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KBS교향악단 특별연주회IV “영웅”을 그리다
[르포]KBS교향악단 특별연주회IV “영웅”을 그리다
  • 이승민 기자
  • 승인 2020.08.05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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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교향악단은 2020716일에 제756회 정기연주회를 공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COVID-19)로 인하여 기존의 지휘자와 협연자가 내한하지 못하자 프로그램을 변경하여 특별연주회로 진행하게 되었다. 특별연주회에는 20206월까지 강남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재임하였던 성기선 지휘자와 현 대구가톨릭대학교 석좌교수인 백혜선 피아니스트가 함께하였다. 1부는 베토벤의 코리올란 서곡 c단조, 작품62(L. v. Beethoven Coriolan Overture in c minor, Op.62)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c단조, 작품37(L. v. Beethoven Piano Concerto No.3 in c minor, Op.37), 2부는 베토벤 교향곡 제3E장조, 작품55 ‘영웅’(L. v. Beethoven Symphony No.3 in EMajor, Op.55 ‘Eroica’)으로 구성되었다. 2020년 올해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라 베토벤의 곡들로만 구성된 점이 인상적이었다.

 

1부 곡이었던 코리올란 서곡과 피아노 협주곡 3번 모두 c단조로 구성되었다. 베토벤의 다른 주요 작품에도 c단조 조성을 찾아볼 수 있는데 교향곡 제5운명’, 합창환상곡, 피아노 소나타 8비창등이 그 예시이다. 코리올란 서곡은 하인리히 요제프 폰 콜린의 희곡 코리올란을 모티브로 한다. 코리올란은 로마의 영웅인 가이어스 마르키우스 장군의 별칭으로 전쟁에서 패한 로마를 떠나 적국의 장군이 되어 고국을 상대로 전쟁을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1주제의 힘찬 멜로디가 마치 영웅의 모습을 그린 듯했다. 후대의 작곡가인 바그너는 이 곡에 대해 베토벤의 위대한 힘은 불굴의 자신감과 열광하는 반항심, 분노, 증오, 복수, 파괴적 정신 속에서 영웅의 모습을 재현했다는 평을 내렸다.

 

또 다른 1부 곡인 피아노 협주곡 3번은 1, 2번과 달리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에서 탈피하여 베토벤의 개성을 드러낸 곡이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피아노 협주곡 3번은 2부 곡인 교향곡 제3번과 함께 걸작의 숲이라고 불리는 그의 중기 작품들의 시작점으로 여겨진다. 이날 협주는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맡았다. 1악장에서는 피아노가 제법 나중에 등장하지만, 관현악과 호흡을 주고받은 이후 60마디 넘는 긴 카덴차*에서 협주자의 관록을 엿볼 수 있었다. 느리고 약간은 음울한 2악장이 지나간 이후 3악장에서는 다시 밝고 가벼운 리듬으로 돌아왔다. 목관과 현악기들이 주제를 번갈아 연주하는 사이 독주 피아노가 등장하였다. 특히 마지막에 밝고 화려하게 곡을 마치는 장면에서 바흐로부터 이어져 오던 18세기 대위법의 시대에서 나아가 새 지평을 열었던 베토벤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카덴차(Cadenza): 악곡이나 악장의 마침 직전에 연주자의 기교를 발휘할 수 있도록 구성된 화려한 무반주 부분.

 

2부 베토벤 교향곡 제3영웅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베토벤의 중기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자유, 평등, 박애의 혁명 정신을 구현할 영웅이라 생각하며 그에게 헌정하려 했으나, 나폴레옹이 결국 황제로 즉위하자 보나파르트에게 헌정됨이라고 쓰여 있던 악보의 표지를 찢고 ‘Sinfonia Eroica’, 즉 영웅 교향곡으로 다시 써넣은 일화로도 유명하다. 이미 1802년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유서를 썼을 정도였던 베토벤은 자신의 고통에 관하여 생각하면서 그러한 어두운 현실을 극복해야 하는 운명적인 필연이라고 여겼는데, 이러한 운명을 거스르고 이겨내는 영웅 정신을 그의 음악 속에 담아내려 하였다. 덕분에 베토벤의 세 번째 교향곡은 그 이전까지의 교향곡과는 궤를 달리한다. 베토벤 교향곡 1, 2번에서는 하이든이나 모차르트 등 선배 작곡가들의 색채가 강하게 나타나며 이를 답습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평도 있지만, 3번은 많은 혁신적 시도와 더불어 베토벤의 작곡가로서의 정수를 담아내며 그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베토벤은 교향곡 3번을 시발점으로 하여 교향곡 5운명”, 6전원”, 7, 9합창등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덕분에 하이든이 교향곡이라는 형식을 만들었지만, 교향곡을 진정한 인간적인 음악으로 승화시킨 것은 베토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베토벤이 악성(樂聖)“이라고 불리게 된 시발점이 바로 영웅교향곡이라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1악장은 서주 격으로 두 번의 울림을 주고 시작하며 주제 2개를 던져준다. 그리고 그 주제를 확장하는 전개부는 200마디가 넘는 길이뿐만 아니라 리듬의 파격, 불협화음, 잦은 조바꿈 등 주제의 변주가 이전에는 보지 못한 파격이다. 베토벤 음악의 특징인 견고한 구축 능력과 악상 전개능력이 제대로 발휘되는 부분이다. 2악장은 베토벤이 장송 행진곡’(Marcia funebre)이라고 제목을 달았는데 이에 어울리는 무거운 저음을 바탕으로 오보에가 애절한 멜로디를 수놓으면서 시작된다. 베토벤이 겪었던 비극 때문일까, 인간의 본질로서의 비극성을 떠오르게 한다. 3악장은 스케르초 형식으로 구성되었는데 트리오(중간부)에서 호른 3중주가 특기할만한 점이다. 마지막 4악장에서는 에로이카 변주곡에서의 전개를 주제로 변주곡을 연주하였다. 이전 시대의 변주곡에서 쓰인 음형 변주*와 앞으로 빈번하게 쓰일 성격 변주*를 배합하며 혁명적인 영웅을 그려내었다.

*음형 변주: 음의 폭과 길이를 쪼개거나 늘이며 성격적 변화를 주는 것.

*성격 변주: 주제의 특성적인 요소, 즉 가락 중에서 귀에 잘 들리는 음이라든가, 화성적 특징, 또는 특이한 리듬 같은 것을 이용하여 하나하나의 연주에 성격적인 변화를 주는 것.

 

이날 공연의 레퍼토리가 전부 베토벤의 중기 작품인지라 영웅을 그리다라는 제목이 매우 걸맞았다. 작금의 이 혼탁한 시대 앞에 서 있을 영웅은 과연 누구일까. 흔히 영웅이라고 하면 남다른 용기와 재능으로 사람들이 해내지 못하는 것을 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기 때문에 추앙받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는 영웅을 너무 멀리 있는 초월적 존재로 여겨지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영웅에게 너무 많은 짐을 씌우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일상을 살아가며 사소한 것일지라도 타인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고, 그렇기에 모두가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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