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helf of CMC] 김형렬 교수의 책장 – 직업환경의학과 의사에게 책은 공감의 창이다
[Bookshelf of CMC] 김형렬 교수의 책장 – 직업환경의학과 의사에게 책은 공감의 창이다
  • 윤지수 기자
  • 승인 2019.11.10 16:2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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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helf of CMC>는 성의교정의 교수님들을 만나 다양한 의학 분야에 관해 들어보고, 그들이 직접 추천하는 책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김형렬 교수의 모습.
김형렬 교수의 모습.

 

대한민국 길거리에서 미용실만큼이나 흔히 보이는 간판이 병원 간판이다. 그런데 직업환경의학과라는 간판을 본 기억은 없다. 기자도 의과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진 듣도 보도 못한 과였다. 최근 SBS에서 방영된 드라마 <닥터탐정>의 주인공이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라고 말하면 무릎을 치는 사람이 있으려나.

직업환경의학과에서는 직업적,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상과 위험을 연구한다. 직업환경적 유해요인에는 중금속, 분진, 유기화합물 등의 작업장 유해인자 뿐 아니라 교대작업, 장시간노동 등의 사회적 요인까지도 포함된다. 질환 자체보다는 직업병을 유발한 환자의 삶과 환경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우선이다. 진료실 밖의 현장에서, 정말 다양한 직종의 환자를 만나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공감은 기본이다.

직업환경의학과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연구 결과를 통해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고, 법과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다. ‘자살하려고 지하철 역사로 뛰어든 승객을 치어서 숨지게 한 사고로 인해 철도 기관사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발생한다는 연구 이후, 모든 서울시 지하철 역사에는 스크린도어가 설치됐다. 진정한 파워 인플루언서가 아니시냐는 질문에, 김형렬 교수는 제 연구가 분명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맞지만 절대로 영향력 있어지는 걸 목표로 하지는 않아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창은 바깥의 풍경이 담긴 액자이기도 하고, 바람이 넘나드는 통로이기도 하다. 김형렬 교수에게 책이란 공감의 창이다. 그에게 책은 인간을 바라보는 프레임이자, 다양한 감정을 비우고 채우는 수단이다. 책을 읽고 눈물을 흘리며 노동자들에게 한없이 냉담한 현실에 대한 분노를 정화하기도 하고, 공감의 온기를 채우기도 한다.

문학을 만끽했던 소년, 그리고 문학을 사랑했던 청년

책을 되게 좋아했거든요, 지금은 많이 못 읽지만. 고등학교 때는 문학반과 독서토론반에서 활동했었어요. 소설도 물론이지만 시도 많이 좋아했어요. 예전에는 문학과지성사시집에 번호가 매겨져 있었는데, 그걸 하나씩 동그라미 쳐가면서 해치울 정도로요. 그리고 한 작가에 빠지면 그 사람 책을 섭렵하는 편이라 헤르만 헤세, 이문열의 책을 특히 많이 읽었었어요. 대학 때는 큰맘 먹고 소설책과 시집을 다 버리고 사회과학책을 주로 읽었지요. 무슨 말인지 알죠? (웃음) 그런데 그런 책들을 당위적으로 읽어서 그런가, 오히려 문학을 읽을 때 치유가 되는 기분이었어요. 왜 그럴까 돌이켜보니 저는 원래부터 문학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더라고요.

직업병 연구의 시작, 그 사람이 되어보기

직업병 연구의 시작은 어떻게 일을 하는지 직접 체험해보는 거예요. 그래야 그분들이 무엇을 불편해하고, 어떤 것을 개선하고 싶어 하는지를 알 수 있어요. 지하철 기관사의 자살률이 높은 이유에 대해 연구를 할 때는 기관사실 옆에 같이 타고 다니고 그랬어요. 대부분의 시간을 지하에 있으니까 불빛만 드문드문 지나가다가 한참 지나 역사의 사람들이 나타나고, 또 한참 지나서 사람들이 나타나는 식이에요. 정말 답답하더라고요. 한 기관사분이 가끔은 터널을 뚫고 <은하철도999>처럼 날아가고 싶다는 상상을 한다고 그러셨는데, 그 마음이 이해됐어요.

직업병 연구의 주체는 누구인가

직업병 연구는 주제 선정 단계부터 노동자들이 참여합니다. 왜냐하면 직업병 연구의 주체는 의사가 아니라 노동자거든요.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노동자들이 자립해서 그들의 요구를 그들의 입으로 외치게 만드는 거니까. 우리가 그들을 대신해서 싸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요. 설명회, 노동조합, 표적집단면접 등을 통해 계속 이야기를 나누며 연구를 진행해요. 그럼에도 연구는 연구인지라 연구자와 연구대상 사이의 권력관계가 불가피하게 존재할 수밖에 없죠. 다만 그 격차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해요.

직무스트레스를 연구하는 의사는 직무스트레스가 없을까?

그럴 리가요. 연구자가 연구 주제와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는 건 굉장히 어려워요. 장시간노동에 관한 연구도 많이 하는데, 정작 제가 장시간 노동자인걸요. 그리고 연구하면서 만나는 노동자들의 부조리한 상황을 바라보는 건 너무 화가 나는 일이에요. 제가 공감능력이 뛰어나서, 정의에 불타서 그러냐고요? 아니에요. 그만큼 상황이 답답하고 열악해요.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아마 저뿐 아니라 누구든 그분들과 얘기하다 보면 분노가 치밀어오를 거예요. 저만의 스트레스 극복 방법은 마라톤이에요. 지난달 27일에 있었던 춘천마라톤 풀코스를 4시간 45분 만에 완주했어요. 처음 풀코스를 뛰었을 때는 6시간이 걸렸는데요. 작년에는 다섯 시간, 올해는 네 시간. 해마다 시간을 줄이고 있어요. 평소에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뛰고, 대회 앞두고 더 자주 뛰는 편이에요.

<쇼코의 미소>

최은영 저 / 문학동네 / 2016. 7. 7.

일곱 편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된 책이에요. 그런데 아까워서 한 번에 다 읽지 않고 하루에 한 편씩 일주일에 걸쳐서 읽었어요. 등장인물은 주로 가난한 사람, 이주 노동자, 성소수자 등 소외 계층이에요. 책을 통해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엿보다가, ‘과연 나는 그들에게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가?’를 반문하게 돼요. ‘바닥을 긁는이야기니까, 꼭 한 번 읽어보세요.

 

<보이지 않는 고통>

캐런 메싱 저 / 김인아, 김규연, 김세은, 이현석, 최민 역 / 동녘 / 2018. 9. 5.

작가가 의사는 아닌데 직업병을 연구하는 인간공학자, 역학자예요. 작가는 직접 노동자를 만나면서 연구자로서의 자신과 노동자들 사이의 공감 격차를 느껴요. 연구자의 이중성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책을 읽고 결국 나의 연구가, 나의 논문이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다시 상기하게 됐어요. 연구가 그저 연구에 그치는 게 바로 공감 격차가 존재한다는 방증일 테니까요.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획

나름북스

2017. 8. 1.

여러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의 글을 엮은 책이고, 의사들이 만난 노동자의 이야기가 있는 그대로 담겨있어요.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책이에요. 수은 중독, 석면 노출, 산업재해 사고의 은폐. 이런 말이 옛날얘기 같죠? 아마 이 책을 읽고 나면 지금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란 걸 알게 될 거예요. 충격적이죠. 그런데 넓게 보면 직업환경의학과를 떠나서 많은 직종의 프로페셔널리즘(전문직업성)이 사회 여러 곳에 닿아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어요. 예를 들면 의사가 병원 안에만 갇혀있을 게 아니라 사회에 목소리를 낼 줄도 알아야겠죠. 우리 사회 곳곳에서 전문가를 필요로 해요.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엄기호 저

나무연필

2018. 12. 14.

여러분이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난다고 쳐요. 그분들의 고통을 진짜로, 나눌 수 있을까요? 고통을 나누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요? 이 책의 결론은 나눌 수 없다예요. 대신 고통의 에 있어 주는 게 우리의 역할이래요. 심리학적으로든, 종교적으로든, 철학적으로든 고통에 접근하는 형태는 다양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곁에 있으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해요.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내가 과연 그들에게 어디까지 공감할 수 있는 걸까 고민이 많았어요. 그때 이 책을 읽고 깨달음을 얻었어요. 곁에 있어 주기요. 그게 제가 할 일인 것 같아요. ‘고통에 대해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길 권해요.

 

<마당을 나온 암탉>

황선미 저 / 사계절 / 2002. 4. 15.

영화로 제작될 정도로 유명한 책이죠. 책을 여러 번 보는 일은 드문데, 이 책은 여러 번 읽었어요. 제일 공감이 많이 됐던 장면은 엄마 잎싹이 아들을 놔줄 때예요. 모성애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읽고 울기도 했고 굉장히 슬픈 책이지만, 또 마냥 슬프기만 하진 않아요. 슬픔 앞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도 그렇게 사는 거야느끼죠. 일종의 공감이기도 하고, 카타르시스이기도 하고. 슬픈데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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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지수최고>__< 2019-11-25 20:33:12
찬찬히 읽어보게 되는 알찬 기사 감사합니다!! 새로운 코너 너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