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아이콘이자 한계의 이름
노무현, 아이콘이자 한계의 이름
  • 허좋은 기자
  • 승인 2010.09.01 15:05
  • 호수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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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1주기 추모콘서트에서

  지난해 5월 23일, 전직대통령이 자신의 몸을 내던졌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 당내 소장파 무명 정치인에서 극적으로 대통령에 당선 된 직후 <한국일보> 선임기자 고종석의“그의 가장 큰 업적은 당선된 것일 수도 있다”는 표현처럼. 그러나  그의 직설적인 화법과 일부 영향력 있는 언론과 각을 세운 덕에 평탄치 못했던 재임기간. 좌-우 양쪽의 공격 속에서 자신의 진정성을 표현했던 이. 퇴임 후에야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한 사랑을 받았던 이. 그러나 재임기간 중 추진했던 검찰개혁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비극적 생을 마치게 된 그였다.

  지난 8일(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서거 1주기 추모콘서트-파워 투 더 피플(이하 추모콘서트)’이 성공회대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다. 행사가 열리는 성공회대로 들어가는 인도의 보행자 안전 난간에는 노 전 대통령의 상징인 노란 풍선이 이어져 있었다. 성공회대를 들어서서도 각종 부스에서 노 전 대통령의 기념물을 팔거나, 노 전 대통령을 기리는 단체들의 가입자를 받는 모습이 이어졌다. 이 길목을 지나자 운동장이 눈에 들어왔다. 주최 측이 준비한 의자와 운동장의 스탠드는 이미 많은 시민들로 차 있었다. 무려 2만 여 시민들이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이다.

  전직 대통령의 서거가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도 추모 열기는 뜨거워 보였다. 그가 지녔던‘서민’,‘ 바보’라는 이미지와‘그를 죽음에서 지키지 못했다’는 마음의 짐을 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은 아닐까. 노사모의 대표를 했던 배우 명계남이“당신이 고민했던‘철학, 정치, 정의, 진보의 미래’다 떼려치우고, 욕먹어도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며 울먹이고 절규할 때, 수많은 사람이있는 자리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는 숙연했고 일부 시민들은 눈물을 흘렸다.

  전직이 되어서야, 고인이 된 후에는 더 큰 사랑을 받는 노 전 대통령. 그는 2010년 현재 한국 사회 속의 아이콘이다. 그러나 추모의 열기는 곧 그의 정치적 계승자이자 6.2 지방선거에 출마한 두 명의 정치인을 통한 정치적 승리를 다지는 장으로 바뀌었다. 이미 행사장에 들어가는 입구부터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나설‘경기도지사 야권단일후보 도민 경선의 선거인단 참여’를 부탁하는 지지자들의 활동이 보였다. 행사장 한편에는 한명숙 전 총리와유 전 장관의 지지자들이 내건 현수막이 결려 있었고 한 전 총리의 지지자들은‘한명숙을 지키자’는 플랜카드를 들고 공연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한 전 총리가 행사 전 등장할 때 시민들은 한 전 총리의 이름을 연호하며 환호를 보냈다. 공연 막바지 개그맨 노정렬이 노 전 대통령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성대모사로“제2, 제3의 노무현인 한명숙을 지켜 달라”고 연발할 때 절정에 이르렀다.


  예상치 못한 장면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장이 곧 있을 지방선거의 거대한 유세장으로 변하는 모습에 마음이 썩 편치 않았다. 물론 두 명의 야당 후보는 예정되어 있던 프로젝트 밴드‘사람 사는 세상2’의 공연에도 오르지 않았고 무대에서 연설이나 추모사를 읊지도 않았다. 그저 정치적 계승자로서 상주의 역할을 하며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무대에 올랐던 가수 안치환이“그의 이름 세 글자를 가지고 자신의 사사로운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한 하이에나와 이무기들”을 경계했듯 그들은 추모콘서트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최대한 감추었다. 그럼에도 불편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노무현’이라는 세 글자 없이는 2010년, 한 전 총리와 유 전 장관이 야당 유력 정치인이 되긴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시민 다수의 지지로 인해 권력을 얻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 선거에 출마한 정치인들은 당연히 시민이 원하는 것, 좋은 정책으로 시민들의 지지를얻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이 현재 큰 지지를 받는 것은 이들의 정책이 아닌, ‘노무현’의 계승자라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현재 한국 정치의 몇 안 되는 아이콘 중 하나인 동시에 한국정치의 한계다. 그는 재임 중 누구도 부인 할 수 없을 만한 업적을 남기지도 않았다. 오히려 부동산 정책과 한미FTA체결과 같이 지지층의 등을 돌리게 만듦과 동시에 피부에 잘 닿지 않는 국가보안법 폐지∙사립학교법∙과거사 정리∙언론 개혁 등을 시도하면서‘이념’공세에 시달렸다. 이날 추모공연에서도 배우 문성근이“노짱(노 전 대통령의 애칭)은 잘못했다. 노동 유연성을 막지 못했고, 복지 예산을 혁명적으로 늘리지 못했다”며 노 전 대통령의 한계를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곧“원칙의 사회, 평화, 정의가 바로서는 사회가 노짱의 꿈”이었다며 노 전 대통령의 진정성을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은 업적보다 큰 한계를남겼음에도 더 큰 상징성을 갖고 떠났다. 그러므로 남은 자들은 노 전 대통령의 상징성을 지님에 안주해선 안 된다.그가 부딪치고 넘지 못한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한국 정치는 오랜 시간 3김으로 상징되는 지역주의를 벗지 못하였으며 아직도 그것을 뛰어 넘지 못 하고 있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이 또다른 상징적 한계가 되어버린다면 한국 정치는 정책이 아닌 상징적 인물들만이 남을 것이다.

  추모는 추모로 끝내야 한다. 추모가정치적 복수로 이어져‘정책’이 실종되는 것은 시민들에게 큰 불행이다. 추모콘서트는 콘서트의 주제인‘파워 투 더피플’을 시민들이 합창함으로 끝났다. ‘인민에게 권력을’로 해석되는 이 노래의 제목처럼 평범한 시민들이 진정한 주권자가 되기 위해서는 정책이 정치의 전면에 나설 때 가능하다. 추모콘서트가 끝나고도 가족과 함께 온 예닐곱쯤 되어 보이는 한 아이가 천진난만하게‘파워 투 더 피플’을 반복해서 불러댔다.


<글∙사진 : 허좋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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