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비틀기: 우리는 왜 ‘헌혈하지’ 않는가 (part 1)
시선 비틀기: 우리는 왜 ‘헌혈하지’ 않는가 (part 1)
  • 구서영 기자
  • 승인 2020.03.25 23: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혈액 수급 ‘빨간 불’ 상황에서, 다회(多會) 헌혈자가 느낀 현 헌혈체제의 근본적 문제점과 대책

필자가 처음 헌혈을 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봄. 여느 고등학생들처럼 학교 운동장을 찾아온 헌혈 버스에서였다.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식당을 나오던 중 운동장 한복판에서 발견한 긴 줄에 호기심을 느껴 뭣도 모르고 참여한 첫 헌혈에는 마음의 준비조차 필요치 않았다. 친절한 간호사 선생님의 격려, 맛있는 초코파이와 이온음료 무료 제공, 거기다 무려 4시간의 봉사시간과 영화 티켓까지! 잠깐의 따끔함을 견딘 대가로 병실에서 간절히 누워있는 누군가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 황송할 정도였다. 헌혈을 마친 아이들은 으쓱한 표정으로 주사바늘을 꽂았던 자리에 붙인 뽀로로 밴드를 훈장처럼 드러내고 다녔다. 첫 헌혈이 좋은 경험으로 남았기 때문이었을까. 이후 번화가에 갈 때면 종종 자발적으로 헌혈의 집을 찾았다.

 

그러나 어느 날의 불쾌한 경험 이후 다시는 헌혈을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었다. 생활기록부의 봉사 내역을 출력하던 중 몇 주 전의 헌혈 내역이 누락되었음을 발견하고 헌혈의 집에 전화를 걸어 정중히 문의했으나, 수화기 반대편에서 돌아오는 건 모욕감이 드는 폭언이었다. 억울해 눈물이 핑 돌던 것도 잠시, 혈액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공여자의 신상 확보도 안 된 혈액을 환자가 받았다는 것은 심각한 관리 문제가 아닌가! 급기야 내가 만약 에이즈와 같은 혈액 매개 질환의 환자라는 게 뒤늦게 밝혀지면 추적이 불가했을 거라는 생각에까지 치달았다. 다시 헌혈을 시도한 것은 몇 년이 지난 작년 겨울이었다. 혈소판 지정 헌혈이 당장 필요하다는 백혈병 환우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 듣고 전자 문진까지 거친 후 헌혈의 집을 찾았으나, ‘인터넷으로는 찾을 수 없었던 이유로 헛걸음을 하게 되었다. 함께 참여하기로 했던 친구는 사전에 미리 공지해 주지 않았던 외국인 헌혈 기준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아 집으로 돌아갔다. 헌혈에 대해 부정적 경험이 연속되면서 <사람들이 헌혈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고 대책을 마련해 보고 싶어져, 이 자리에서 칼럼의 이름을 빌려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우리가 헌혈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또 가능한 대책은 무엇이 있을까?

 

Part 1. 우리는 왜 헌혈하지 않는가대한적십자사가 놓치고 있는 진짜 이유들

 

헌혈율 5년새 꾸준히 감소중장년층 헌혈율 낮고, ‘재참여적어 문제

2019년 총인구 대비 국민 헌혈율은 약 5.4%이다. 최근 5년간 5%대에서 꾸준히 감소해왔다. 사실 전 세계 평균으로 봤을 때 결코 낮은 수치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특이하게도 헌혈의 주 참여 연령층이 10-20대로, 30대 이상 중장년층 헌혈자는 전체의 29%에 불과하다. (2017년 기준) 반면 가까운 일본과 대만의 경우 중장년층 헌혈자가 각각 78.4%, 67%에 육박한다. (2016년 기준) 미국과 유럽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헌혈율이 10-20대에 집중된 까닭은 상대적으로 청소년층이 기념품, 봉사시간 등 헌혈에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유형적 이익에 끌리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로 인해 학생들이 방학하는 동절기에는 매년 혈액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전문가들은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현 상황이 지속된다면 혈액 공급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말한다.

 

 

조사를 하다 발견한 놀라운 점은 국민들의 헌혈 경험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었다. 2017년 보건복지부 연구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헌혈 경험률45.3%이다. 매년 국민 헌혈율이 5%대에 달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헌혈의 재참여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필요성을 못 느껴서가 압도적 1, 위험성과 접근성 문제도 무시 못해...

 

자료 조사를 하던 중 네이버 카페 앤디혹 이종격투기에서 20194월에 실시한 설문조사가 눈에 띄었다. 50여 명이 응답한 이 설문에서는 헌혈을 안 하는 진짜 이유에 대해 필요성을 못 느껴서라고 1순위로 응답했다. 그리고 건강이 걱정되어서’ (위험성 문제), ‘참여하기 어려워서’ (접근성 문제)가 각각 2, 3위로 뒤를 따랐다. 반면 자격 조건이 안 되어서혜택이 적어서4, 5위로 밀렸다. 자격 조건의 문제는 불가피한 사정이고, 이벤트성 혜택의 경우 무한정으로 늘리기에는 순수한 목적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혈액 기증이 시장 논리를 따라도 되는 것일까?) 내재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을 고려해 보았을 때 중요한 것은 필요성’, ‘위험성‘, 그리고 접근성의 문제로 추려졌다.

 

본 칼럼은 독자들에게 헌혈의 필요성을 설득하거나 적십자사를 대신해 해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헌혈하지 않는 이유, 해당 문제들에 대한 책임이 현 헌혈제도 운영의 문제점에 있다고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장년층이 헌혈하지 않고 경험자들이 재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게으르거나 이기적이서 그런 것이 아니다. 필요하다 느끼지 못해서, 헌혈하러 가기 불편하다는 이유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는 헌혈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Part2.에서는 필요성접근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 대한 잘못된 현행 체제를 자세히 꼬집어보고, 새로운 대책을 몇 가지 제시해보고자 한다.

 

(Part 2 : 대책에서 이어집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