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이몽] 눈(雪)과 이별
[동지이몽] 눈(雪)과 이별
  • 나근호 기자
  • 승인 2019.12.11 22:21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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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축제하면 떠오르는 곳이 있다. 옆 나라 일본의 홋카이도이다. 겨울만 되면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는 이 섬은 언제나 눈으로 덮여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여름의 삿포로는 라벤더 꽃과 멜론으로 유명할 만큼 화사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겨울에 내리는 눈은 마치 지우개처럼 이런 화사함을 덮어버리고, 온 들판을 흰색과 검은색으로만 채워버린다. 겨울 홋카이도의 풍경은 마치 말 못하는 들판과 나무들이 자신의 색을 돌려달라며 슬퍼하는 것 같았다. 어딘가 모르게 황량하고, 허전해 보였다.

필자에게 겨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쓸쓸함이다. 단풍과 열매들 사이에서 외로울 줄 모르던 우리는 겨울이 되면 나뭇잎과 이별한 나무와 열매를 잃고 시들어버린 풀들 사이에 남아있다. 얇던 가을 옷을 입던 사람들이 꺼내는 겨울옷은 겨울이 불러낸 마음의 허전함을 숨기는 갑옷 같다. 남에게 웃음과 따듯함을 전하는 크리스마스도 이런 쓸쓸함을 녹이기 위해 만든 소확행같다.

나에게 겨울이 쓸쓸하게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는 겨울이 이별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첫눈이 내릴 때가 되면 학교에서는 한 학년을 마치고 새 학년, 새 학교로 들어갈 준비를 한다. 그 과정에서 1년 동안 정들었던 친구들과 이별한다. 비록 같은 반, 같은 학교가 아니라고 더 이상 그 친구를 만나지 못하진 않지만, 1년의 시간만큼 가까이 지내온 친구들과 떨어진다는 사실은 나에게 아쉽게 다가온다.

때마침 내리는 눈은 그런 이별을 상징하는 것 같다. 겨울만 되면, 1년 동안 쌓인 형형색색의 추억들은 새로운 반, 새로운 학교라는 말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같이 있을 때는 마치 평생 함께할 것 같았지만, 겨울은 우리를 그렇게 내버려두기 싫었나보다. 12월만 되면 어김없이 눈을 불러서 우리의 만남을 하얀색으로 덮어버렸다.

대학교를 들어가면서 더 이상 이런 일은 없을 것 같았다. 6년 동안 함께할 동기들이 생겼고, 이들과는 반이 달라져 헤어질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든 선배들은 바빠지고, 동기로 들어온 친구들이 멀어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 내릴 눈은 아직 많이 남았음을 느꼈다. 하지만 20년의 시간동안 나 역시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만큼 성숙해졌다. 과거에는 이별이 싫어서 울었다면, 이제는 막을 수 없는 이별에 더 이상 슬퍼하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이별에게 그동안 즐거웠다는 말을 건네며, 차디찬 진눈깨비 같은 이별보다는 따듯한 함박눈 같은 이별을 하고 싶다.

 

이번 겨울에는 내 마음에 따뜻한 함박눈이 내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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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그)룻트! 2019-12-12 21:52:35
눈과 이별이라니! 신선하고 흥미로워요!! 센치해집니다.... 본과 전 마지막 겨울엔 따뜻한 함박눈을 맞길 바랍니당

그노야 2019-12-14 00:15:42
일기장이냐

도넛기부천사님짱 2019-12-17 19:58:04
나근호씨의 겨울에 대한 감상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사였습니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기 마련이지만 항상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죠..ㅜㅜ
그래도 그 속에서 나름대로의 삶의 지혜를 얻고 행복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파이팅이에요~

예과 2학년 방학도 잘 보내세요~ 항상 응원합니다^^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