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소수자 기획 2부] 무지개는 어느 하늘에나 뜰 수 있다
[성 소수자 기획 2부] 무지개는 어느 하늘에나 뜰 수 있다
  • 김태은 기자
  • 승인 2020.01.17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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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 소수자의 모습을 접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기회는 무엇일까. 바로 미디어이다.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 속의 성 소수자 이야기는 재현된 형태이기 때문에, 온전한 그들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므로 성 소수자를 올바로 이해하는 데 있어 최고의 방법은 각색을 거치지 않은 그들의 육성을 듣는 일일 것이다. 이에 따라 본보에서는 본교의 성 소수자 AB를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인터뷰 주제의 특성상 소속과 실명을 밝히기 어렵다는 이들의 입장에 의해, 이들을 익명으로 소개하게 되었다.

 

아래에 등장하는 성적 지향 혹은 성 정체성에 관한 용어는 앞선 1부 기사를 참고하길 바란다.

 

안녕하세요. 먼저 본인의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포함해 자기소개해주세요.

A: 안녕하세요. 저는 에이젠더 여성애자 여성이에요.

B: 저는 시스젠더 혹은 에이젠더의 여성이고, 범성애자나 양성애자, 혹은 동성애자 정도로 스스로를 파악하고 있어요.

 

B씨는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비교적 넓게 말씀해주셨는데, 이에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B: 확고한 정체화는 지속 가능한 쾌락을 향유하는 데 방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체성을 못 박으면,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통제하려 들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저는 놀이동산에서 제가 끌리고 경험하고 싶은 놀이기구를 언제든지 탈 수 있도록 제 손에 자유이용권을 쥐여주고 싶어요. 제 성적 지향을 명확하게 하고 있지 않아서 꽤 장황한 소개가 됐네요.

 

자신의 성적 지향에 대해, 자연스럽게 깨닫는 경우와 어떠한 계기로 인해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어요. 여러분은 이중 어떤 경우에 속하시나요?

A: 저는 후자에 속해요. 중학교 2학년, 16살 때 동성애 콘텐츠에서 자신을 레즈비언으로 칭하는 사람들을 처음 접했어요. 그를 통해 제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사람들이 모두 여자임을 깨달았고, 저를 레즈비언으로 처음 생각하게 됐어요.

 

B: 저는 제가 여성을 사랑한다는 걸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는 있었어요. 그런데도 제가 가지는 끌림은 그간 보고 자란 사회 속 사랑의 모습과는 달랐기에, 제 성적 지향을 부정했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여성인 친구를 깊게 짝사랑하게 됐는데, 이성애 중심적 관념만으로는 제가 마주한 현실과 제 감정을 설명할 수 없었던 거죠. 그래서 결국 그때 저의 성적 지향을 인정하게 됐어요.

 

A: 추가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방금처럼 제가 동성애 콘텐츠를 통해 제 성적 지향을 알게 됐다고 말하면, ‘동성애 콘텐츠가 동성애를 조장한다고 생각할 분들이 분명히 계실 거예요. 하지만 그런 논리라면, 이 세상에 비이성애자가 존재하는 게 모순이 되지 않나요? 특정 성적 지향은 누군가 조장한다고 해서 쉽게 변화되기 어려워요. 대부분의 성 소수자들도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성장하고 어렸을 때부터 무수히 많은 미디어 속 이성 연애를 접하며 살아왔지만, 다양한 성적 지향을 가졌는걸요. 저는 그저 제 안의 취향을 찾은 것뿐이랍니다.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어요.

 

B: 저도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어요. 앞서 언급했듯이 저는 고등학교 1학년이 되기 전까지 제 성적 지향을 부정하며 살았어요. 그렇기에 실제로 존재하는 자신의 한 부분을 스스로 부정하도록 만드는 이 사회의 암묵적 명령이 가장 가슴 아파요. 이렇게 자신이 퀴어임을 알면서도 부정하는 걸 퀴어 문화권에서는 디나이얼이라고 칭해요. 용어가 존재한다는 건 세상의 많은 성 소수자가 경험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아픈 질문일 수 있겠지만, 성 소수자라는 이유로 겪은 차별이 있었나요? 있었다면 어떤 경험이었나요?

A: 저는 커뮤니티를 통해 만난 성 소수자 지인들을 제외하고는, 제 주변 누구에게도 제가 성 소수자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를 특정해서 하는 차별은 겪어본 경험이 없지만 상대방이 제가 퀴어라는 사실을 모르고 제 면전에 혐오 발언을 뱉는 일은 어려서부터 매우 많이 있었죠.

 

B: 이성애 중심적 사랑관이 만연한 사회에서 성 소수자로서 겪어본 차별을 모두 나열하는 건 무리예요. 따라서 비교적 흔히 겪는 차별을 몇 가지 말해볼게요. 가장 기본적인 건 당연히 모든 사람(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사람)은 이성애자일 것이다라는 전제에요. 이러한 사고가 차별의 근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저와 저의 애인은 실제와 다른 사람이 돼요. 몇몇 사람들은 제가 동성과 연애 중이라는 걸 드러내면 저를 타자화시키기도 해요. 정말 무례하죠. 커밍아웃을 할 때는 제 섹슈얼리티를 대놓고 부정하는 행위도 겪곤 합니다. 또 소수의 사람들은 동성에게 고백받은 경험을 트로피처럼 여기고 자랑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 한숨이 쉬어져요. 이러한 경험들이 성 소수자들로 하여금 아웃팅*과 혐오의 대상이 될까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본인은 원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에 의하여 강제로 밝혀지는 일.

 

마지막 질문입니다. 성 소수자이자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세상에 하고 싶으신 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A: 당장 사회에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아요. 그냥 주변에 비이성애자도 있다는 점을 한 번씩 상기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동성애에 대한 폭언과 혐오는,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상대가 성 소수자임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당신의 가족이고 친구입니다. 작은 변화들이 모여 점차 차별적인 사회 분위기가 개선되겠죠. 그럼 숨어 지내는 음지의 성 소수자들이 하나 둘 씩 양지에 발을 디딜 것이고, 이후에는 모두가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명을 내걸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에도 큰 아쉬움이 남네요. 언젠가는 이런 인터뷰에서 당당하게 제가 누구인지 밝힐 수 있는, 그냥 아무렇지 않은 존재가 됐으면 좋겠어요.

 

B: 이분법적 사고로 인해, 성별이라는 프레임이 타인(사회)과 나 사이의 진정한 만남과 대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느낌을 정말 많이 받아요. 세상에는 다양한 성 정체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늘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우리의 존재를 사랑합니다.

 

인터뷰에 참여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을 텐데, 용기 내어 목소리를 들려주신 점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본교의 성 소수자로부터 그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일과 생각을 들어보았다. 이들과 나눈 이야기는 비() 성 소수자가 자신도 모르게 차별을 일삼고 있을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이를 통해 비() 성 소수자들이 성 소수자에 대해 가졌던 편견을 해소하고, 그간 소수자를 대하던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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