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가지 키워드로 돌아보는 2019년 영화
4가지 키워드로 돌아보는 2019년 영화
  • 김형렬 기자
  • 승인 2020.01.15 0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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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은 한국에서 첫 영화를 상영한 지 100년이 지난 기념비적인 해이다. 또한 한국 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의미를 더했다. 한국 영화 시장의 성장도 주목할 만하다. 과거에는 천만 영화의 진입장벽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영화가 문화생활의 주류로 자리 잡으며 올해에만 천만 영화가 5편이나 쏟아져 나왔다. 그 밖에도 여성 영화인의 힘, 코미디 영화의 부활, 독립영화의 약진, 거대한 디즈니와 마블 등 다양했던 이슈들을 4가지 키워드로 돌아봤다.

 

#코미디

<극한직업>

 

극한직업(출처 : SBS)
극한직업(출처 : SBS)

 

2019123, 이병헌 감독의 <극한직업>이 개봉했다. 적극적인 홍보나 스크린 독점은 없었다. 하지만 잘 만든코미디 영화라는 평가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더니 설날 극장가를 가득 메웠다. <7번방의 선물> 이후 하향세를 겪던 코미디 장르의 한계를 깨고 총관객 1,600만 명을 기록했다. 이 영화는 최대 관객을 동원한 <명량>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관객이 본 영화가 되었다.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극한직업>은 관객들이 지겨워하는 신파를 내세우지 않고 코미디에 몰두했다. 거기에 배우들의 명품 연기와 명대사가 흥행에 윤활유 역할을 하며 연초에 가족 단위의 관객이 가볍게 볼만한 영화로 좋다는 평이 이어졌다. <극한직업>은 약세를 보이는 코미디 장르라도 내용이 충실하면 충분히 흥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엑시트>

신선한 소재와 코미디가 합쳐져 흥행과 호평을 모두 잡은 <엑시트>는 성수기인 여름 극장가에서 당당히 승리했다. 경쟁작이었던 <나랏말싸미>는 역사 왜곡 논란으로 일찌감치 퇴장했고, <사자><엑시트>에 밀려났다. 이후 개봉한 <봉오동 전투>는 관객 수 478만 명으로 선전했지만, <엑시트>의 질주를 막지 못하였다. <엑시트>의 성공은 이례적이었다. 흥행을 보장하는 화려한 배우진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홍보를 적극적으로 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엑시트>는 재난 영화의 클리셰*를 그대로 따라가지 않는 신선한 연출과 뜬금없이 터지는 개그를 통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작품성으로 관객들에게 인정받은 것이다. <엑시트>는 아쉽게 천만 영화의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했으나 <극한직업> 이후 다시 한번 코미디 영화계에서 의미 있는 전진을 보여주었다.

*진부하거나 틀에 박힌 연출

 

#디즈니

<어벤져스: 엔드게임>

<어벤져스: 엔드게임>1,39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시리즈의 끝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아바타>가 가지고 있던 역대 국내 외화 1위 기록마저 경신했다. ‘어벤져스시리즈를 꾸준히 관람해오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접근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탄탄한 마니아 층을 기반으로 관객 수를 채워나갔다. 또한 영화를 두 번 이상 보는 일명 ‘N회차 관람객들도 큰 역할을 하며 결국 <아바타>를 밀어낸 것이다. 181분의 긴 러닝타임이었지만 지루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히어로 각자의 매력을 잘 살리면서도 어벤져스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점이 주효했다. 2008, <아이언맨>으로 시작했던 마블의 위대한 여정은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통해 막을 내렸다. 현재 마블은 <블랙위도우><이터널스>를 시작으로 다시 달릴 준비를 하고 있다.

 

<알라딘>

개봉 초반엔 <악인전>에 밀려 2위를 기록했다. 한국 영화 시장에선 작품의 초반 흥행 여부가 중요한데 <알라딘>은 다른 행보를 보였다. 저조한 성적으로 시작했지만,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더니 개봉 4주 차에 500만 명을 돌파하며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성적을 내며 1,2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당시엔 역대 외화 흥행 3위를 차지했으나, 현재 <겨울왕국2>에 밀리며 아쉽게 4위로 떨어졌다. 디즈니는 동화책과 애니메이션으로 보던 알라딘을 어색함이나 이질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실사영화로 만들어냈다. 거기에 배우들의 호연과 'Speechless'라는 명곡이 더해졌다. 그 결과 2주 안에 영화의 운명이 결정되는 한국 영화 시장에서 역주행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안게 됐다.

 

#한국영화의 힘

<기생충>

한국 영화사 100주년이 되는 해,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기생충>은 작품성은 물론 대중성까지 인정받으며 천만 영화에 등극했다. 전 세계적으로 1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고, 외국어 영화가 성공하기 힘든 북미 시장에서도 호성적을 냈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이 개봉하기 전, 한국인의 정서에 최적화된 영화라고 말했다. 실제로 블랙코미디 장르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표현했다. 또한 영화 중반부, 장르의 변주를 주며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영화에 긴장감과 오락성을 부여했다. 이를 통해 영화에서 중요한 요소인 재미까지 챙기며 한국 영화 최초로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까지 수상한 <기생충>. 이젠 봉준호 감독이 로컬이라고 표현했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유종의 미를 거둘 일만 남았다.

 

<벌새>

2019년 한국 독립영화와 여성 영화인의 힘을 보여준 작품이다. ‘올해의 독립영화상’, ‘청룡영화제 각본상수상은 물론 국내외 영화제에서 40개의 상을 거머쥐었다. 14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는데, 저예산 독립영화계에선 이례적인 흥행으로 볼 수 있다. <벌새>1994년 은희라는 소녀의 일상을 그저 묵묵하게 따라간다. 은희는 누구나 겪었을 만한 일들을 헤쳐나간다. 이를 옆에서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나가는 <벌새>에 그 시절을 겪어봤던 모두가 공감한다. 이전 영화들에서 보기 힘들었던 따뜻함을 가진 영화는 여성 영화인들의 약진이 얼마나 큰 한국 영화의 자산인지를 보여준다.

 

 

#논란의 중심

<82년생 김지영>

개봉 전부터 논란의 중심에 섰던 <82년생 김지영>36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주연 배우들의 호연과 원작 소설을 잘 각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호평 속에서도 논란은 계속되었는데, 원작 소설이었던 <82년생 김지영>이 가장 뜨거운 사회문제인 양성평등의 문제를 상징하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다루며 우려와 달리 이야기를 잘 풀어냈다. 또한 영화산업 전반에서 주인공이 되지 못한 여성 영화인들의 분기점을 상징하는 작품이었다. 실제로 여성 영화인들은 2019년도에만 <항거:유관순 이야기>, <벌새> 그리고 <82년생 김지영> 등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당당히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었다.

 

<조커>

 

조커 포스터(출처 : ifs POST)
조커 포스터(출처 : ifs POST)

 

호아킨 피닉스 주연,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DC 필름스가 자신들만의 노선을 정하고 야심차게 준비한 영화이다. 실제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작품성까지 인정받았다. <조커>는 주인공인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에 집중했으며, 철저히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었다. 이런 기법을 통해 <조커>조커의 잘못된 행동에 자연스레 당위성을 부여하고, 관객들이 주인공에게 공감하는 효과를 설득력 있게 연출했다. 실제로 미국 경찰은 <조커> 개봉 첫 주말부터 상영관 주변 순찰과 검문검색을 강화했었다고 한다. 또한 작품성과 관계없이 <조커>를 통해 현실에서 모방범죄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며 비판과 우려를 표하는 영화인들도 적지 않았다. <조커>는 분명 사회적 약자와 폭력에 관한 문제를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이를 수용하고 가치판단을 내리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그렇기에 <조커>는 논란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었다.

 

2019년 한국 영화 시장은 성장했다. 대중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영화를 원하고 소비한다. 관객의 수준도 그만큼 높아졌다. 이제 화려한 배우들과 막대한 제작비가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관객은 작품이 얼마나 재밌는지를 더 중요시한다. 첫 출발이 좋지 못하거나 홍보가 덜 된 영화도 재미있다면 관객의 입소문에 힘입어 흥행한다. 이러한 기조는 2020년에도 유지될 전망이다. 2020년엔 어떤 색다른 키워드가 생길지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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