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해부학 실습, 그 위대한 서막
[성의] 해부학 실습, 그 위대한 서막
  • 윤지수 수습기자
  • 승인 2019.05.21 16:2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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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누구보다 경건한 마음으로 이번 학기를 맞이한 이들이 있다. 천진난만했던 의예과 2년을 마치고 소위 본과라고 불리는 의학과에 진급한 학생들이다. 본과 1학년부터는 블록 강의가 도입되어 몇 주 동안 하나의 단위과정만을 공부하고, 그 과정이 끝나야 다음 과정이 시작된다. 본과의 포문을 여는 첫 번째 단위과정은 해부학 실습이 진행되는 <인체의 구조>이다. 실습은 2월 중순에 시작되는 골학 실습을 포함해 총 8주 간 이루어진다. 평일 오전에는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실습을 하며, 주말에는 시험을 보는 일정이 반복된다.

왼쪽부터 장소이(의학․1), 구서영(의학․1) 학생.
왼쪽부터 장소이(의학․1), 구서영(의학․1) 학생.

 

마지막 해부학 시험이 치러진 날 구서영(의학1), 장소이 학생을 만났다. 피곤한 기색은 온데간데없고, 후련한 미소만이 가득했다. 구서영 학생은 인생에서 제일 임팩트 있는 두 달이었다며 당시의 벅찬 마음을 전했다.

Q1. 의학에 입문한 소감이 궁금하다.

장소이: 첫 과목이 해부학인 덕분에 악명 높은 본과 생활을 곧바로 실감할 수 있었다. 아직 새 발의 피만 배운 건데도 쉽지 않았다. 공부를 마친 선배님들을 존경하게 됐다. , 의학은 책으로만 이해할 수는 없는 학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해부학 이론과 실습의 내용이 겹치는데도, 괴리가 정말 컸다. 책 속의 인체와 실제 인체의 모습은 달랐기 때문이다. 실습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고, 기술적인 부분도 의학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Q2. 실습과 공부를 병행하는 스케줄이 몹시 바쁘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인가?

장소이: 사실이다. 실습이 몸으로 하는 일이라 굉장히 피곤한데도 끝나자마자 공부를 해야 했다. 배우는 내용의 양이 예과 때보다 훨씬 많아지기도 했고, 시험을 매주 봐서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룰 수가 없었다. 오후 실습이 저녁 늦게까지 이어지는 날이면 새벽까지 공부를 해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은 어김없이 아침 8시까지 등교를 했다. 시험을 주말에 보기 때문에 수요일부터 집에 안 가고 학교에서 숙식하며 지낼 때도 있었다. 체력적으로 힘들어서였는지 실습을 하며 잔병치레를 한 동기들도 많았다.

Q3. ‘해부학 실습이라고 하면 왠지 무섭고 긴장된다.

구서영: 음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혀 아니다. 우리 학교 실습실은 쾌적한 편이며, 실습은 상당히 밝은 환경 속에서 진행된다. 때문에 비위가 약해서 힘들어 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해부할 때는 의외로 냉정해진다.

Q4. 실습을 조별로 한다고 들었다. 조별 활동의 노하우가 생겼다면 무엇인지?

구서영: 정해진 목표를 끝내야 집에 갈 수 있었다. 그래서 역할 분담이 제일 중요했다. 시간 아끼려고 실습 시간에도 개인적인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실습에 최선을 다하는 게 진짜 공부다.

장소이: 메스 들고 해부를 직접 하는 친구를 두고 잘 판다고, ‘포크레인이라고 한다. 우리 조는 모두가 열심히 하는 포크레인이어서 역할 분담이랄 게 없었다. 열정적인 조원들로부터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다. 열의를 갖고 하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서로에게도 좋다.

Q5. 시신 기증자 분들께는 어떤 마음이 드는가?

구서영: 처음에는 기증자들의 어려웠을 결심을 떠올리며 그저 감사하면서도 죄송하기만 했다. 그런데 해부 중간의 옴니버스 교육과정의 나눔의 시간속에서 다른 친구의 얘기를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시신 자체는 무가치한 것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시신을 통해 공부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시신의 가치를 0에서 100으로 끌어 올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열심히 공부하여 의료에 이바지하는 것이 시신 기증자분들의 마음에 보답하는 길이 아닐까 싶었다. 옴니버스 이후로는 힘들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학업에 대한 의지를 불태울 수 있었다.

Q6. 바쁜 일상 속에서도 감사한 마음을 매일 상기시킬 수 있었는지?

구서영: 솔직히 초심을 잃을 때도 많았지만 일상 속 여러 가지 것들이 기증자 분들을 떠올리게 했다. 예를 들어 실습 전후에 매일 드리는 기도나, 예우를 갖춘 실습 원칙 같은 것들이다.

장소이: 실습실 앞쪽에는 기증자 분들의 명패가 걸려 있었다. 기증자가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가까이에 이름으로서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명패를 볼 때면 마음이 무겁기도 했지만 덕분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Q7. 앞으로 해부학 실습을 하게 될 의과대학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구서영: 하루하루가 너무 지치다보니 감정 기복이 정말 심했다. 나 스스로 지킬 앤 하이드가 된 줄 알았다. 해부 실습을 하는 동안은 나가서 맛있는 걸 사먹을 시간도 없고, 남들 다 하는 꽃구경도 나만 못한다. 그러니 스트레스 해소법을 준비해오길 바란다.

장소이: 공부할 자료가 정말 많은데 다 볼 수는 없으니 자기 취향에 맞는 것을 잘 골라야 한다. 나는 도서관에서 여러 종류의 교과서를 둘러보고 골랐다. 공부법에는 정답이 없으니 남들과 비교하며 불안해하지 말고 자신의 스타일대로 하면 된다. 그런데 공부도 공부지만 무엇보다도 동기들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의학과 1학년 학생들은 올해 111, 기증자가 모셔진 용인 참사랑 묘역에서 유가족, 교직원들과 함께 위령미사를 봉헌하게 된다. 무사히 의학과의 서막을 올린 모든 1학년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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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 2019-05-21 18:45:47
마치 제가 해부를 한것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인터뷰기사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