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도 시민단체와의 만남...“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에 대해 사과한다”
북해도 시민단체와의 만남...“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에 대해 사과한다”
  • 장현진 기자
  • 승인 2018.12.10 11: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삿포로 해외취재

우리는 사실들을 기억한다는 문구의 광고가 2012, 미국 뉴저지주 지역지 <스타레저>에 실렸다. 일본 극우 세력의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의도였다.

고 김학순 할머니의 최초 증언을 시작으로 한국과 일본은 1991년부터 지금까지 27년 동안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가지고 갈등 중이다. 일본군 위안부는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함이라는 명목으로 설치된 위안소에 강제 동원되어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을 지칭한다. 피해 여성들과 국제 사회가 일본 정부의 범죄 사실을 인정하고 있음에도 그들은 계속해서 거짓이라 우긴다.

오히려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을 내세우며 정당한 배상과 사죄를 촉구하는 목소리에도 귀 닫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19512차 세계 대전 종전 시 전승국에 대한 일본의 전쟁 배상을 명시한 조약이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의 대전(對戰) 국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 조약에서 논외 됐다. 일본은 이를 근거로 위안부 배상이 끝났다는 억지 주장을 하는 것이다.

한편 일본 정부는 위안부 모집에 대해 민간차원에서 행한 일이라며 증거가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또한 지난 2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아베 총리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기도 했다. 자신들의 잘못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일본 정부의 모습이 과거에서부터 계속되는 중이다.

1110, 북해도의 작은 음식점에서 일본군 위안부해결이 목표인 북해도회를 만났다. 일본 정부의 사실 부정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이 단체에는 약 20명 이상의 사람들이 속해 있다. 일본인과 대만인으로 구성된 이들은 대한민국 공부를 하고 있다. 일 관계의 오랜 역사에 관심이 많은 그들이다. 영화 <귀향>을 인상 깊게 봤다고 한다. 본보 기자들과 마주하자마자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건넸다.

이번 인터뷰는 형식적이지 않았다. 모두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였던 자유로운 대담이었다. 대담에는 북해도 시민단체의 설립자인 김시간 씨를 비롯한 시민단체 구성원과 본보 김다빈, 이나영, 이수진, 장현진 기자가 참여했다. 우리는 두 시간 동안 서로의 국가에 대한 생각과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장현진 기자 : 어떤 계기로 이 단체를 만들게 되었는가.

김시간 : 내 소망을 펼칠 수 있는 곳이 간절했다. 그 소망은 역사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역사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난 사람들이 모여 이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소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장현진 기자 : 주로 무슨 활동을 하는가.

김시간 : 양국의 역사가 바로 알려질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한다. 여러 가지를 진행하고 있는데, 그중 1인극이 대표적이다. 이는 한국 동화작가가 쓴 시나리오인 무명저고리와 엄마를 바탕으로 했다. 문화 왕래의 길을 넓히고, 사람 사이의 소통을 통해 차근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을 했다. 양국 간 문화적 교류의 첫 단계가 바로 이 1인극이다.

 

한편 한국의 과거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후지모토 도코야마 히사코 씨는 기자들에게 조선학교를 소개했다. ‘조선학교는 재일조선인이 다니는 학교다. 일본 정부는 교육 기관에 일부 재정적 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이 학교에 대한 지원은 아예 없다.

 

후지모토 도코야마 히사코 : 조선학교는 일본 정부가 재정적 도움을 주지 않는다. 일본이 한국에 가지는 악감정이 드러나는 듯하다. 한국 사람들은 일본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가.

장현진 기자 : 조선학교의 경우처럼 한국이라서 겪는 부당한 상황을 보면 화가 난다. 억울한 마음도 든다. 더 나아가 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지 않는지도 의문이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이 밉지만, 이런 단체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더 많은 사람이 진실을 알기 위해 공부했으면 좋겠다.

 

미스히 카즈미 : 한국 젊은이들은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이렇게 일본에 방문해준 여러분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일본은 나이가 있는 사람들만 사회에 관심을 가진다. 한국 젊은이들이 사회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수진 기자 : 우리 부모님 세대는 민주화에 열망이 있던 시대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밑에서 자랐으니 자연스럽게 체득한 듯하다. 사회 문제를 남 일이라고만 생각하면 안 된다. ‘개인에서 머무르지 않고 더 나아가 우리의 문제라고 생각해야 한다.

김다빈 기자 : 이수진 기자의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것도 사람마다 다르다. 젊다고 해서 전부 정치나 사회에 관심을 두는 것은 아니다. 아예 무심한 사람들도 많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사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타기 리코 : 여러분이 이번 일본 방문에 어떤 기대를 하고 방문했는지 궁금하다.

이수진 기자 : 지난 8, 이나영 기자와 나는 우에무라 교수님이 위원으로 계시는 한일포럼에 참가했다.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한일 학생들이 만나는 자리였다. 그 자리를 인연으로 이번 우에무라 교수님 재판 1심 판결 취재에 참여하게 됐다.

장현진 기자 :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왔다. 그러나 예상했던 판결과 다른 재판 결과에 실망감이 컸다. 승소할 줄 알았다. 증거와 증인이 명확하고, 교수님의 보도 기사는 사실에 기반했기 때문이다. 이번 재판은 일본 재판부가 띠고 있는 강한 정치색이 느껴졌다. 행정부 아래 사법부가 있다는 얘기에 충격받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분은 다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일본 시민들이 일본군 ‘위안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었다.

 

호기심과 기대를 하고 찾은 자리인 만큼, 그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에 관해 물었다.

 

장현진 기자 :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 부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카노 : 일본 정부는 한국 국민들의 반발을 반일 행동으로 보고 있다. 소녀상을 세우고, 수요시위를 하는 것 말이다. 그러나 일본 국민과 일본 정부가 같은 입장이라고는 볼 수 없다. 지난 후쿠시마 원자력 폭발 사고 이후 정부를 불신하는 국민들이 많아졌다. 이 사고 전에는 소수의 운동권만 정부에 관심을 가지고 집회에 참여했다.

하지만 최근, 비교적 많은 사람이 참가하기 시작했다. 파도가 일고 있다. 역사 인식도 이렇게 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점점 더 큰 파도를 만들어야 한다. 아직은 역사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국민 스스로가 정부의 역사에 대한 움직임에 문제의식을 느낀다면 역사는 충분히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후지모토 도코야마 히사코 : 사실 일본군 위안부문제는 젠더의식까지 범위를 넓혀 생각해야 한다. 영화 <귀향> 속 군인들이 성노예 생활이 끝나면 필요 없어졌다는 이유로 여성을 매장, 사살하는 장면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과거 군국주의 시절에도 일본은 북해도에 부임한 교사에게 위안을 줘야 한다는 이유로 일본 여성들을 데려갔다. 이 사례들을 보면 일본이라는 국가가 과거부터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가져왔다는 걸 알 수 있다. 정부가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건, 기득권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사카노 씨의 말이 맞다. 역사 인식 문제는 파도처럼 커질 때 해결될 수 있다. 기자는 일본 시민 전부가 일본 정부와 같은 생각인 줄 알았다. 언론에 비치는 일본은 항상 비협조적이었다. 이와 다르게 자국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아는 북해도 시민단체에 감히 고마운 마음을 전해본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진다면 일본 정부도 다른 태도를 보여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의 끊임없는 공부가 일본 정부 변화의 첫걸음이 되어주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고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인용하여 글을 마친다.

 

나 죽은 뒤에는 말해줄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싶은 생각이 들었어. 이제 생각하는 건 그저 일본에 잘못했다는 소리 듣는 거. 원이 그거야 이제. 다른 건 없어

-19977월 생전 마지막 인터뷰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