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기부 포비아‘에 맞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한‘ 접근 (part 2.)
[칼럼]‘기부 포비아‘에 맞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한‘ 접근 (part 2.)
  • 구서영 기자
  • 승인 2020.07.14 1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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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도 기부도, 언제나 중요한 건 “매칭”ㅡ 새로운 매개의 필요성을 말하다

1(기술, 기부를 만나다)에서 이어집니다.

 

지정기부, 지정받지 못한 곳은 볼 수 없는 빛

기부단체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서 기존의 일반기부대신 떠오르고 있는 것은 지정기부이다. 지정기부는 후원자가 결연아동을 1:1로 지정해 장기간 후원하거나 기부단체가 아닌 특정 프로젝트에 후원금을 쾌척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일반기부의 대신 지정기부를 선택하는 후원자의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정기부에는 본질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바로 기부 쏠림 현상으로 지정받지 못한 곳의 어려움과 빈곤 포르노에 대한 우려이다. 빈곤 포르노란 모금 유도를 위해 가난을 포르노처럼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지정기부를 유도하는 이벤트성 모금들은 종종 관련 논란에 휩싸이곤 한다. 빈곤 포르노의 잦은 노출은 대중들이 점차 자극적인 콘텐츠에 둔감해지게 하고 그 결과 덜 자극적이고 꾸며내지 않은 가난의 모습은 외면받게 된다. 어두운색이 끝까지 같은 명암을 유지하더라도 주변의 밝은색이 더 밝아지면 잘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또한 빈곤 포르노는 구원자 콤플렉스를 부추긴다. 몇 년 전 기초 수급자 아이가 돈가스 먹는 것을 보고 센터에 항의를 넣은 시민의 이야기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것을 기억하는가? 자극적으로 동정심을 유발하는 기부는 받는 사람주는 사람을 극단적으로 구분하고 받는 사람의 처지에 관한 잘못된 편견을 부추긴다.  

 

물품기부, 필요한 선물을 고르기란 언제나 쉽지 않기에  

지정기부와 더불어 물품기부역시 기부비리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코로나 19와 관련하여 각종 미디어에서 의료진 임금 체불과 열악한 환경 등을 연이어 폭로하면서 의료진을 위해 전국에서 모인 기부금이 올바르게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이에 의심을 품은 많은 사람들이 직접 마스크나 간편 식품을 전달하는 식으로 물품기부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물품기부의 가장 큰 문제는 기증되는 물품과 대상자의 요구 불일치이다.

물품기부는 종종 기부냐 처분이냐는 논란에 휩싸인다. 한 온라인 사이트에서는 자신이 복지관에서 근무 중이라고 밝힌 사용자가 창고에 온갖 아이돌(IDOL) 앨범이 쌓여있다.”며 처치 곤란인 앨범을 기부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하기도 하였다.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이루어지는 물품기부는 되려 짐이 된다.

만약 기부단체에서 직접 필요한 것을 공개한다고 하더라도 도처에서 같은 물품들만 전달된다면 그것 역시 문제이다. 모 자선단체에 첫 정기 후원을 신청하고 몇 달 뒤, 필자의 집에는 뜻밖의 택배가 도착했다. A모 기업의 인공지능 스피커였다. 다소 뜬금없는 선물에 당황해 검색해보니 A모 기업에서 자사의 인공지능 스피커를 자선단체에 대량 전달하였다는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당연히) 수천 대의 인공지능 스피커가 필요하지 않았을 자선 단체에서는 해당 제품을 처리(?)하기 위해 기존 후원자들에게 특별 선물을 발송한 것이었다. 단체에서 정말 많이 필요로 한 것이 스피커였을까? 당장 먹을 것과 잘 곳을 걱정하는 이들에게 스피커가 다다익선이 될 수는 없어 보였다.

 

지정기부도 문제, ‘물품기부도 문제, 그럼 뭘 하라고?

필자가 제시해보는 해결책은 매칭을 돕는 중매자, 연결고리의 신설이다. 물품기부가 필요한 여러 기관들과 후원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웹사이트나 앱이 생기면 어떨까? 먼저, 기관에서는 당장 필요한 물품들을 명시하고 실시간으로 수정할 수 있다. 새로운 요구가 생기면 목록에  추가하고, 후원이 들어온 항목은 목록에서 지우는 식이다. 기부를 희망하는 이는 기관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을 직접 구입해 보내주면 된다. 후원자는 돕고 싶은 곳을 지정할 수 있으면서도 다양한 사연들에 대한 접근이 통합사이트를 통해 쉽게 이루어지기에 보이지 않던 곳들도 이전보다 공평하게 노출될 것이다. 현금기부에 대해 직접성과 투명성을 보장하는 물품 기부의 장점은 취하되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 딱 맞게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기부자가 되어야 하는가

물론 이번에도 모든 것은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다. 기부 포비아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근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은 분명히 시민단체의 자발적 각성과 투명한 운영, 회계 비리에 대한 정부의 철저한 감사와 제도적 개선이다. 하지만 필자는 후원자가 제대로 된 기부처를 똑바로 알아봐야 한다는 주먹구구식 논리에 허탈함을 느꼈기 때문에 이번 칼럼을 작성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눈 뜨고 코 베이는세상에서, 가장 감성적인 선의를 갖고 다가가는 우리들이 (몇몇) 사기꾼의 가장 이성적인 속임수를 간파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을 다해 세상의 어두운 곳을 비추고자 하는 사람들이 다수임은 분명하다. 죄가 없음을 증명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일 뿐.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기부 포비아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존재함을 알고 그것이 찾아왔을 때 알아볼 수 있는 기부자가 되었으면 한다. 오랫동안 그려온 첫사랑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단번에 알아보듯이. 그것은 블록체인과 중재자처럼 색다른 모습으로, 마침내 우리에게 다가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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