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s of CMC]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김동욱 교수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Humans of CMC]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김동욱 교수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 구서영 기자
  • 승인 2020.02.17 19: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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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관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연구할 것입니다

백혈병 최고권위자가 확인한 만성골수성백혈병의 새로운 희망, ‘애시미닙

△김동욱 교수의 모습
△김동욱 교수의 모습

 

누구에게나 시간은 평등하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영화 해리포터의 등장인물 헤르미온느같이 시간을 몇 배로 사용하는 듯한 이들이 있다. 얼마 전 성의회관 앞에서 서울성모병원 교수팀이 주도한 연구결과가 NEJM에 게재되었다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보고 기자의 가슴이 흥분으로 들끓었다.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이라니! 하버드 교수들조차 논문을 싣기 어렵다는, Impact factor 70.67을 자랑하는 전 세계 의학자들의 꿈의 저널이 아닌가? 본보는 국내 두 번째로 NEJM에 암 분야 논문게재라는 쾌거를 올리며 전 세계의 백혈병 치료 패러다임을 바꾸어가고 있는 가톨릭 혈액병원장 김동욱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잠깐, 만성골수성백혈병(CML)과 애시미닙이란 무엇인가?

김동욱 교수팀이 전 세계 10개국 연구팀과 함께 주도한 이번 연구는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에서 개발한 신약 애시미닙의 임상 1상 연구이다. ‘애시미닙은 만성골수성백혈병(이하 CML)4세대 표적항암제로, 기존의 약들과 완전히 다른 부위를 선별적으로 차단하여 기적의 표적항암제로 불린다. 김동욱 교수팀은 기존 항암제들에서 내성을 보인 150명의 만성기/가속기 CML 환자들을 대상으로 애시미닙의 임상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만성기 환자 141명 중 혈액학적 재발 환자의 92%에서 완전혈액반응’, 절반 가까이에서 완전염색체반응을 확인하였고 부작용도 거의 없었다. 연구 결과는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20191212일자에 게재되었다.

 

Q1. 다국적 제약사의 초기 임상연구를 국내 의학자가 주도하고 논문을 NEJM에 게재한 것은 처음이라고 들었다. 이것이 서울성모병원 김동욱 교수 연구팀에서 가능했던 이유는?

애시미닙의 임상 1상 시험은 세계 최고 암 전문병원인 MD anderson cancer center와 서울성모병원에서 동시에 시작되었다. 2014년에 시작한 1상 시험이 성공적으로 끝나 지금은 여러 병원들에서 3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 임상 1상 시험은 인간에게 안전한 약물의 농도가 어느 정도인지확인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서양 의학이 늦게 발달한 한국에서 이러한 초기 임상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확실히 드물다. 애시미닙에서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로는 첫째, 서울성모병원에는 26년간 CML 한 가지만 연구한 우리 팀이 있고, 둘째, 그러다 보니 단일병원 중 CML 환자 수가 가장 많아져서이다. 반면 미국은 CML 환자가 한국보다 많지만 여러 병원에 분산되어 있다. 이것이 우리 팀에서 애시미닙의 초기 임상연구를 주도할 수 있던 찬스로 이어진 것 같다.

 

Q2. 과거 드라마 속 비운의 불치병부터 현재 명대로 살 수 있는 병이 되기까지, CML 패러다임의 변화 과정이 궁금하다.

2001년 기적의 1세대 표적항암제 글리벡개발 후 오랫동안 CML 치료의 목표는 꾸준한 약 복용을 통해 환자를 오래 살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최고 수준의 효과를 얻은 후 약을 끊게 하는 것이다. 의료보험이 안 되는 미국에서 1세대 표적항암제인 글리벡은 한 달에 약 500만원이다. 2세대 표적항암제는 1년이면 1억이다. 놀랍게도 우리나라는 2세대 표적항암제의 가격이 미국의 1/5 수준으로 전 세계에서 제일 저렴하다. 2세대 항암제 중 하나인 슈펙트를 국내 제약사에서 개발하면서 싸게 출시하니까 다들 이에 맞추려고 한국에서만 가격을 낮추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을 계속 먹어야하는 상황은 여전히 환자들에게 큰 부담이다.

 

애시미닙은 기존 표적항암제와 타겟(결합부위)이 완전히 다르다. 기존 항암제와 동시에 쓸 수 있다는 뜻이다. 두 약을 쓰니 이상단백질의 두 부위가 모두 차단되므로, 한 부위의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환자에게 내성이 생겨 약이 안 들을 확률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동시에 PCR(Polymerase Chain Reaction, 종합효소연쇄반응) 수준에서 백혈병 유전자 음성 반응이 나와서 약을 끊을 수 있는 완치 환자가 엄청나게 많아질 것이다.

 

Q3. 엄청나다. 애시미닙이 출시되면 더 이상 CML에 남은 과제는 없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사실 PCR 수준에서 백혈병 유전자 수준이 0으로 나온다는 것은 백혈병세포가 1천만 개 이하로 줄었다는 뜻이다. 1천만 개 이하를 검출할 정도로 예민한 검사 방법은 아직 없다. (PCR 수준에서 백혈병유전자가 음성으로 나오는) 완전유전자반응을 얻어 약을 끊은 후, 병이 재발한 환자들은 아마도 1천만 개에 가까운 백혈병세포가 남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나노기술 등을 통한 보다 정확한 진단방법이 개발되어야 한다. 또한 앞으로 애시미닙과 어떤 표적항암제를 병용할지, 애시미닙과의 병용 시 각각의 용량을 얼마로 할지, 어느 시점에 병용요법을 시작할지, 임신기간 중 항암요법을 할 수 없는 가임기 여성에게는 처음부터 어떤 치료법을 적용해야 하는지 등에 관한 많은 추가 임상 연구도 필요하다. , 애시미닙을 통해 CML의 완치가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Q4. 26년간 한 우물인 CML에만 몰두하셨다. 여러 백혈병 중 하필 CML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내과 전공의 2년차 때 대학원에 들어갔다. 이때 한양대 유전학교실에서 CML과 관련된 필라델피아 염색체 분석 실험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혈액학에 관한 유전자 연구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는데 백혈병 중에서 가장 적합한 병이 CML 같았다. CML은 몇 년간 순하게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부터 급격하게 악화된다. 이때 결정적인 유전자 이상이 생길 것 같았고 이를 찾아내고 싶었다. 1992년부터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2년간 임상강사 생활을 하는 동안 잠시 카이스트에서 분자생물학 실험도 배웠다. 1994년에 삼성서울병원이 설립되면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게 되어 이직했다.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스승님인 김춘추 교수님의 강력한 복귀 요청이 왔고, ‘돌아오는 조건으로 평생 CML만 보게해달라고 한 제안이 받아들여졌다.

 

Q5. 환자들과의 라포르*가 대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비결이 궁금하다.

오늘날 환자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과거 골수이식은 모두 의사의 실력과 결정에 따라 그 성패가 갈렸지만, 지금은 의사 처방에 따라 환자가 정확하게 약을 먹지 않으면 안 된다. 환자와 의사가 진정으로 교감할 때 환자의 복약순응도가 좋아지고 결국 치료율이 높아진다. 우리 팀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환자 홈페이지에는 상담 게시판이 있다. 환자가 상담글을 올리면 내 핸드폰으로 바로 연락이 온다. 여태까지 누적 3300개 가량의 답변을 매일 직접 달아왔다. 1년에 열 번 이상 해외로 출장을 가면서도 실시간으로 환자와 소통하는 방법이다.

 

또한 매년 5월에 약 300명의 환자 및 환자 가족들과 함께 캠핑을 가는 루 산우회 12일 캠프‘, 9월마다 성의회관에서 열리는 만성골수성백혈병의 날 행사가 있다. 2005년부터 15년째 캠프를 주최하면서 환자들에게 배우는 게 많다. 각종 행사시마다 환자들의 기대감이 크고 우리 연구진들에게도 많은 격려를 해준다. 환자들로 구성된 병원 자원봉사단(샛별회)도 자체적으로 만들었다. 또 환자들끼리 돈을 모아서 필리핀 꽃동네에 후원을 하고 다른 환자의 골수이식비용을 지원하기까지 한다. 우리 팀의 환자 홈페이지에는 환자 개인별 유전자 데이터가 정기적으로 올라오고, 우리 환자들은 그 수치를 직접 해독해서 언제 병원에 가야할지를 스스로 결정한다. ‘루 산우회와 같은 오프라인 만남에서의 교육과 격려가 없었다면 어려운 일일 것이다.

*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는 친밀감 또는 상호신뢰관계

 

Q6. 개인적인 시간이 없을 것 같다. 많은 것을 이룬 의사이자 연구자로서 앞으로 더 인생의 목표가 더 있는지 궁금하다.

의대 교수에게 정년 후 제 2의 인생도 교수이다. 그건 내 철학이다. 평생 관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연구할 것이다. 요즘 우리 환자들은 내 정년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한다. ‘65세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교수님이 은퇴하시면 우리는 어떡하냐. 그러면 나는 정년 후에도 완벽한 완치법을 찾을 때까지 끊임없이 일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미국과 유럽의 동료 교수들은 80세를 넘어서까지 보청기를 끼고도 끊임없이 의학의 최첨단 분야를 연구한다. 현재 우리는 울산과기원의 생명공학과팀, 인공지능 연구팀과 협력해서 CML 환자의 개인 맞춤형 유전자 분석과 치료를 빠르게 결정할 수 있는 차세대 시퀀싱 패널과 인공지능(AI) 모델을 만들고 있다. 내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연구하고, 계속 이를 이어갈 수 있는 진단시스템과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 진료플랫폼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Q7. 연구하는 의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 한 마디

한 가지 분야만 깊이 파야 한다. 현재의 인기분야와 상관없이 자신이 좋아하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많은 의학도나 과학도들이 현재의 인기 있는 분야를 모두 연구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는 당장 한국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나중에 세계적으로는 경쟁력 있는 연구가 될 수 없다. 또한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도 계속해서 협력해야 한다. 연구 네트워크가 넓어야 큰 업적을 낼 수 있다. 현재 생명과학과 교수들뿐만이 아니라 공대, 약대, 제약사, 심지어 홍익대 미대와도 의학디자인세미나를 통해 협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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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 2020-02-27 14:13:15
우리 학교에 이렇게 대단하신 분이 계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연구도, 환자 소통도 잘 하고 계시는 교수님이 존경스럽네요!! 좋은 기사 적어주셔서 감사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