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도, 득점도 없었던 황당한 축구경기
관중도, 득점도 없었던 황당한 축구경기
  • 이시연 기자
  • 승인 2019.11.29 0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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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의 깜깜이 축구

지난달 15, 평양에 위치한 김일성경기장에서 우리나라와 북한의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제2차 예선전 경기가 펼쳐졌다. 평양에서 양국의 남자 축구 대표팀이 맞붙는 것은 1990년 이후로 29년 만이었기에 이목이 쏠렸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적인 관심이 무색하게 해당 경기는 무 관중, 무 중계로 치러졌다. 실제로 경기장에 출입한 인원은 선수들과 국제 축구 연맹(FIFA) 회장을 포함한 관계자 단 50여 명뿐이었다.

경기 생중계 또한 불발되었다. 사전에 북한 당국은 이와 관련해 내부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지만, 경기 직전에 기술적인 문제를 언급하며 취재진의 입국을 거부했다. 그 대신 경기장 출입이 허가된 아시아 축구연맹(AFC) 감독관이 득점이나 선수 교체 등의 내용을 휴대전화 메시지로 아시아 축구연맹 본부에 전달한 후, 뒤이어 대한축구협회에 넘겨주었다. 이렇게 해서 사상 초유의 깜깜이 축구가 진행되었다.

평양에서, 북한이 진다고?

이번 사태의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그중에서도 많은 이들은 김일성경기장이 북한 내에서 갖는 상징성에 주목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이름이 붙은 경기장에서 자국의 패배는 있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만연해있다. 실제로 지난 14년간 해당 경기장에서 열렸던 국제 경기는 모두 북한의 승리였다. 이 믿기 힘든 승률은 당국이 매 경기 전문 응원단을 보내 상대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리는 전략을 취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분석되었다.

이처럼 북한이 국가 차원에서 자국 스포츠팀의 승률에 관여하는 이유는 자국민에게 북한 팀의 전력을 선전함으로써 당국의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렇기에 한국과 맞붙는 이번 경기만큼은 패배해서는 안 되며, 패하더라도 자국민이 알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내부적인 판단하에 이루어진 조치라는 설명이다.

깜깜이 축구속 국제사회에 대한 북한의 메시지

일각에서는 이번 깜깜이 축구를 통해 북한이 우리나라와 미국을 포함한 국제 사회에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라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이 좀처럼 진행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북한 당국이 스포츠를 통해 기 싸움을 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다. 이처럼 의도적으로 우리나라 대표팀을 대우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 자신들은 국제 축구 연맹(FIFA)과 같은 국제기구가 규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님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체제 유지 도구로 전락한 스포츠

현재 2030년 남북한 월드컵 공동 개최를 남북 화해 정책의 주요 사업으로 추진 중인 우리 정부 측에서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지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한 단일팀 합의를 끌어낸 사례와 같이 스포츠를 통해 양국이 서로를 이해할 기회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행보는 다가오는 2021, 개최지 선정을 앞둔 우리 정부에게 더욱 부담스러운 해결과제로 다가온다.

북한은 여전히 경직된 전체주의 사회이며, 이에 따라 스포츠는 국제 사회와의 교류를 위한 수단이 아닌 자신들의 정치적 세력을 굳건히 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이번 깜깜이 축구를 야기한 북한의 태도는 앞으로도 국제사회의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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