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의 세월을 넘어, '기억의 전쟁'이 찾아왔다
50년의 세월을 넘어, '기억의 전쟁'이 찾아왔다
  • 구서영 기자
  • 승인 2020.04.21 21: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쟁의 기억은 끝났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기억의 전쟁을 하고 있다.’
(출처_네이버 영화)
(출처_네이버 영화)

몇 년 전 미국의 한 대학교 계절학기에서 수업을 들으며 일본인 친구 A를 사귀었다. 인생에 관해 여러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만큼 가까워졌을 때 우연히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또래 일본인 남자애의 생각이 궁금했던 나는 솔직하게 평소 생각을 이야기해달라고 졸랐고 A는 아주 많이 고민하다가 이야기했다. ‘솔직히 우리는 그들이 매춘부라고 생각해. 그 대가로 돈을 받았으니까. 게다가 이미 너희 나라의 전 대통령은 더는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배상금도 받아갔다고 알고 있어. 그런데 왜 계속 우리의 사과를 바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 나는 우리의 할머니들이 그곳에 속아서 가거나 끌려갔음을, 도착한 이국에서 돈이 없는 그들이 고향에 돌아올 방안은 없었음을 이야기했다. 또 사과를 받고 용서를 해줄 권리가 피해자 할머니들이 아닌 국가일 수는 없으며 그것은 전 대통령의 실책이었음을 말했다. A네 말이 틀리지는 않을 수도 있다고 에둘러 수긍했지만, 그가 여전히 설득되지는 않았다는 것은 명백했다. 그리고 그때는 A의 그 아집을, 애매한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최소한 며칠 전, ‘그것을 마주하기 전까지.

 

기억의 전쟁을 만나다

‘<기억의 전쟁> 베트남 전쟁 희생자를 위한 조화 보내기몇 달 전, 한 크라우드 펀딩 웹사이트를 둘러보다가 발견한 캠페인의 이름이다. ‘베트남에는 우리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라는 말이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렇게 정독하게 된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월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해 약 80여 건, 9,000명에 달하는 베트남 민간인학살이 있었고, 전쟁이 끝난 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각 지역의 주민들은 해마다 한국군 증오비앞에서 죽은 이들의 제사를 치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적은 금액을 후원해 제사에 바칠 추모의 꽃을 보내고 완전히 잊고 있었던 프로젝트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은 지난 주였다. ‘그 일을 겪은 피해자들이 살아가는 현재의 이야기를 담은 독립영화 <기억의 전쟁>이 개봉했고 후원자들을 대상으로 특별상영회(감독과의 대화)를 개최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45일 일요일, 종로의 한 독립영화극장에서 20명도 안 되는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마주하게 되었고, 그곳에 앉아있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화면을 넘어 전해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80여 건, 9,000명이라는 숫자보다 훨씬 거대했다. 숨어있던 이모와 어린 동생들에게 방공호에서 나올 것을 명령한 뒤 나오는 사람마다 한 명씩 쏴 죽이던 한국군들의 기억. 엄마와 어린 형제들만 살던 집에서 한국군의 총을 맞고 울컥울컥 피를 토해내던 다섯 살 동생과 아직 숨이 붙어있는 오빠를 두고 살기 위해 도망쳐야 했던 기억. 총에 맞아 배의 밖으로 튀어나온 창자를 붙잡고 이미 한국군에 의해 죽은 엄마를 찾아 헤매던 기억. 50년이 넘는 세월은 그 모든 것들을 희석하기엔 너무나도 부족한 시간이었고, 그들은 죽은 가족들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아주 소수의 용감한 사람들은 결국 한국을 찾아와 그때의 기억을 꺼낸다. 국회와 기자회견에서, 시민단체에서 주최한 시민평화법정에서. 그리고 그들에 대한 욕설이 난무한 참전군인 집회의 앞에서. 연출이 아닌 다큐멘터리의 내용이다.

 

우리에겐 가까운 베트남, 그들에게 한국은 먼 나라

2018년 기준 한국의 4번째 교역국, 한국의 국제결혼 1위 국가, 아세안 국가 중 한국인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국가, 2019년 한국인이 가장 선호한 해외 여행지 1*이기도 한 베트남은 우리에게 쌀국수와 분짜, 반미 샌드위치의 나라로 더 익숙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2월 한국의 코로나 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베트남 정부는 한국발 여행기의 착륙 불허, 한국인 입국 제한과 격리라는 초강수를 두었고, 심지어 229일에는 인천발 하노이 행 여객기가 출발한 후 착륙 불허 통지를 받고 긴급 회항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열악한 의료 인프라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견해도 있었지만, 누리꾼의 반응은 유독 심하게 냉담했고 한동안 베트남 불매’, ‘베트남 여행 안 가기등이 화제였다.

*klook 제공

 

국경 폐쇄를 한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봐도 사뭇 다른 반응은 왜였을까? ‘박항서 효과’, 여행지의 주요 방문객이자 거대 자본의 투자자라는 갑으로서의 위치와 한류라는 문화적으로 우월한 입지가 조금도 작용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베트남은 정치·경제적 롤모델로서 한국을 벤치마킹함을 공공연하게 표방하는 국가이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이 베트남은 한국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국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장 여행지에서 조금만 벗어나 베트남 중부로 들어가 본다면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들어갈 수 없는 지역과 싸늘한 시선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출처_네이버 영화)
(출처_네이버 영화)

무지에 의한 폭력에 맞선다는 것

영화를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것은 전쟁이라는 이유로 나도 모르게 계속 변명의 구실을 찾게 되는 나 자신이었다. 그리고 곧 내 모습에서 일본인 친구 A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일제강점기라는 아픈 역사를 안고 있는 우리가 누군가에게는 가해자였다는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분명히 불편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들의 상처를 쉽게 외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 역시 자명하다. 혹자는 법적 효력이 없는 시민평화법정을 여는 것이나, 관객도 얼마 되지 않는 독립영화를 만드는 것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말할지 모른다. 실제로 영화에는 다뤄지지 않지만 응우옌 티 탄아주머니를 선두로 월남전 피해자들이 대한민국 정부에 올린 청원은 증거 불충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기각된다. 복잡한 정치·외교적 문제가 개입되기 때문에, 이들은 눈앞의 명분 때문에 국가의 이익을 놓쳐서는 안 된다던 국부(國父) 호치민 식의 실용주의를 내세우는 베트남 정부에게도 외면받는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완전한 실패일까? 매스컴을 통해, 소설을 통해, 영화를 통해 기억은 여러 다리를 거쳐 2, 3차로 전파된다.

 

최은영 작가의 소설 <씬짜오, 씬짜오>에서 어린 는 타지에서 친해진 베트남인 가족들에게 이야기한다. ‘한국은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어요. 우린 정말 아무도 해치지 않았어요순식간에 얼어붙은 식탁에서 의 친구 투이는 답한다. ‘한국 군인들이 죽였다고 했어. 그들이 엄마 가족 모두를 다 죽였다고 했어. 엄마 고향에는 한국군 증오비가 있대.’

 

어떤 무지는 폭력이다. 그것이 기억의 전쟁이 탄생한 이유임을 느끼게 되며 이번 기사를 쓰게 되었다. 그들의 아픔과 상처에 비하면 너무나도 가벼운 방법이지만, 우리는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식인 기억으로 감히 조금의 책임을 나눈다. 그것이 우리 각각에 닿아 개별의 의미를 만드는 첫 걸음이 될 것을 믿는다.

 

더 알고 싶은 이들을 위한, <영화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

*이길보라 감독과 모더레이터 이승민 평론가가 참여한 감독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 제목이 굉장히 특이하다. ‘전쟁의 기억이 아닌 기억의 전쟁이 제목인 이유는?

많은 이들에게 전쟁의 기억은 끝났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기억의 전쟁을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직접적으로 전쟁을 경험한 세대는 아니지만 우리는 월남전 참전 용사이신 할아버지들의 자랑스러운 무용담을 들어왔다. 또 교과서에서 이 전쟁을 언급하는 한 문장은 월남전 참여의 희생으로 한국은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는 것뿐이다. 이처럼 개인의 기억들과 국가가 만들어온 기억들에 의해 많은 주체들이 세뇌되어왔다. 영화를 통해 누군가가 치열하게 간직해온 기억을 들으면서 스스로 백의의 민족, 피해자라는 고착된 관념에서 벗어나는 시간을 갖길 바랐다. 우리들의 호흡을 느껴보고 민낯을 만나는 부끄러운 시간 말이다.

 

- 영화는 제목에 충실하게 온전히 세 사람의 이야기들로만 굴러간다. 그 배경이 궁금하다.

여성 감독으로서 전쟁을 다룬 영화를 제작한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군대도 안가고 전쟁도 겪어보지 않은 여자가 뭘 아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궁금했다. 여성과 장애인과 아이들의 시선 속 전쟁은 어떨까? 전쟁 당시 살아남았던 나무와 풀의 시선으로 전쟁을 바라본다면? 그렇게 만나게 된 사람들이 여성인 응우옌 티 탄’, 말 대신 수화 (홈 사인)을 사용하는 딘 껌’, 그리고 한국군이 심은 지뢰에 의해 시력을 잃은 응우옌 럽이다. 우리가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기억은 누가 이어나갈까. 많은 다큐멘터리 독립 영화들이 공적 자료를 기반으로 사실을 증명해가며 관객을 설득시키지만 기억의 전쟁은 온전히 피해자로서의 인물을 박제하려고 했다.

 

- ‘아빠의 죗값은 아빠가 치러야 하고, 할아버지의 죗값을 손자가 치를 순 없다는 피해자분의 나레이션이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숙제는 무엇일까?

몇 년 전 매스컴을 통해 월남전 사건이 대대적으로 알려지면서 미안해요 베트남운동 등 많은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피해자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서 너무 쉽게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어 왔던 건 아닐까? 응우옌 티 탄 아주머니는 한국인들을 만난다는 이유로 고향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면서도 아픈 몸을 끌고 두려움의 나라에 왔다. ‘시민평화법정에 선 그녀가 가장 바랐던 것은, ‘이 자리에 온 참전 군인이 올라와서 내 손을 잡아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응우옌 럽 아저씨는 이 일을 왜 계속 하냐는 물음에 한국군에 의해 가족을 잃고 평생 저주 속에 살던 어머니께서 돌아가실 때 한국인이 오면 잘 대해주고, 듣고 싶어 하는 자들에게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셨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들의 기억을 이어나가는 것이 우리의 숙제인 이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