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의료현장체험(ECE): 초심과 미래찾기
[독자] 의료현장체험(ECE): 초심과 미래찾기
  • 최민경 학생
  • 승인 2020.12.09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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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고등학생 때 꿈꾸던 나의 의사상은 약간 모호했다. 의료 현장 체험을 하면서 과거에 썼던 자기소개서를 읽어보니 응급의학과 의사가 돼서 해외 봉사 활동을 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서 목소리를 높이며 재난 의학에도 관심을 가지는 따뜻한 의사가 되겠다고 쓰여 있었다. 나름 그때는 고등학생이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상상하고 꿈꾸며 자기소개서를 쓰고 나만의 의사상을 만들어 냈던 것 같다. 대학에 와서는 이러한 꿈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과거의 꿈은 약간 접고 환자에게 공감하는 따뜻한 의사, 실력 있는 의사, 동료들과 함께하는 의사, 봉사하는 의사와 같이 현실적이긴 하지만 고등학생 때에 비해서도 모호한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이번 의료 현장 체험을 통해서는 이러한 모호한 목표를 조금은 더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게 되었다.

 

첫 번째로 봉사하는 의사에 대한 기준이 좀 더 명확해졌다. 지금까지 접했던 '봉사'는 자신의 평범한 삶을 포기한 채 봉사에 인생의 대부분을 투자하는 느낌이었다. 과거에 나의 꿈은 국경 없는 의사회에서 활동하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된다면 평범한 한국에서의 삶은 놓아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항상 품고 있었다. 의사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봉사이지만 경제적인 부분과 평범한 삶을 제쳐 두고 봉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최근에 많이 들었었다. 이번 의료 현장 체험 중 자선 병원 의사분들을 만나게 되면서 이러한 나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봉사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시는 분도 계셨지만, 중간중간 시간을 내서 봉사를 하는 분도 계셨다. 선배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봉사와 평범한 삶이 공존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과거 내가 생각하고 있던 해외 봉사도 그렇게까지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봉사의 방향과 대상에 대해서도 더 깊게 알 수 있는 기회였다. ‘울지마 톤즈시티 오브 조이를 본 후 동기들과 건강 불평등과 국제 봉사에 대한 토의를 함으로써 의사 개인이 의료 봉사자로서 가져야 할 덕목과 전 지구적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봉사뿐만 아니라 지역 의료 인프라를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에 확신이 들었다.

 

또한 환자에게 공감하는 따뜻한 의사라는 목표는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는 목표 중 하나였다. 이번 의료 현장 체험을 통해 가장 많이 얻어간 교훈이 공감하는 의사에 대한 부분이었다. ‘패치 아담스를 보면서 환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의사의 중요성과 전인 치료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전문가로서 환자를 지도하되, 권위 의식을 약간은 내려놓고 환자와 소통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또 위트를 통해서는 환자를 대할 때 둔감해지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환자를 계속 접하다 보면 환자를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으로 대하고, 연구 대상으로 대하면서 의무적으로 대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데 그럴 때 초기의 다짐을 떠올리며 반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수많은 환자 중 하나일 뿐이지만, 환자에게 나는 단 한 명의 의사이며 환자의 절실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리고 환자분들과의 만남에서 모든 환자분들이 의사의 말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하는 것을 통해 환자에게 공감하고 힘을 주는 것이 의사의 덕목 중 하나라는 것을 배웠다. 한 환자분은 주치의분의 자신을 믿고 따라오라는 말만을 믿으며 힘든 치료 과정을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또 다른 환자분은 '여기에 있는 모두가 암 환자라서 당신을 먼저 치료해줄 수 없다'라는 한 병원 관계자의 말에 충격을 받았지만, 다른 의사분의 위로와 따뜻한 말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수술 전 진심으로 응원하는 말과 기도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셨다. 이를 통해서 의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환자에게는 힘이 될 수도,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의사의 공감과 따뜻한 말들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환자의 치료 과정 전반과 심리적 안정에 중요한지는 잘 못 느끼고 있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단순히 병의 치료뿐만 아니라 환자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노력하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마지막으로 의료 현장 체험을 진행하면서 동기들과 일주일에 두세 번씩 줌을 통해서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동료들과 소통하고 함께하는 의사라는 목표에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함께 학과 공부를 하면서도 의견을 나누고 서로를 도왔지만, 의료 현장 체험을 통해서 의견을 나누는 것은 다른 느낌이었다. 학과 공부를 하면서 소통하는 것은 점수를 위해서라는 느낌이 강했다면, 의료 현장 체험에서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는 것은 미래의 동료로서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안락사, 연명치료, 건강 불균형, 의료계의 규율과 절차 등 민감하지만 꼭 알아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반대되는 의견을 듣고, 서로의 의견을 발전시켜 나가면서 생각이 많이 성장하게 되었다. 혼자라면 하지 못했을 건강 불균형 해결을 위한 수직적 접근의 문제점, 개인의 신념을 제도 안에 포함시키거나 제도가 잘못되었다면 제도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새로운 생각들을 해낼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환자의 치료뿐만 아니라 의료 자체의 발전을 위해서 동료와 협력하고 서로의 의견을 듣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의료 현장 체험은 지식을 쌓기 위한 과정보다는 미래에 내가 어떠한 의사가 되고 싶은지를 좀 더 상세하게 상상하고 그 상상과 비슷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를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아직은 많이 발전시켜 나가야 하지만, 고민을 시작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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