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묻지마 폭행은 왜 여성을 향했을까.
서울역 묻지마 폭행은 왜 여성을 향했을까.
  • 이서현 수습기자
  • 승인 2020.07.01 10:5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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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6일 대낮 서울역에서 32세의 남성이 일면식도 없는 여성에게 상해를 입히고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피의자가 택시를 부르기 위해 휴대폰을 보던 피해자의 오른쪽 어깨를 세게 치고 욕설을 하면서 시작됐다. 피의자는 지속해서 폭행을 시도하다 계속되는 비명에 도주했다. 피해자는 눈가가 찢어지고 광대뼈가 함몰되는 등의 중상을 입었다.

 

미흡한 철도경찰의 초기 수사 과정

폭행 위치가 CCTV 사각지대이고 피의자의 열차 탑승 명세나 역사 내 카드 사용 기록이 존재하지 않아 수사의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철도경찰은 역추적 방식을 선택해 범행 전 피해자 접근 경로 파악을 목표로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중에 추가 범행 장면도 발견됐으나 역사 밖에서 일어난 범행에 대해 공조 수사 요청을 하지 않았다. 경찰은 언론 보도 후에야 추가 범행 사실을 인지하게 됐고 수사가 지연됐다.

 

위법한 체포과정으로 풀려난 피의자

철도경찰은 2일 서울 동작구 자택에서 피의자를 긴급체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긴급체포가 필요한 상황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영장을 기각했다. 법조계는 판사의 결정이 시민의 법 감정과 맞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적합한 판단이었다며 여론을 의식한 경찰의 성급한 행동을 지적했다. 이에 경찰 측은 도주 및 극단적 선택 등의 우려로 신속히 검거할 필요성을 느껴 내린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여성 혐오 범죄 논란

피의자는 우발적 범행임을 주장하고 있으나 SNS 해시태그 운동이 퍼지면서 계획된 여성 혐오 범죄라는 여론이 고조됐다. 의도적으로 여성에게 접근해 어깨를 부딪치고 CCTV가 없는 사각지대에서 폭행한 계획적인 범죄라는 것이다. 피해자는 남성이었거나 남성과 함께 있었다면 이런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여성을 대상으로 한 명백한 혐오 범죄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성 혐오 범죄로 단정 짓기는 이르다며 여성만이 아닌 사회적 약자를 향한 분노표출로 봤다.

 

끊이지 않는 여성 대상 범죄, 대책은?

사건 이후 또다시 여성을 향한 묻지마 폭행 사건이 줄지어 발생했다. 5일 서울 동작구에서 30대 남성 가해자가 골목길을 지나던 여성들을 폭행했다. 11일에는 서울 송파구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40대 남성이 여성 두 명을 폭행한 혐의로 체포됐다. 연이어 계속되는 여성 대상 범죄에 시민들은 불안함을 크게 나타냈고 법과 제도의 미비함을 비판하며 개정을 촉구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묻지마 폭행은 대부분 1년 이내의 실형 또는 집행유예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부실한 처벌이 범죄를 키우는 것이다.

 

여성도 안전한 사회를 향해

여성폭력방지 기본법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방지하고 피해자 보호와 지원을 국가의 책임으로 명확히 하자는 취지로 지난해 1225일부로 시행됐다. 법은 여성폭력을 폭넓게 규정하며 범죄에 종합적인 대응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각 지역의 기관들도 여성 안심 귀갓길과 안전 동행단 확대 운영, 범죄 취약지 연계 순찰 등을 실시하며 여성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런 지속적인 노력에도 여성의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았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낮은 성인지 감수성과 더불어 여성 인권을 경시하는 풍조를 보인다. 김건수 논설위원은 성인지 감수성은 선천적인 공감 능력이 아니다. (Gender)이 사회적으로 만들어졌듯, 이 감수성도 후천적으로 키워져야 한다고 말하며 성 평등 교육이 정규 교과과정 안에 포함되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했다. 실질적인 범죄 근절을 위해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 탈피와 교육을 통한 성차별적 인식 개선이 우선으로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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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예빈 2020-07-07 01:08:37
너무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앞으로 이런 기사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최아현 2020-07-01 11:19:28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학교와 관련된 이런 기사도 더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