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상을 주신 것에 대해 정말 감사드린다는 말부터 전한다. 예상보다 훨씬 큰 결과로 돌아왔다. 이는 무겁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너무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이 문화상에 참가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따라서 이 상은 감사하면서도, 무거운 마음으로 받도록 하겠다.
소설 작업에 앞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한센병 조사였다. 한센병의 발병, 한센병 환자가 받은 역사적 핍박, 이들이 쓴 누명까지.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세상에 있는 수많은 질병 가운데 유독 한센병만 국가적 격리가 취해질 정도로 핍박을 받아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 편견과 누명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이었다. 그 생각을 중심으로 스스로 질문하고 어느 정도 답을 내린 결과물로써 이 작품이 나오게 되었다. 원래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더 추가되어 100매가 훨씬 넘어가는 소설이었지만, 제한 때문에 가지치기를 한 부분이 있다. 그 점이 개인적으로 아쉽기도 하다.
내 작품관은, ‘이 이야기 속 세계는 실재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픽션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가 모르는 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난 것이라 생각하며 작품을 접하는 편이다. 따라서 등장인물의 말은 내 말이 아니며 그들의 생각도 내 생각이 아니다. 그들의 말과 생각은 온전히 그들의 것이다. 다시 말해 나는 내 소설을 통해 무언가를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어떤 세계에선 이런 사건, 역사가 있다’고 소개하는 역할에 불과하다. 그 이상의 생각은 독자들이 상상하고 확립해주셨으면 한다. 소설 내에선 묘사하지 못했지만 감히 작중 ‘하얀 마스크’의 속내 중 하나를 여기서 밝히자면, 그가 보인 분노와 허탈함은 단순히 자신을 ‘마녀사냥’한 주변사람들과 사회에만 향한 것이 아니다. 편견과 누명이 생성되는 그 본질적인 원리 자체에 초점이 맞춰진 환멸이다. 자신의 몰이해와 게으름의 책임을 온전히 대상에게 전가시키는 비겁함.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본능적으로, 무의식중에 빠릿빠릿하게 처리된다.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라고 하얀 마스크는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원래 인간의 무의식에 평소 관심이 많은 터라 소설에서도 그 성향이 짙게 배인 듯하다. 나는 인간의 모든 사고와 감정, 행동이 무의식에 따른 자기합리화 혹은 그에 반항하는 발버둥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게 특별히 나쁘다는 가치 판단은 배제하고서라도 말이다. 만약 내가 언젠가 또 글을 쓰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도 무의식을 메인 테마로 삼아 쓸 것 같다.
이 소설의 개인적 여담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다. 내가 하얀 마스크의 심리나 감정 상태를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은 건 한센병과 전혀 연이 닿지 않은 삶을 살아온 내가 그의 감정을 지레짐작하는 건 주제 넘는 짓이 아닌가, 그것은 기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감히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은, 겪고 있는 그분들에게도 위로를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