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같은 필연 : 우에무라 곁엔 그들이 있었다
우연 같은 필연 : 우에무라 곁엔 그들이 있었다
  • 이수진 기자
  • 승인 2018.12.19 15: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삿포로 해외취재

오츠카레마시다(수고하셨습니다)!”

외침과 함께 뒤풀이 현장은 테이블마다 잔 부딪히는 소리가 가득했다. 본교 초청 교수인 우에무라 다카시 교수 재판의 뒤풀이 현장이다. 재판, 기자회견, 보고회를 연달아 소화하는 일정을 마무리하는 자리였다.

전 홋카이도 신문 기자 키타씨가 본보 기자들이 모인 테이블을 찾았다. 그는 한국에 취재원으로 온 적이 있다. 그 당시 좋아했던 노래가 있다며 불렀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노사연의 만남이라는 노래이다.

일본군 '위안부' 기사를 쓴 저널리스트 키타 요시노리.

뒤풀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만남은 모두 다른 염원을 가지고 만난 필연일 것이다. 기자로서의 숙명, 바른 역사를 향한 열망 등이 모인 자리였다. 사람들은 테이블마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저마다의 생각을 나눴다. 기자는 신문노련의 전 회장, 전직 기자와 교사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Q1.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키타 : 키타 요시노리입니다. 우에무라 씨와 저는 둘 다 저널리스트예요. 그리고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위안부관련 기사를 썼지요. 저는 김학순 할머니를 인터뷰했고, 그는 할머니의 녹취록을 이용했습니다.

아라사키 : 안녕하세요, 아라사키 세이고입니다. 교도통신에서 기자를 했고, 2년 전까지 신문노동연합(이하 신문노련)의 회장을 맡았습니다.

나나오 : 나나오 히사코입니다. 올해 65세가 되었습니다. 전직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Q2. 세 분 모두 우에무라 교수님을 오랫동안 돕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키타 : 우리는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적었지만, 그는 공격받았고 저는 무사했습니다. 이에 의문이 생겼고, 우에무라 씨의 재판에 증인으로 섰습니다.

아라사키 : 20147월부터 신문노련의 회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회장을 맡고 있던 당시에 신문사 중 가장 큰 공격을 받았던 곳이 <아사히> 신문사였습니다. 아사히 신문사 내에서도 우에무라 씨가 가장 큰 공격을 받았습니다. 20년 전에 쓴 기사를 가지고 지금에 와서 가족과 본인을 공격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나오 : 평소에 위안부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위안부문제로 공격받는 사람이 있는 것 역시 알고 있었죠. 그런데 그 사람이 삿포로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무조건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Q3. 우에무라 교수님을 도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키타 : 저도 가족이 있어요. 특히, 손녀가 있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네티즌이 제 블로그에 찾아와서 좋지 않은 댓글을 적고 갈 때가 있어요. (우에무라 씨처럼 가족이 공격받게 될까 봐) 그럴 때 가장 많이 힘들었습니다.

아라사키 : 신문노련은 아사히 신문 이외에도 다른 신문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사히 신문사를 집중적으로 돕는다는 것이 모두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죠.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가 왜 아사히 신문사를 도와야 하는지 설명하는 일이 어려웠습니다. 일부는 아사히 신문사의 개인적인 일을 왜 신문노련에서 도와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신문사라도 20년 전의 기사로 20년 뒤에 문제 제기를 받는다면 그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20년 뒤에 공격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에무라 씨를 돕는 것이 바른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나나오 : 제 어머니가 폐암 투병 중에 돌아가셨어요. 어머니 일도 힘들었지만, 당시 재판 상황도 좋지 않아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때 우에무라 선생님이 재판도 재판이지만, 어머니를 돌봐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재판을 뒤로하고 어머니를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탔죠. 그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Q4. 그렇다면 반대로, 우에무라 교수님을 도우면서 보람찼던 순간도 있었을 것 같아요.

키타 : 솔직히 보람 있던 순간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늘(재판 당일) 1심에서 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래에, 혹은 2심에서 이기게 된다면 그 순간이 보람찰 것 같네요. 그리고 우리는 그날이 분명히 올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아라사키 : 오늘(재판 당일)이 가장 보람차다고 말하고 싶었어요(웃음). 하지만 오늘 재판에서 졌더라도,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람이 만나고 그를 지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보람차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나오 : 증인 신문을 대비해서 사쿠라이 요시코 씨의 책을 90권가량 읽고 준비했어요. 실제로, 그 책을 읽고 잘못된 기록을 찾았고요. 제가 찾은 오류를 재판에서 사용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어요.

 

Q5.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번 1심 판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키타 : 분노했습니다.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당연히 이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재판부가 너무 이상했습니다. 재판이 끝나고 판결문을 반복해서 계속 읽었습니다. 읽고 난 이후에 모순이 가득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판결과는 관련이 적을 수 있지만, 지금 정권이 엉망진창입니다. 보수적인 정권은 많았지만 아베 정권은 유독 비정상적입니다. 누구도 아베 총리에게 조언하는 사람이 없고, 이런 상황은 일본 내각에 아주 위험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아라사키 : 재판관이 취재 과정과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기자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지 계속 되물으며 취재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타인의 의견을 듣고 적은 것이 우리(기자)의 기사와 같은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어요. 재판관이 취재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죠. 우리들이 했던 일(취재, 사실 검증 등)을 재판에서 모두 부정당한 느낌이었습니다.

나나오 : 재판에 져서 너무 분했습니다. 이번 판결은 정확한 판결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저와 같은 일반인이 봐도 재판부가 증거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음이 보였어요. 재판장 내에서는 밝게 있었지만, 집에 돌아가서는 너무 분해 울었어요. 하지만 우에무라 선생님이 재판에서 졌다고 해서 울면서 멈춰있지 않았고, 지원자들 역시 그렇게 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응원을 해줬다고 생각해요. 재판이라는 것은 승패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재판을 함으로써 사회에 문제를 환기하고, 문제 인식을 시키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피고 측에게 사실오인에 대한 인정을 시킨 것부터 많은 부분에서 이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