 말자.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 점점 별 신경 안 쓰는 게 가능해졌고, 하교 후 아저씨와 보낸 일주일도 흐릿해졌다. 내가 왜 그리 혼자서 끙끙댔는지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내가 아저씨에게 벗으라고 권유했다 한들, 벗은 건 아저씨의 선택 아닌가? 내가 강제적으로 마스크를 벗겨 사람들 앞에 아저씨 맨얼굴을 공개한 것도 아니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더 나아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만 생각하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비겁한 게 장려되는 동물이었다. 비겁함은 본능이다. 그리고 그 비겁함으로 인해 얼마든지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하지만, 남에게 상처를 입혀도 되는 이유는 절대로 될 수 없을 텐데.

여름방학식 하루 전. 방학 동안 동네 근처에 새로 생긴 오락실로 친구들과 놀러 갈 계획에 들뜬 나였다. 덕분에 반 애들이 먹을 우유를 혼자서 옮길 때 별로 힘든 걸 느끼지 못하고 콧노래까지 부르던 나였다. 마스크 아저씨에 관한 건 머릿속에서 다 지워버렸다고 단언한 나였다.


“학부모님, 저는 교칙에 어긋나는 애들을 바로잡을 뿐이지 절대 특정 학생을 괴롭히거나 하진 않습니다.”
“우리 애가 겁을 먹었대잖아요!! 뒤따라온 것만 2번째라면서요!!”
“그건,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인데, 아마 어쩌다 동선이 겹친 것뿐이지 전 그 학생 얼굴도 모릅니다. 이름도 겨우 기억났어요.”
“아 그럼, 본인은 아무 의도가 없었으니 우리 애가 입은 정신적 피해나 공포같은 거엔 아무 책임이 없다 이 말씀이세요?”


나는 어떤 애엄마가 마스크 아저씨(더 이상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지만)를 쥐잡듯 잡는 광경을 목격했다. 적어도 마스크 아저씨가 10년은 늙어 보이는데... 왜 어른들은 우리 보고는 예의를 잘 지키라면서 본인들은 그러지 못하는가. 그것보다, 나는 왜 그 자리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까. 마스크 아저씨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이인데.


“...저는 이 학교에서 잡일을 맡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건 어쩔 수가 없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일해 온대로 하는 건데, 왜 갑자기 이런 식으로...”
“허, 하?! 이 아저씨 진짜 뻔뻔하다...”
아저씨는 애엄마가 말을 비집고 들어올 때마다 조용히 있었다.
“이보세요, 당신은 눈치도 없어요? 그런 얼굴을 내놓고 일을 하니까, 애들도 그렇고 선생님들도 그렇고 마음 놓고 학교에 있을 수가 없는 거잖아요!!”
“...제가 문둥이라서 이러는 겁니까?”
“문둥이든 순둥이든 간에, 학교는 고사하고 이 동네까지 소문 안 좋게 난 것도 몰라요? 동네 집값 떨어지면 아저씨가 책임질 거냐고요?”
“...어머님께선 제가 어떻게 해주길 원하십니까?”
“하, 저도 이런 말하기 되게 싫은데, 학부모들 대표해서 그냥 이 얘기까지 하고 넘어가야겠어요. 다른 데서 일자리 알아보심 안돼요? 사람들이 이 학교를 오고 싶어 하겠어요? 아니 어떻게 그렇게 심각한 병을 가지고 학교에서 일할 생각을 해요?”


아저씨는 묵묵히 듣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 애엄마는 아저씨를 코너로 몰아넣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아저씨는 평소 이상으로 담담했고, 심지어 비장해 보이기까지 한 무표정이었다. 


“신영이 어머님.”
“예. 말씀해 보세요.”
“저는 환자가 아닙니다. 다 나았고 문둥병을 옮길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 걱정은 하실 필요가 없...”
“아니 지금 병을 옮기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병을 옮기면 진짜로 문제 있는 거고 격리시키던가 해야지. 댁 그 징그러운 얼굴 가지고 애들한테 보여주면 정서에 어떻겠냐 이 말입니다!!!”
“왜 징그럽다고 생각하죠?”


아저씨가 애엄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대답했다. 애엄마도 그 당당한 아저씨의 태도에 순간 당황한 듯 했으나 곧바로 기죽지 않고 말했다.


“몰라서 물어요? 코는 떨어져 나가고! 또 어? 피부는 다 썩어서 어 구역질나고! 입도 엉망진창이잖아! 시체가 살아 움직이는 거 같다고!”


아저씨는 바로 받아치며 쉬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시체가 살아 움직이는 거 같죠, 그래요. 문둥병의 가장 큰 증세가 피부 괴사입니다. 그냥 산채로 살이 썩어 들어가는 거예요, 시체처럼요. 그래서 문둥병이 다른 병과 다르게 그렇게 핍박받는 거예요. 위암 걸려봤자 배 안 가르면 티도 안나요. 다른 피부병도 생사람을 시체처럼 만들진 않죠. 왜 당신들이 문둥병을 그렇게 안 좋게 보는지 아십니까? 천벌이고 자시고 병 옮기고 그딴 건 다 핑계예요. 당신들은 그냥 시체마냥 썩어 문드러진 우리 면상을 보기 싫은 거라니까요? 어디서 합리적인 척 이유를 대고 있어?”


아저씨의 언성이 점점 높아졌다. 아저씨는 마치 지금까지 자신 혼자서 정리하고 쌓아둬야만 했던 자신만의 철학과 논리를 분출하는 듯 했다. 아줌마는 변기 역할. 좋지 않았다. 이미 아줌마는 아저씨의 말이 제대로 귀에 들어가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뒷걸음질 치면서 이 사람 왜 이래, 거기 누구 없어요? 같은 말을 내뱉으며 허우적거리기만 했다. 물론 아저씨는 아줌마를 가게 두지 않았다.


“당신들은 우릴 싫어하는 게 아니라, 무서워하는 거예요. 혐오가 아니라 공포라고. 살아있는 사람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죽음이고, 시체같이 생긴  우리야말로 죽음을 상징하지 않습니까? 언젠가 당신도 죽어서 최악의 모습이 될 거 아닙니까? 시체가 돼서 살이 막 썩어들어갈 거 아녜요? 지금 나처럼. 예? 그걸 보고 싶을 리가 없잖아. 죽음을 암시한다고요, 나같은 새끼들은. 당신들은 문둥이 자체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뒤에 깔린 상징 때문에 겁에 질린 거야. 근데, 당신들이 바보같고 불쌍한 게 뭔지 알아?”
“이 영감 미쳤나봐!!!”
“시체고 죽음이고, 그래 백번 양보해서 천벌이고 저주고 만지면 옮고 그런 걸 떠올릴 순 있어. 근데 그건 착각이라고! 착각은 착각에서 멈추라고! 난 살아있다고! 좀 두 눈 똑바로 뜨고 보라고! 어떻게 이렇게 미련할 수가 있지? 현실과 망상도 구분 못해? 내가 니들한테 동정심을 느낀다니까?!”


교직원들이 달려 나와 아저씨와 아줌마를 떼어냈다. 아저씨는 테러범이라도 된 것 마냥 어른들에게 제압당했다. 순간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우유박스를 내팽개치고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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