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되감기] 플롯의 마술, 덩케르크
[필름되감기] 플롯의 마술, 덩케르크
  • 이성언 기자
  • 승인 2020.09.13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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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케르크 스틸 이미지(출처_네이버영화)
△덩케르크 스틸 이미지(출처_네이버영화)

세계적인 거장 중 한 명인 크리스토퍼 놀란(이하 놀란) 감독의 새 영화, 테넷이 지난 826일 개봉했다. 코로나의 장벽에 전 세계의 영화시장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테넷은 호평 속에서 관객 수를 늘리고 있다. 이번 작품은 플롯의 마술사라는 그의 별명에 걸맞게, 시간을 조작하는 미래 기술 인버젼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놀란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시간을 중요하게 다루는 작품이 많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의 시간을 거꾸로 보여주는 <메멘토>, 꿈의 시공간 속에서 귀향을 위한 남자의 작전을 다루는 <인셉션>, 4차원의 시공간을 이용하여 인류를 구하는 이야기인 <인터스텔라>, 시간을 조작하는 자들의 싸움을 소재로 한 <테넷>, 그리고 <덩케르크>까지 모두 영화 속에서 시간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덩케르크>는 서로 다른 세 공간의 시간을 엮어내어 정교하게 플롯 구조를 세웠다.

 

플롯이 주인공인 <덩케르크>

영화 <덩케르크>19405,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진격에 덩케르크 해변에 고립된 영국군을 포함한 연합군의 대규모 철수 작전을 그린 영화이다. 다이나모 작전이라고 불렸던 이 작전은 죽음의 공포에 떠는 약 40여만 명의 군인과 함께 총 9일 동안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많은 이가 철수 작전에 참여했다.

 

<덩케르크>는 특이한 플롯 구조로 되어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해변에서 공포에 휩싸인 영국군과 그들을 지키고 구출하기 위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었다. 이야기는 육지에서 독일군의 폭격기에 휩싸여 사면초가에 빠진 영국군의 일주일, 바다에서 그들을 구출시키기 위해 징발된 민간선박인 문스톤 호의 하루, 하늘에서 그들의 철수를 돕기 위해 엄호하는 영국 공군 폭격기의 한 시간을 포함한다.

 

이 영화에는 명확한 주인공이 없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병사들의 이름은 단 한 번도 정확히 불리지 않는다. 놀란 감독은 의도적으로 구출 작전의 중심인 동시에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그들에게 정체성을 부여하지 않았다. 또한 그 외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도 앞장서서 이야기의 중심이 되려 하지 않는다. 놀란 감독은 캐릭터를 대신하여 내러티브를 진행시킬 수 있는 대책을 마련했다.

 

놀란 감독은 생존과 희생이라는 관점에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영화의 중심에 인물이 아닌 플롯을 내세웠다. 해변에서의 플롯은 영국군들의 생존을 의미하고, 하늘과 바다에서의 플롯은 그들을 구하기 위해 나아가는 구조자의 희생을 의미한다. 그들의 생존과 희생을 동시에 엮어내기 위해서 놀란 감독은 주인공 중심의 플롯 구조를 버려야만 했다. 그 대신 놀란 감독은 다이나모 작전이 이루어졌던 당시 어떻게 생존과 희생이 이루어졌는지 강조하기 위해 이야기의 뼈대 그 자체에 집중했다. 결국 이 영화의 주인공은 생존을 끌어내는 플롯, 그 자체이다.

 

놀란 감독은 앞서 만든 영화에서 축적된 편집기술과 복잡한 플롯 전개법을 한층 더 성숙시켜 <덩케르크>에서는 예술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 또한 병사들을 구하기 위한 이들의 희생정신과 용기는 놀란이 구축한 영화 기술 속에서 큰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인간 정신의 휴머니즘과 정교한 영화 기술로 세운 이 영화는 하나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어 냈다. 영화를 볼 때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에서 벌어지는 세 이야기가 어떻게 하나로 모이는지, 그 속에서 휴머니즘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큰 감탄을 자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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