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한센병 문화상 특집] 1부 - 한센병의 역사
[제11회 한센병 문화상 특집] 1부 - 한센병의 역사
  • 이시연 기자
  • 승인 2019.09.19 2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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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특집은 제11회 한센병 문화상을 맞아 한센병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해 총 2부로 기획되었습니다. 1부에서는 한센병의 역사를, 2부에서는 한센인과 비한센인이 함께 만들어나갈 미래를 조망합니다.

11회 한센병 문화상 출품작 모집

올해 제11회를 맞은 한센병 문화상이 세 교정(성심, 성신, 성의) 재학생을 대상으로 923일부터 1023일까지 출품작을 모집한다. 한센병과 관련된 주제의 학술논문과 문예 창작물을 대상으로 하며 시, 소설, 평론, 수필, 사진 등 다양한 형식의 창작물을 제출할 수 있다.

한센병,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한센병이라는 병명은 병원체인 나균을 발견한 노르웨이 의학자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감염 초기에는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며, 최대 20년의 잠복기 이후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한센병의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신체 부위의 염증에 의한 통각 능력의 상실이다. 이후 염증 부위는 서서히 썩어 떨어져 나가는데, 이때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환자가 모르는 사이에 상처가 나는 경우가 많다.

과거 한센병은 후유증으로 신체 일부가 기괴하게 변형되어 신이 내린 병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한센병은 전염성이 강한 불치병으로 인식되어 한센인에 대한 비과학적인 괴담이 돌기도 했고, 그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조치가 국가 차원에서 시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나균의 전염력은 매우 낮다. 한국한센복지협회의 설명에 따르면, 한센병은 치료 중이지 않은 중증 환자와 긴밀한 접촉이 이루어졌을 때만 감염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대부분은 태어날 때부터 나균에 대한 저항력을 지녔기 때문에 쉽게 감염되지 않는다.

한센인 차별의 역사

한센인은 치료제가 국내에 도입된 이후에도 사회의 편견 속에서 고통스러워했다. 이들은 문둥이라고 불리며 돌팔매질 당하거나 한센인 수용시설로 격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병이 완치된 후에도 사회의 시선을 견디지 못해 집단 거주지를 이루어 생활했는데, 그중 가장 잘 알려진 한센인 마을이 바로 전남 소록도이다.

소록도는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넘어 각종 인권유린이 행해진 역사를 지니고 있다. 당시 우수한 유전자만 남기고 열등한 유전자를 배제한다는 우생학적 정책 하에 한센인은 열등한 유전자로 분류되어 강제로 단종(남성 피임)과 낙태를 당했다. 정부 관계자의 눈을 피해 출산에 성공하더라도 자녀를 몰래 키워야 했고, 적발된 즉시 자녀는 한센인 2세 학교로 격리되어 지속적인 감시를 받아야 했다.

지역사회는 한센인을 노역에 동원하기도 했다. 1962년부터 시작된 '오마도 간척사업'은 소록도 근처에 위치한 오마도 앞바다를 메워 한센인을 위한 농지를 마련하고자 한 사업이다. 정부는 간척지가 완성되면 노역에 동원한 한센인에게 나누어 주기로 계약하였으나, 공사 도중 별도의 합의 없이 비한센인 주민에게 분양되었다.

한센인에 대한 반인륜적 행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9578, 경남 사천에 위치한 비토섬에서는 농지를 찾아온 한센인들이 섬 주민들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비토섬은 굴 양식을 생업으로 삼았는데, 양식장 주변에 한센인이 거주한다는 사실이 알려질 것을 우려했다. 두 집단 간의 갈등은 결국 섬 주민 백여 명이 한센인을 몽둥이와 죽창으로 습격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으로 한센인 27명이 살해당했지만, 피의자 중 단 몇 명만이 3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받은 것으로 무마되었다.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 필요

2017년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 한센병을 앓고 있는 국내 환자는 125명이다. 이 밖의 한센인은 모두 완치된 상태로, 신체 변형으로 생긴 후유증을 치료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7년에 확인된 신규 한센병 환자의 숫자도 단 3명에 불과하다. 몇 년 후에는 한국이 더는 환자가 나오지 않는 한센병 퇴치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처럼 한센병은 의학적으로 퇴치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한센인에 대한 비한센인의 편견과 오해는 퇴치될 기약이 없다. 많은 한센인은 한때 병을 앓았다는 이유만으로 반인권적인 취급을 당했으며, 이에 대한 사과나 보상도 요구하지 못했다. 그들을 침묵하게 하는 것은 어쩌면 비한센인인 우리의 무관심이 아닐까.

2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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