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비틀기: 우리는 왜 ‘헌혈하지’ 않는가 (part 2)
시선 비틀기: 우리는 왜 ‘헌혈하지’ 않는가 (part 2)
  • 구서영 기자
  • 승인 2020.03.25 2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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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 수급 ‘빨간 불’ 상황에서, 한 다회헌혈자가 느낀 현 헌혈체제의 근본적 문제점과 대책

(Part 1.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Part 2. 필요한 것은 현 헌혈 유도 방안의 근본적 개선이다

수혈이 필요한 환자에게 헌혈은 분명히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행위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들은 헌혈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를 꼽는 것일까?

 

지금 1,649명의 헌혈 참여가 필요합니다. 국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현재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홈페이지의 첫 팝업창 문구이다. 만약 당신이 헌혈 유경험자라면 혈액 수급이 어려운 시기마다 혈액관리본부의 전화번호인 1600-3705로부터 헌혈 권유 문자도 받아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문자 때문에 헌혈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는지 한 번 떠올려보자. 부끄럽지만 적어도 필자에게는 확실히 없었다. 수신함에 쌓여가는 그것들은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안경점 할인 문자나 치과 검진 문자와 다를 바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볼 것도 없었다. “수혈용 혈액이 절실히 필요하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라는 문자나 “1,649이라는 (왜인지) 정확한 수치는, 시간을 비워 팔뚝을 걷게 할 만큼 가슴에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헌혈의 집을 방문했을 때 벽에 붙어있던 연예인 홍보대사의 미소도 마찬가지였다. 과연 연예인의 광고를 보고 헌혈을 하러 온 사람은 얼마나 있었을까?

 

사람들은 일반적인 것보다 개인적인 것에 공감한다.

제발 우리 딸 좀 살려주세요’ 2019127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이다. 작성자는 생후 100일이 안 된 백혈병 아기에게 하루 성인 6-7명 분량의 B형 혈소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아기에게 혈소판 지정 헌혈을 하기 위해 반차를 쓰고 주변인들에게 홍보했다. 얼마 후 아이의 어머니는 아기가 호전되고 있다는 댓글을 남기며 감사를 표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기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각종 SNS와 커뮤니티에 수많은 비슷한 사례들이 존재한다.

 

△(좌) 모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연 (우) 누리꾼들의 댓글 반응
△(좌) 모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연 (우) 누리꾼들의 댓글 반응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눈을 뗄 수 없던 기부 광고에서 하나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다. 광고 속 사랑이(가명)의 가슴 아픈 이야기에 휴대폰을 켜 2000원 문자 기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놀라운 것은 그날 저녁 만난 친구도 사랑이(가명)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 나두!” “, 너두?”의 상황이었다. 이후 공중화장실이나 버스에서도 유사한 광고판을 마주할 때마다 그것들은 어김없이 지나칠 수 없었다. 필자가 특별히 기부를 가까이 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지하철에 붙어있던 사랑이(가명)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지하철에 붙어있던 사랑이(가명)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쉽게 기부로 이어지는 기부 광고의 특별한 점은 무엇일까?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행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는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실제로 기부금은 사랑이(가명)뿐 아니라 비슷한 사정의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도 쓰이겠지만 그것으로 불만을 가지는 기부자는 없을 것이다. 기부자들은 세상에 수많은 사랑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모든 사랑이들의 행복을 바라고 있을 테니까. 이는 헌혈 홍보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식상하고 보편적인 문구 대신 개인적인 이야기를 빌린 헌혈 유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헌혈의 진정한 필요성을 절감케 할 것이다.

 

물리적 접근성 향상이 아니라, 참여 장벽을 낮추는 것

접근의 어려움 역시 마찬가지다. 헌혈의 집에 대한 물리적 접근성은 바꿀 수 없는 부분이지만 참여 장벽을 낮추는 것은 바꿀 수 있는 부분이다. 앞선 기부 광고가 쉽게 실행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응원 문자 전송이라는 쉽고 직관적인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계좌번호의 송금이나 기부 예약 전화가 아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헌혈 광고를 보고 헌혈의 집에 보내는 문자나 카카오톡 한 통으로 쉽게 예약 상담을 받을 수만 있다면, 보다 쉽게 실질적인 헌혈의 시행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헌혈 상담과 예약 시스템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기존에 활용하던 전화와 웹사이트 이상의 매개체를 이용하는 것이다.

 

또한 SNS를 통한 헌혈 릴레이, 헌혈 데이트 홍보 등으로 헌혈이 어렵고 번거롭다는 인식을 바꾸는 것도 접근성을 향상시키는 하나의 방법이다. 실제로 헌혈로 얻는 보람보다 헌혈은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홍보가 더욱 효과적이고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헌혈을 이미 결심한 이들을 위해서는 전자문진제도를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자문진제도는 본인이 헌혈에 적합한 상황인지 온라인으로 미리 확인할 수 있는 제도이다. 그러나 현재 전자문진은 직관적이고 쉬운 설문 알고리즘 형식이 아닌 긴 안내문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내용 또한 불명확한 면이 있다. 필자의 경우 혈소판 지정헌혈을 하러 가기 이전 금기사항인 ‘1년 내 말라리아 위험 지역 여행력이 있는지 고민하였으나, 전자문진에서는 태국의 일부 지역이라는 불확실한 기재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직접 헌혈의 집을 방문해 확인해야 했고 방콕의 경우 일부 지역에 속한다는 간호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헌혈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전자문진이 불명확해 겪는 번거로운 경험들은 헌혈 재참여에 대한 접근성을 낮추는 요인이 된다.

 

헌혈을 부정적 경험에서 긍정적 경험으로 전환하는 것

결국 중요한 것은 꾸준한 헌혈 재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개개인의 이야기에 움직이지만 혹자는 빈곤 포르노의 예시를 통해 광고의 효용성에 의문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본 칼럼에서는 마지막으로 헌혈의 긍정적 경험화를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헌혈의 부정적 경험들은 헌혈 참여자들에게 하나의 트라우마로 인식되어 재참여를 막는다. 필자의 경우 고등학생 때 헌혈의 집에서 억울하게 질책을 당한 후 헌혈의 집에 발길을 끊었었다. 실제로 헌혈 서비스 요인 만족도가 혈소판헌혈 참여 의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2위를 차지했다는 연구결과도 존재한다. 헌혈 후 해당 헌혈 경험에 대한 조사를 시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헌혈 시 서비스에 대한 질적 연구를 실시하는 것은 헌혈의 부정적 경험을 최소화하는 하나의 방안이 될 것이다.

 

또한 헌혈이 긍정적 경험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단순히 봉사시간이나 기념품 제공과 같은 유형적 이익으로 유혹하기보다 내재적인 보상동기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 헌혈 참가가 모여 혈액 수급 위기를 극복한 후, 이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근황에 대한 문자 한 통을 보내준다면 어떨까? 문자를 받은 혈액 공여자는 앞으로 혈액 수급이 부족한 상황에 오는 경보 메시지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지 않을까?

 

칼럼을 마무리하며모두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

필자는 적십자사와 관련된 사람도, 관련 분야에 대한 권위자도 아니다. 그러나 한 명의 국민이자 헌혈 유경험자로서, 또 지금 이 순간 생사를 오가는 수많은 환자들을 걱정하는 예비 의료인으로서 느낀 지극히 개인적인 바람들을 풀어보았다. 아직은 미숙한 생각에 불과하지만 이후 보완을 거쳐 혈액관리본부에 건의해 볼 의향도 있다. 몇 개의 가능성을 던지는 한 국민의 투고를 적십자사가 받아볼지 그 여부는 모르겠지만, 모든 변화는 하나의 가능성에서 파생하니까. 부족한 칼럼에 또 다른 생각을 얹어줄 독자가 있다면, 두 팔 벌려 환영이라고 전하고 싶다. 그것이 이번 칼럼을 쓴 이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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