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서사를 그리다…‘다큐 사진’
빛으로 서사를 그리다…‘다큐 사진’
  • 구서영 기자
  • 승인 2019.12.24 2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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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첫 한국인 퓰리처상 수상

필름카메라와 흑백사진이 부쩍 인기다. 레트로 열풍을 이끌고 있는 2030 세대, 과거에 그것을 향유한 이들이 아니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롭다. 회상과 그리움에 기인한 것이 아닌 겪어보지 못한 시대로의 회귀는 특이하다. 정해진 개수만을 찍을 수 있고, 번거로운 인화 과정을 거쳐야지만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과거의 사진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소중함을 찾는다. 인스턴트 식으로 촬영되고 소비되는 사진의 홍수속에서 피로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래서 오늘은 사진의 세 분류인 다큐멘터리 사진, 예술 사진, 상업 사진 중에서도 특히 외면 받고 있는 분야인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본래 다큐멘터리 사진이란 역사적인 증거를 기록하는 사진이다. 정확한 기원은 불분명하나 20세기 초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보도한 종군기자들의 사진을 통해 전쟁의 참상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본격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의 시대가 열렸다. 윤리의 가치판단을 갖고있는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에 대한 재현성과 증명성이다. 주관적 감각으로의 합성과 수정이 허용되는 예술사진과 달리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후보정은 허용되더라도 수정은 인정받지 못한다.

올해 2019년은 보도사진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중 하나로 꼽히는 퓰리처상 수상자가 최초로 한국에서 탄생한 해이기도 하다. 로이터통신 소속의 김경훈 기자는 올해 415103회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김 기자의 사진은 두 딸과 함께 겨울왕국토이스토리의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를 맞춰 입은 중년의 여성이 기저귀를 찬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앞으로 달려가고 있는 순간을 포착했다. 그러나 이들이 달리는 곳은 한적한 들판이나 놀이공원이 아니다. 막 터진 최루탄 연기를 등지고 절박하게 앞으로 뛰어가고 있는 이들은 바로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의 중남미 이민자 (캐러반)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한 장의 사진은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에 대한 많은 숙고를 낳았다. 김 기자의 퓰리처상 수상이 확정되자 많은 한국의 언론들이 이를 대서특필하였다. 하지만 정작 그의 수상 소식 이전에 국내 포털사이트에 이 사진을 다룬 기사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권위 있는 상의 수상자가 한국인이라는 이유하나 때문에 작품이 주목받고 그 서사가 알려지다니무덤에 있는 퓰리처가 알면 가슴을 칠 일이었다. 보도 사진 한 장에 세상이 뒤집히던 과거에 비해 퓰리처상 탄생 후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다큐멘터리 사진의 위상은 서서히 떨어졌다.

 

다큐 사진의 위기 손쉬운 조작에 대한 유혹, 줄어든 수요와 만연한 몰이해까지

아드난 하지 사진의 원본(좌)과 수정 후 작품(우)
아드난 하지 사진의 원본(좌)과 수정 후 작품(우)

오늘날 다큐멘터리 사진이 위기를 맞이한 데에는 텔레비전, 유튜브와 같은 영상 기반 매체의 성장이 크게 작용한다. 그러나 그 외에도 두 가지 본질적인 문제가 위기의 원인으로 꼽힌다. 먼저 보도사진에 대한 신뢰가 낮아졌다. 2006년 레바논 전쟁 당시의 아드난 하지 논란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프리랜서 사진작가였던 아드난 하지는 이스라엘 군이 레바논의 수도인 베이루트를 폭격하는 사진을 촬영하였고 이는 로이터 지의 1면을 장식하였다. 그러나 이후 해당 사진이 연기가 더 많아 보이도록 하기 위해 최소 두 차례의 수정과정을 거쳤다는 논란이 제기되었고 로이터 측은 아드난 하지와의 계약을 파기하였다. 2010년 국내에서 몇몇 누리꾼들에 의해 제기된 조선일보 연평도 피격사태 보도사진 조작 의혹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이처럼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사진의 본질인 객관성과 기록성을 포기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사람들은 점점 신뢰를 잃어갔다.

 

다큐 사진이 나아갈 길 단순히 잘 찍는 것을 넘어서 시선을 끌며 서사를 전달하는 법

누구나 손쉽게 받아들이고 향유할 수 있는 예술사진과 달리 다큐 사진은 해당 사진에 대한 배경 지식은 물론 다큐멘터리 사진이라는 장르가 정확히 무엇인지, 어떤 의미가 있고 무슨 원칙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 이로 인해 다큐멘터리 사진은 자주 생소하고 어려운 장르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다큐멘터리 사진의 신뢰도와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것은 분명히 더욱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찍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2019년 봄 방문한 국립 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국제 융-복합 주제전 <불온한 데이터> 전시회에서 다큐 사진이 직면한 문제의 돌파구를 찾았다. 작품은 10여분 가량의 싱글채널 비디오인 포렌식 아키텍쳐의 ‘Ground Truth’ (지상검증자료)이다. ‘Ground Truth’는 바로 작가의 다큐 사진을 설명하기 위해서보조수단인 영상을 예술작품화하여제작한 것이다.

Forensic architecture_ ‘Ground Truth” (2018) 중 일부
Forensic architecture_ ‘Ground Truth” (2018) 중 일부

영상은 네게브 사막 지역의 알 아라킵 마을에서 벌어지는 토지 분쟁을 다룬다. 아주 오래전부터 대대로 이 땅에서 살아온 20여만 명의 아랍인(베두인)들과, 1948년 팔레스타인 땅에 염원하던 국가를 강제 건국한 이스라엘이 이곳에서 대립한다. 이스라엘은 당국의 인종 청소 계획에 따라 아라킵 마을의 베두인들이 이 땅에 살아온 역사를 부정하고 있다. 20107월 첫 침탈을 시작으로 수백 번에 걸쳐서 낮에 이스라엘이 알 아라킵 마을을 침탈하여 그들의 역사를 지우면, 밤에 아랍인들이 돌아와 부서진 집을 재건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Forensic Architecture‘ 팀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카메라가 달린 특수 제작한 연도 날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것이 이후 토지권 소송의 증거자료로 활용될 것이라고 말한다. 인정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항공사진은 위성사진에 대한 대안이 된 것이다. 문서화 되어있지 않은 토지 소유권과 사라지는 흔적들을 증명하는 응급고고학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항공사진을 기록의 목적으로만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가는 사진을 찍는 목적을 10분가량의 비디오로 영상화하여 구구절절이 설명해주면서 자신의 다큐멘터리 사진을 해제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머나먼 땅 한국의 국립미술관에 현대미술 작품으로서 도달해 수많은 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예술은 설명하지 않는다거나 해설은 이해를 위한 사소하고 보조적인 수단일 뿐이라는 흔한 편견을 넘어서 해설 그 자체가 기록이 되고 예술이 되었다. 그렇게 작은 알 아르킵 마을의 다큐멘터리 사진은 몇 달에 걸쳐 지구 반대편의 수 만명에게 인지될 수 있었다. Ground Truth는 사진에 관하여 설명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아니, 오히려 다큐멘터리 사진에 관하여 설명이 얼마나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는지를 말한다. 그것은 생각하는 것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닌, 시선을 끌고 기억에 남기는 촉진제가 되는 것이다.

누구나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된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기자들의 전유물만이 아니다. 현대 사진가들이 정의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은 삶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상이기 때문이다. 어떤 대상의 꾸밈없는 본질을 재현하고 기록하는 것, 그리고 그 사진을 통해 어떤 서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예술사진처럼 아름답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 가치 있고, 상업사진처럼 소비자의 입맛에 맞출 필요도 없다.

카메라와 본질을 기록하고 싶은 무언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만 있다면, 우리 모두 시간을 초월해 서사를 전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될 수 있다. 빛으로 서사를 그리고 그 숨겨진 서사는 널리 알리는 사람, 내일의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될 당신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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