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어둠 속에서 미래를 비추다 – 2020 서울시향 오스모 벤스케의 시벨리우스 교향곡 3번
[르포] 어둠 속에서 미래를 비추다 – 2020 서울시향 오스모 벤스케의 시벨리우스 교향곡 3번
  • 이승민 기자
  • 승인 2020.12.09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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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교향악단은 20195월에 새 음악감독으로 오스모 벤스케(Osmo Vanskä)를 선임했다. 오스모 벤스케는 201512월 정명훈 지휘자의 사임 이후 공석이었던 서울시향 음악감독 자리에 올랐다. 음악감독의 빈자리로 부침을 겪었던 과거를 뒤로 하고, 재건과 부활을 선포하려는 서울시향의 의지가 돋보이는 결정이었다. 벤스케가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에서 16년간 상임지휘자로서 재임하며 악단을 키웠을 뿐만 아니라 그래미상 후보에 오르는 등 음반 활동 또한 활발했기에 2020년의 서울시향은 큰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코로나 19라는 전 세계적 재난이 발발했다. 서울시향 또한 이 여파를 피할 수는 없었다. 많은 연주회가 취소된 것은 물론 오스모 벤스케가 기존의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또한 겸직했기에 해외 이동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그가 올해 새로 맡은 악단을 조련하고, 키워내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러한 악재에도 불구하고, 벤스케는 2주간의 자가격리를 총 4번 감수하면서 고령임에도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었다. 214, 1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말러 교향곡 2부활로 취임 연주회를 가진 후 6, 8월에도 공연을 맡았다. 11월에는 1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과의 협연을 가진 것을 시작으로 20일에 예술의전당에서 관객들을 맞이하였다.

 

1120일 공연은 1부는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1(S. Prokofiev, Symphony No. 1 in D Major, Op. 25 ‘Classical’)과 피아니스트 임주희와 함께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협주곡 2(D. Shostakovich, Piano Concerto No. 2 in F Major, Op. 102) 2부는 시벨리우스 교향곡 3(J. Sibelius, Symphony No. 3 in C Major Op. 52)으로 구성되었다. “낯설고 어렵지만 가벼운 곡으로 구성했다라는 오스모 벤스케의 말처럼 대중적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곡들이었다.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1번은 고전적이라는 말에 걸맞게 고전과 현대의 결실이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하이든을 존경하던 프로코피예프가 고전주의를 현대 음악에 적용하며 탄생하였다. 고전적인 음악 어법을 따른 만큼 편성도 소규모이고 간결하지만 명확한 악절 구조가 돋보인다. 일반적으로 교향곡이라고 하면 대개 40분이 넘어가는 긴 음악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이 곡은 15분이 되지 않는 짧은 곡이다. 하지만 그 안에 고전주의 시대의 특징과 더불어 프로코피예프 특유의 작법을 잘 녹여낸 신고전주의의 선구적 작품이라 평가받는다. 경쾌한 시작과 우아하고 발랄한 마무리에 벤스케의 절도 있는 해석이 섞이며 곡의 완성도를 더했다.

 

또 다른 1부 곡인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협주곡 2번에서는 2000년생의 젊은 협연자 임주희와 함께하였다. 1악장에서는 어린 피아니스트가 처음 하는 곡이라 긴장을 한 것인지 약간 음량이 작았다. 게다가 페달을 너무 길게 밟아 곡의 역동적인 분위기가 반감되었다. 하지만, 2악장에서는 부드러운 연주와 흠잡을 데 없는 악단의 반주가 가미되어 고요하고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잘 드러냈다. 3악장에서는 1악장과는 달리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음량이 조화를 이루면서 곡 특유의 재기발랄함이 잘 드러났다. 이 곡은 쇼스타코비치가 아들의 모스크바음악원 졸업 선물로 주려고 작곡한 곡으로 아버지의 사랑이 잘 드러나는 곡인데, 어린 협연자와 함께해서 인지 1악장에서는 조금 작던 피아노 소리가 3악장에서 오케스트라와 합을 잘 맞추는 것을 보며 이 일화가 연상되었다. 앙코르로는 슈베르트의 4개의 즉흥곡(F. Schubert, 4 Impromptus, Op. 90) 3번을 연주하였는데, 오른손 5번의 주선율과 왼손의 부선율, 그리고 오른손 나머지 4개의 손가락의 아르페지오* 반주가 조화를 이루는 곡이었다. 조화롭고 단아한 멜로디가 인상적인 곡으로 임주희는 곡의 특징을 극대화하였다.

*아르페지오(Arpeggio): 화음을 이루는 각 음을 한꺼번에 소리 내지 않고 오르내리는 꼴로 내는 화음

 

벤스케가 미네소타에서도 많은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등 젊은 음악가들을 양성했다는 점에서 이번 협연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물론, 임주희는 이미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정명훈 등 거장들의 총애를 받아 어린 나이에 왕성한 연주 활동을 보이는 신동이었지만, 이날 한층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쇼스타코비치의 곡이 본인에게 잘 맞지 않는 곡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그녀는 처음 치는 곡이었음에도 예상 이상의 연주를 들려주었다. 이렇게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임주희의 5년 후, 10년 후 모습이 기대되는 날이었다.

 

2부는 핀란드의 대표적인 작곡가인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3번이었다. 지휘자 오스모 벤스케가 핀란드 출신으로 시벨리우스 음악원에서 지휘를 배웠고, 특히나 시벨리우스 스페셜리스트라 평가받기에 많은 기대가 되는 공연이었다. 시벨리우스는 교향곡 3번에서 전작인 1, 2번의 장대함과 애국심을 고취하는 국민악파 특유의 작법과는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그의 조국 핀란드는 러시아의 압제에 계속 저항하는 중이었기에 초연 당시에는 큰 호응을 얻지는 못하였다. 더군다나 핀란드의 전원 교향곡이라 불릴 정도로 유명한 2번과 정교하고 짜임새 있게 구성된 4번 사이에 있는지라 크게 주목받는 작품은 아니다. 이 때문인지 카라얀은 이 3번만큼은 연주하지 않았고, 시벨리우스에 정통한 유진 오먼디 또한 교향곡 3번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작품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시벨리우스는 이 작품을 통해서 고전적 형식과 작법을 통해 간결화, 내면화, 추상화를 지향하는 독자적인 개성을 구축하였다. 교향곡 3번이 있었기에 이후에 4, 5, 7번과 같이 자주 연주되는 작품들이 소위 명곡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이 곡은 총 3악장 형식으로 구성되었는데, 1악장은 소나타 형식을 취하여 주제 간의 이행부에서 플루트 솔로가 인상적이었다. 이날 유독 목관이 안정적이었는데, 바순과 오보에 또한 뛰어난 연주를 들려주었다. 2악장은 느긋하며 명상적인 악장으로 자칫 지루할 수 있었지만, 벤스케의 해석 덕분에 중간 삽입부의 애처로운 코랄풍의 선율이 더욱 잘 드러났다. 교향곡이 대개 4악장으로 구성되지만, 이 곡은 3악장으로 끝나는 덕분에 3악장에서 활기차고 역동적인 스케르초*와 장중한 피날레가 결합 되어 나타난다. 스케르초가 후반부로 접어들며 호른이 연주하는 핀란드풍의 찬송가 선율이 특히나 인상적인 부분인데 실수가 조금 있었으나 다행히 큰 지장 없이 피날레까지 이어졌다. 이후에 비올라가 제시한 코랄풍 주제가 점점 고조되다가 마지막에 순차적으로 음이 하강하며 당당하게 마쳤다. 자칫 밋밋할 수 있었지만, ‘시벨리우스 스페셜리스트로서 벤스케의 흥미로운 해석과 이를 잘 따라온 악단의 연주력이 빛을 발했다. 코로나 19라는 상황 속에서 갑작스러운 연주회였고, 낯선 곡인 데다 연습할 시간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스케르초(Scherzo): 교향곡이나 현악4중주곡의 3악장으로 쓰이며 템포가 빠른 3박자, 격렬한 리듬, 기분의 급격한 변화 등을 보인다. 이외에 낭만파에서는 극적, 해학적 성격의 기교적 피아노곡을 지칭하기도 한다.

 

자주 연주되는 곡들은 명곡으로서 그 음악적 가치를 인정받았기에 그만큼 많이 연주되는 것이다. 물론 모두 훌륭한 곡들이다. 여러 번 들어도 감동을 선사하고, 처음에는 몰랐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듣던 곡만 듣다 보면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으며 그 안에 갇힐 수도 있다. 한편, 기존의 틀에서 이해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훌륭한 작품들이 조명받지 못할 수도 있다. 가령 우리가 흔히 음악의 아버지라 알고 있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도 당대에는 인정을 받지 못하다 후대의 연구 덕분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엘가의 첼로 협주곡(E. Elgar, Cello Concerto in E Minor, Op. 85)이 초연 당시에 혹평을 받았으나, 1965년 자클린 뒤 프레의 음반 덕분에 현재는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A. Dvořák, Cello Concerto in B Minor, Op. 104)과 함께 대표적인 첼로 협주곡으로 뽑힌다.

 

그러한 점에서 오스모 벤스케의 이번 공연 구성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처럼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 관객들에게 다양한 곡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악단의 실력 또한 쇄신하는 기회가 벤스케의 재임 동안 자주 있었으면 한다. 과거 임헌정 지휘자가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90년대 대한민국 말러 붐을 일으키며, 부천시향을 서울시향과 KBS 교향악단과 함께 국내 3대 관현악단으로 인정받는 위치까지 끌어올린 바 있다. 이처럼 서울시향이 오스모 벤스케와 함께 정명훈 시기의 황금기의 부활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 중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많은 발전이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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