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그리고‘제100회 전국체육대회’
3.1운동 100주년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그리고‘제100회 전국체육대회’
  • 이시연 기자
  • 승인 2019.10.08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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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회 전국체육대회

대한체육회가 주최하는 제100회 전국체육대회(이하 전국체전)104일부터 오는 10일까지 7일간 서울 일대에서 개최된다. 3만여 명의 선수가 출전하는 이번 대회에서는 시범 종목인 택견과 보디빌딩을 포함하여 총 47개 종목이 진행된다.

(출처_제 100회 전국체육대회 공식 홈페이지)
(출처_제 100회 전국체육대회 공식 홈페이지)

 

100회를 맞는 올해 전국체전이 더욱 의미가 있는 이유는 바로 올해가 3.1운동 100주년이자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전국체전은 일제의 제재를 피해 개최 규모나 형식, 장소에 잦은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체전은 매년 체육 활동을 통해 독립에 대한 염원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자 했다.

전국체전의 시작

전국체전의 시작은 정확히 100년 전인 19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는 3.1 만세운동 직후, 일제가 문화통치로 전환하는 시기였다. 이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총독부는 조선체육협회를 설립하여 친일파 체육인을 양성하고자 했다. 이에 반대한 항일 체육인들은 독자적으로 조선체육회를 설립했고, 전국체전의 전신인 전조선야구대회를 주최했다. 대회의 규모가 점점 커지자 주최 측은 전조선종합경기대회로 명칭을 변경하여 야구를 포함한 다섯 종목으로 대회를 진행했다. 이처럼 전국체전은 일제의 압박 속에서도 꾸준히 개최되었고, 국민의 항일의식 고취에 큰 역할을 했다.

일제의 탄압, 전국체전의 위기

그러나 곧 조선체육회와 전조선종합경기대회에 위기가 찾아왔다. 1936년 동아일보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 우승자인 손기정 선수의 사진에서 유니폼에 그려진 일장기를 삭제한 일장기말소사건이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이 사건으로 동아일보는 무기 정간 처분을 받았고, 편집국장을 포함한 사원 8명이 구속되었다. 뒤이어 조선체육회가 총독부의 지시로 강제 해산되었고, 전조선종합경기대회도 잠정 중단되었다. 이후 1944년까지 약 7년간 대회가 열리지 못하였으며 소규모 축구대회로 명맥을 유지하는 데 그쳤다.

자유해방경축종합경기대회 개회식에서 태극기를 들고 눈물을 흘리는 손기정 선수. (출처_2019 손기정평화마라톤대회 공식홈페이지)
자유해방경축종합경기대회 개회식에서 태극기를 들고 눈물을 흘리는 손기정 선수. (출처_2019 손기정평화마라톤대회 공식홈페이지)

 

해방과 전국체전의 부활, 그리고 현재

19458, 해방과 함께 강제 해산했던 조선체육회가 활동을 재개했다. 이들이 가장 먼저 개최한 체육행사는 같은 해 12월에 열린 자유해방경축종합경기대회였다. 개회식에서 손기정 선수가 태극기를 들고 눈물을 흘리는 사진은 해방의 기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후 6.25 전쟁 당시 다시 한 번 대회가 중단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격전지였던 서울을 피해 사상 처음 지방(전라남도 광주)에서 대회를 개최하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드디어 2019, 영광스러운 100회를 맞이했다.

운동 경기, 그 이상의 의미

이처럼 전국체전은 동 시대의 시국을 매년 반영해왔다. 특히 일제강점기 전후로는 독립에 대한 염원과 자유를 쟁취한 기쁨을 함께했다. 그렇기에 전국체전은 단순히 매년 열리는 운동 경기가 아닌, 지난 한 세기의 역사가 담긴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100회 전국체육대회는 아직 진행 중이다. 평소 관심 있는 스포츠가 있다면 중계방송을 시청하거나 직접 관람해 보는 것은 어떨까. 종목별 일정과 경기장은 전국체전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이 가능하며, 모든 종목의 경기를 별도의 티켓팅 없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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