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즈관과 혐오, 권리 주장과 희생 사이에
노키즈관과 혐오, 권리 주장과 희생 사이에
  • 하민경(법학)교수
  • 승인 2019.12.23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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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민경 교수(법학전공)
하민경 교수(법학전공)

 ‘12을 주제로 글을 써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많은 이들에게 그렇듯이 나에게 ‘12의 치환 개념은 겨울, 아쉬움, 크리스마스다. 최근 영화 <겨울왕국2>의 인기로 점화된 노키즈관 논란이 12월의 요소들을 꽉 채워주었다. ‘노키즈존(No Kids Zone)’은 아이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업소를 가리키는 용어로 주로 식당이나 카페에서 사용되어왔는데, 전체관람가 등급인 이 영화를 본 한 누리꾼이 시끄러운 아이들 때문에 영화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고 SNS에 글을 올리면서 영화 상영관까지 그 논란 영역이 확대된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미 2017년에 노키즈존에 대해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행위라고 결정한 바 있다.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업소들이 아이들의 출입을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행위는, 공동체의 구성원인 아이들이 사회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 여러 삶의 영역을 좁히고 그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를 침해한다. 아이들 집단을 지정하여 기회마저 봉쇄하는 조치를 취할 만큼 아이들이 주는 피해가 심각하다고 볼 수 없는 경우, 이는 아동혐오의 표현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혐오를 자극하는 정책은 이성주의적으로 옳지 않고, 공동선을 위해 좋지도 않으며, 더욱이 아름답지도 않기 때문에 인권위의 결정은 타당하다.

 그럼에도 노키즈존의 범위가 심지어 확대되어 논란이 되는 것은 왜일까?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적극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근대 시민혁명의 성과다. 그런데 근대적 자아의 성장으로 권리의식이 균형을 잃고 극단으로 치달을 때 혐오표현도 함께 증가할 수 있다는 성찰이 필요하다. 자신의 권리와 주장을 관철시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반대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태도는 다른 이의 권리는 희생될 것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이번 논란에서 영화에 집중하고 싶은 성인들에게 아이들이 많이 모이는 더빙판 상영관을 택하지 않고, 늦은 시간 영화를 보는 선택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요구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까? 누구든지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하면 불행을 느끼고 혐오의 골은 깊어진다. 부모가 배려 없이 제지하지 않는 몇몇 아이들의 소란 정도가 아니라, 만약 그러한 아이들이 단체 관람을 하는 경우라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이 경우 키즈관을 만들어 이용하도록 하는 것은 방해받고 싶지 않은 어른들을 위한 배려가 될 수 있다.

결국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축제인 크리스마스에 근원적 답이 있다고 느낀다. 예수는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타인을 대하라는 것은 도덕의 불문율이기도 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경건하게 집전되고 있는 미사 중에 아이들이 난입하는 일은 종종 발생하는데 그 때마다 교황은 아이들을 제지하지 않고 온화하게 맞이한다. 우리는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던져질 수 있다.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과 무조건적 희생 사이에 인간적 차원의 사랑과 배려가 놓여 있다. 문제의 발단이 된 영화 <겨울왕국2>에서도 서로에 대한 사랑만이 변하지 않는 것이라 노래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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