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은 내일을 위해
부끄럽지 않은 내일을 위해
  • 이수진 기자
  • 승인 2020.01.03 15: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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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이수진 기자다. 이 글을 끝으로 4학기 동안의 학보사 기자 생활을 마친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어떤 글을 쓸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다른 기자들도 그러하겠지만 나에게도 학보사에서의 시간이 배움의 장이었고 마리아관 317호는 두 번째 집과 같았다. 그러나 이 글이 정말 마지막이라면 아쉬움이나 느낀 점에 대해서 길게 쓰고 싶지 않다. 우리 모두 비슷하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고심 끝에 고른 주제는 부끄러움이다. ‘갑자기?’라는 반응이 예상된다. 고작 학보사 기자인데 유난이라 할 수도 있겠다. 지난 11월 타 대학 학보사와 인터뷰를 했었다. 우리는 두 시간 가량을 서로의 학보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학보사를 나서는데 벽에 붙어있던 기자에게 말을 하지 말라니라고 적힌 팻말이 유난히 눈에 걸렸다. 우리에겐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한 기사들이 더 많기 때문일까. 시의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혹은 부서 특성에 맞지 않아서 이 되지 못한 기획서가 많다. 그 날은 집에 돌아가는 길이 유난히 추웠고 내내 부끄러웠다.

 

그 이후로 학보사 기자의 역할은 무엇인지 고민했다. 2년 전 처음 수습기자 지원을 할 때, ‘소수자와 연대하여 그들이 발언할 자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적었다. 면접에서도 학보사이기 때문에 기성언론이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동안 발행한 기사들을 보면 목표에 근접한 글들을 꽤 많이 쓴 것 같다. 메이데이, 페미니즘, 성소수자, 최저임금. 그러나 이런 성향의 기사들은 대체로 초반 2학기에 몰려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보도 기사를 쓰는 횟수가 늘었고, 마음 한 편에서는 이 정도면 괜찮다는 합리화를 했던 것 같다. 아니, 단지 갈등을 피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더 큰 자괴감은 우리 스스로가 자기 검열을 하기 시작하면서 찾아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자유를 스스로 선택하는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표현도 점점 에둘러서, 비판인지 아닌지 꽈배기처럼 배배 꼬인 문장으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_ 영초언니에서 발췌

 

만약 2년 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부끄럽지 않은 기자가 될 수 있을까. 주어진 상황에 순종하지 않고, 스스로를 검열하지 않았다면 더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었을까. 언제나 마지막엔 후회만이 짙게 남는다.

 

덧붙이는 글.

학보사는 내가 처음 만난 사회였고 지난 대학 생활 내내 사랑한 공간이었다. 혼자였다면 결코 하지 못했을 일들을 26기 동기 기자들과 사회부 기자들, 그리고 국부장단 덕분에 해낼 수 있었다. 이 글을 빌어 지난 4학기 동안 큰 도움 주신 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제 정말 안녕, 마리아관 삼백십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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