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을 짓밟고, 고독의 절정에서 찬연하게 날아오릅시다!
꽃길을 짓밟고, 고독의 절정에서 찬연하게 날아오릅시다!
  • 김지연 교수 (국어국문학)
  • 승인 2019.11.12 14: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지연 교수 (국어국문학)
김지연 교수 (국어국문학)

 꽃길만 걸으세요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이 사회의 곳곳에서 달콤하게 나부끼고 있다. 학위수여식의 현장에서도 대학 졸업 그대, 꽃길만 걷길이라는 문구가 펄럭인다. 심지어는 대학의 교정 여기저기에서도 꽃길로 안내하는 스티커가 달콤한 아이스크림 같은 위로를 보내며 청년들을 현혹한다. 지치고 힘든 일상의 스트레스를 꽃길만 걸으세요라는 덕담으로 해소하려는 이 캐치프레이즈는 감성의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누구나 안락하고 향기로운 환경에서, 근심 걱정 없이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는 길로 걸어가길 원한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길은 평탄한 꽃길만 펼쳐지지 않는다. 꽃길만을 걸으려는 것은 허황한 환상이다. 꽃길만 추구하려는 삶의 태도는 고통과 신산을 체험하지 않고 인생을 거저 누리려는 것이다. 청년들은 이 꽃길을 각별히 경계해야 한다.

 특히 대학 캠퍼스는 타성에 빠진 사회의 부조리와 존재의 모순을 깨뜨리고, 영혼의 모험과 고투(苦鬪)를 통해 자기 혁신을 이루어내야 하는 공간이다. 혁신은 묵은 제도, 관습, 방법 등을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뿌려 놓은 꽃길을 걸어가는 것은 혁신이 아니다. 대학 캠퍼스는 청년들이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해서 기존 통념을 깨며 실패와 좌절을 딛고 자신의 인생길을 개척해 나아가는 마당이다.

 

 인문학적 사유는 시대를 초월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게 하는 통찰의 힘을 키우게 한다. 세계의 부조리와 절망적 현실에 항거했던 시적 상상력은 꽃길과는 동떨어진 극단에서 혼의 모험을 형상화하였다. 시적 체험을 통한 혼의 모험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게 하고, 항상 깨어 있는 삶으로 인도한다.

 정지용 시인은 일제 강점의 암흑기에 꾀꼬리는 꾀꼬리 소리밖에 발하지 못하나 항시 새롭다. 꾀꼬리가 숙련으로 운다는 것은 불명예이리라. 오직 생명에서 튀어나오는 항시 최초의 발성이어야만 진부하지 않는다.”(시의 옹호)라며, 실존의 한계와 고통을 초월하는 견인(堅忍)의 정신주의를 갈파하였다. 순정한 열정이 극대화된 구극(究極)에서 튀어나오는 생명의 발성은 찬연하다.

 이육사 시인은 서리빨 칼날진 그 우”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는 절정에서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절정>)라는, 절망을 초극하는 비극적 황홀의 순간을 발견하였다. ‘절정은 치오른 극한으로, 세속적 삶을 극복하고 천상의 세계 또는 신의 세계에 닿으려는 인간의 의지와 초월의 기쁨을 표상한다. 이육사는 절망의 극한에서 운명애로 자신을 껴안고 무지개로 날아올라 끝내 불멸하였다.

 김수영 시인은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라며 바람의 역동적 대립을 형상화하였다. 인간 존재는 때때로 절망과 비애라는 삶의 실존적 조건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김수영의 <>에는 눕고 일어나고, 울고 웃는 일상적 삶의 대립을 해체하는, 인간 존재 의 자유로운 역동정신이 시화되어 있다. 실존의 절망과 비애를 깨뜨리고 자유롭게 웃고, 우뚝 일어서는 부정의 정신은 자기 혁명의 원동력이 된다.

 김현승 시인은 가을에는 /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의 영혼, / 굽이치는 바다와 / 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 마른 나무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가을의 기도>)라며 가을이 불러일으키는 고독의 서정을 육화하였다. 자기 변혁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고독을 통한 삶의 원상과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해야 한다. “마른 나무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는 온갖 욕망을 떨치고 자유로운 영혼과 마주한 고독의 극점을 표상한다. 고독과 대결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마침내 고독을 뚫어버리는 영혼의 분투는 인간의 내면을 탄탄하게 만들며, 풍요롭고 능동적인 삶으로 이끈다.

 

 M. 하이데거는 인간이 그 자신 스스로 실천적인 기투(企投)를 통해 세계 내에 존재하는 현존재라고 하였다. 현존재로서 자신의 가치를 찾기 위해서는 관습화된 것, 안정된 것과 결별하고,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색하여 길 없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대학 캠퍼스를 기투하는 삶의 현장으로 삼아 도전한다면, 우리 청년들은 자아와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정신의 힘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청년들이여! 꽃길을 짓밟고, 아무도 부를 수 없는 자신만의 생명의 노래를 목청껏 부릅시다. 일상적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영원의 세계를 향한 영혼의 고투를 벌입시다. 절망과 고통을 깨뜨리고 자신의 운명을 뜨겁게 껴안으며 패기를 키웁시다. 극한 고독을 뚫어 풍성하고 능동적인 내면을 만듭시다. 구극의 절정에서 날아오르며, 자신을 혁신하는 아름다운 주인공이 됩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