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되감기] 사냥(The Hunt)은 정의(The Justice)가 아니다.
[필름되감기] 사냥(The Hunt)은 정의(The Justice)가 아니다.
  • 전영재 기자
  • 승인 2020.10.14 1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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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헌트의 스틸이미지
△영화 <더 헌트>의 스틸이미지

유치원 선생님, 이혼, 남자. 루카스를 구성하는 단어는 다음과 같다. 여기에 딱 하나의 단어가 추가된다. “소아성애자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루카스를 제외한 모두가 옳다고 믿기에, 거짓말은 진실로 변한다. 덴마크 영화 <더 헌트(2012)>는 최근 우리 사회에 있었던 일련의 마녀사냥 사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견고한 거짓말로 쌓은 탑은 진실로도 무너뜨리기 힘들다. 클라라의 거짓말로 시작된 소문은 삽시간에 온 마을로 퍼진다. 정확한 근거도, 알리바이도 없지만 어린아이는 거짓말을 못 한다는 믿음 속에서 떠도는 소문은 진실이 되었다. 따뜻한 마을이 차갑게 바뀌면서 루카스를 보는 그들의 시선 역시 돌변한다.

 

루카스가 억울함을 호소했을 땐 이미 늦었다. 경찰 조사를 통해 무죄로 풀려났지만, 마을로 돌아온 루카스에게는 소아성애자라는 꼬리표가 달렸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경멸스러운 눈으로 쳐다봤고, 큼지막한 돌이 그의 집 창문으로 날아왔다. 마트에서 쫓겨나 사람들한테 두들겨 맞았다. 이 낙인은 그대로 그의 아들 마쿠스에게도 이어졌다. 잘못된 믿음을 향한 마을 사람들의 성벽은 견고했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상처는 아물어갔다. 마을 사람들과 오해를 푼 루카스는 집 밖으로 나왔고 모든 것이 평화로웠던 그때로 돌아간 듯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불편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루카스는 괜찮은 척하는 웃음을 지었다. 루카스의 상처는 보이지 않지만, 깊게 남은 흉터는 여전히 존재했다.

 

강한 믿음과 방어 기제, 대상을 낙인찍고 사적 제재를 가하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에서 최근 있었던 디지털 교도소사건이 연상된다. 이들 역시 그럴듯한 거짓말로 진실을 만들어냈고, 무고한 사람들이 비난에 시달렸다. 그로 인해 최근 한 사람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법 테두리 밖의 정의구현은 진짜 정의라고 할 수 있을까? 디지털 교도소의 행동은 정의구현이 아니라 사냥(The Hunt)이었다. 적당한 먹잇감을 물색해 저 사람은 악독한 범죄자다라는 미끼를 뿌렸다. 미끼를 문 사람들은 먹잇감을 향해 달려들었다. 후에 진짜 진실이 밝혀져도 이들은 아니면 말고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루카스를 만들어낸 디지털 교도소는 결국 폐쇄됐다. 하지만 대한민국 루카스들의 흉터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오해가 풀렸지만 불편한 시선을 받고 있으며, 여전히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다.

 

우리는 믿음을 부정하는 것보다 누군가를 사냥감으로 몰아가는 게 더 편하단 걸 알고 있다. 영화 <더 헌트(2012>는 이런 생각에 의문을 던진다. 알게 모르게 만들어지고 있는 또 다른 루카스를 이제 막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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