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전북 익산시 원룸 주차장 쓰레기 더미에서 신생아가 숨진 채 발견됐다. 20대 산모 김 모 씨는 “양육 능력이 없어서 출산 후 아이를 방치했다”며 “가족이나 동거남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기 무서워 화장실에서 혼자 아이를 낳았다”고 진술했다. 이렇게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임부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다. 임신중절을 원해도 범죄자로 치부하는 모자보건법 때문에 제대로 된 수술이 어렵기 때문이다.
모자보건법은 모성 및 영유아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 건전한 자녀의 출산과 양육을 도모함으로써 국민보건 향상에 이바지하기 위한 취지로 제정된 법률이다. 그리고 이 법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여성의 임신중절을 금지하고 있다. 다만 일정한 허용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는 제외한다. 요건에 해당되는 임부는 임신 24주 이내인 경우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 합법적으로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
제14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① 의사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되는 경우에만 본인과 배우자(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동의를 받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
1.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優生學的)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2.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3. 강간 또는 준강간(準强姦)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4.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5.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
위의 5가지 사유는 1973년 모자보건법 제정 당시부터 지금까지 개정되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다. 제정된 지 45년이나 흘렀지만, ‘사회경제적 사유’는 하나도 반영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와 달리 외국 입법례는 사회경제적 사유를 인정하여 인공임신중절 허용 사유가 보다 폭 넓게 적용되고 있다. 핀란드는 자녀가 4명 이상일 때, 노르웨이는 임부의 연령이 16세 미만이면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는 미성년자일 때 허용한다.
식품의약안전처가 올해 3분기 낙태 유도제를 온라인에서 판매하다 적발된 건수를 조사한 결과는 856건이었다. 지난해 180건 대비 약 5배 증가한 수치다. 적발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은 사례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불법 낙태 유도제는 합법적 수술이 금지된 임부들에게 주어진 비밀스러운 선택지 중 하나였다.
임신중절의 선택권도, 확실한 입양 보장도, 넉넉한 지원도 주어지지 않는 임부들에게 책임의 굴레를 모두 지우는 행위는 옳지 않다. “낙태가 죄라면, 그 범인은 국가다.” 한국여성민우회 등 11개 단체로 구성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이 외친 구호다. 임신중절을 ‘태아의 생명권 대 여성의 생명권’이라는 이분법적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생명에 대한 존중과 여성에 대한 자기결정권, 행복추구권이 동시에 고려되어야 할 사안임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