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되감기] 떠나보내는 법: 영화 '봄날은 간다'
[필름 되감기] 떠나보내는 법: 영화 '봄날은 간다'
  • 김다은 기자
  • 승인 2018.12.27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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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를 집 앞까지 바래다준 상우에게 은수가 건네 말이다. "라면 먹을래요?"  라면을 시작으로 둘은 연애를 시작한다. (출처_  )
은수를 집 앞까지 바래다준 상우에게 은수가 건네 말이다.
"라면 먹을래요?" 라면을 시작으로 둘은 연애를 시작한다.
(출처_<사랑에 실패하는 사람들이 봐야하는 영화>, 영민하다 유튜브 캡쳐)

여자가 남자에게 ‘라면... 먹을래요?’라고 말했다. 남자는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라면으로 이어진 둘의 사랑은 빠르게 식어버렸다. 여자는 떠났고, 남자는 그 자리에 혼자 남아있었다. 영원할 줄 알았던 남자의 봄이 끝나버렸다.

다섯 문장으로 소개한 짧은 연애담은 영화 <봄날의 간다>의 상우와 은수의 이야기다. 은수에게 사랑은 ‘라면’이다. 라면은 짧은 시간에 조리해 빠르게 해치울 수 있다. 이처럼 은수는 상우와 빠르게 가까워졌고, 마음도 빠르게 정리했다. 그런 은수에게 상우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물었다. 

영화 <봄날은 간다>는 남녀의 평범한 사랑 이야기로 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상우’를 통해 한 사람의 ‘성장’을 그려냈다. 상우는 집 앞마당에 쌓인 눈을 밟으며 좋아한다. 은수의 연락에 이불 속에서 배시시 웃고 부끄러워한다. 그는 술을 먹고 은수를 보러 서울에서 강릉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상우는 그런 사람이다.

 

은수가 상우에게 헤어짐을 전한다. 상우에게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출처_<사랑에 실패하는 사람들이 봐야하는 영화>,영민하다 유튜브 캡쳐)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 믿었던 그는 연애가 끝에 달하자 ‘찌질이 3 콤보’를 달성한다. 밤새 전화를 기다리며 핸드폰 쳐다보기, 술 먹고 은수의 집 앞에서 밤새우기, 차 키로 은수 차에 스크래치 내기, 거기에 덤으로 걸리기까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두 각자 이러한 찌질이 콤보는 하나씩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상우처럼 지난 연인을 놓지 못했다. 추억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끝까지 매달렸다. 떠나야할 것을 내 욕심으로 붙잡으려 했다. 찍은 사진과 편지를 꺼내보며 밤새 울었다. 왜 우냐는 엄마 말에 “슬픈 영화 봐서 그래!”라고 외쳤다. 헤어진 후에도 다시 만나자며 연락했다. 결국엔 애틋한 추억도, 관계도, 내 자신도 지켜내지 못했다.

상우의 첫 번째 봄이 왔다. 담 넘어 가득 펴있는 개나리를 보고 있는 상우에게 할머니가 다가갔다. 그리고 할머니는 넌지시 말을 건넨다. “힘들지? 버스와 여자가 떠나가면 붙잡는 게 아니란다” 할머니의 말이 맞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 곁을 떠나간 것을 붙잡을 필요 없다. 그것이 연인, 친구, 가족...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정 잡아야 한다면, 후회가 없을 만큼만 매달려보자. 필자는 사람을 만나며 미련 없이 보내는 법을 배웠다. 상우 역시 은수를 통해 이별을 배웠다.

 

하얀벚꽃아래 은수를 드디어 떠나보낸 상우. 멀리 서있는 은수의 모습은 흐렷해진다.
(출처_치열하게 그리고 사랑하기 다음 블로그)

새하얀 벚꽃이 핀 어느 날, 상우는 은수의 연락을 받는다. 은수는 상우의 팔짱을 끼며 같이 있자고 한다. 상우가 자신의 팔에 두른 은수의 손을 잡아뗀다. 그는 은수의 뒷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 아랫입술을 깨물며 참는다. 은수가 한걸음씩 멀어질수록 그녀의 모습은 흐릿해진다. 이는 상우의 두 번째 봄이었다.

 

상우는 흩날리는 갈대밭에 홀로 섰다. 그는 은수의 콧노래가 담긴 녹음 테이프에 바람소리를 덧씌운다. 상우는 넌지시 미소를 짓는다.
(출처_<사랑에 실패하는 사람들이 봐야하는 영화>,영민하다 유튜브 캡쳐)

겨울 대나무 숲에서 ‘사-사-서-서-’ 바람소리를 담던 둘은 이제 없다. 갈대 밭 사이에 상우가 홀로 마이크를 들고 섰다. 상우는 은수의 콧노래가 담긴 테이프를 지나가는 바람 소리로 덮었다. 그리고 그는 옅은 웃음을 지었다. 상우의 첫 번째 봄날이 갔다. 그래도 괜찮다. 그의 봄날은 계속해서 찾아올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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