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지막을 결정할 권리, 누구에게 있습니까?
당신의 마지막을 결정할 권리, 누구에게 있습니까?
  • 한동균 기자
  • 승인 2020.12.30 0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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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죽음을 예전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치른다.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맞이하던 전통적인 죽음의 형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집이 아닌 병원에서, 가족들의 품이 아닌 의료진에 둘러싸여 생의 마지막을 기다린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한 해 사망자의 약 75%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병원에서 삶의 끝을 맞이한다는 통계 결과로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이들 중 상당수가 소생 가능성이 매우 낮음에도 연명치료를 받으면서 여생을 보낸다. 연명치료는 현대의학으로 더 이상 치료할 수 없어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을 말한다. , 이는 의사표시를 할 수 없는 환자에게 엄청난 고통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2009년 김할머니 사건을 통해 사회적 논의로 확장되었다. 해당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 이후, 우리나라 연명의료 결정과 관련된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 20162, 연명의료중단과 관련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었다. 과거에는 죽음에 대한 논의를 어려워하던 문화와 치료가 최선이라는 사회적 인식, 치료 중단상황과 관련된 병원 측의 법적인 책임회피 등 많은 걸림돌로 인해 자신의 죽음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제대로 보장되기 어려웠다. 하지만 해마다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의 작성 비율이 높아지고 환자의 주체적인 참여율 역시 높아짐에 따라, 환자 스스로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는 사례 역시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본 기사에서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비롯한 서식과 관련된 내용과 더불어 그러한 문서가 직접적으로 필요한 생애 말기 치료 현장에 대해 유형별로 구분하여 사례와 함께 다루어 보고자 한다.

 

환자가 작성할 수 있는 서식은 크게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로 분류할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의 성인이 작성 가능하며, 지정된 등록기관을 통해 작성 및 보관이 가능하다. 등록기관의 경우 보건복지부에서 지정한 병원 및 기관으로 한정되어 있으며 대표적으로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도 지속적으로 연명의료 관련 서식에 대한 관리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함께 보며 어떤 항목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그림 1 - 사전연명의료의향서)
(그림 1 -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먼저 서식의 등록번호와 함께 의향서를 작성하는 환자의 개인정보 작성란을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의향서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는 호스피스 이용 의향 유무란과 등록기관의 설명사항 확인, ‘환자 사망 전 열람 허용 여부에 대한 문항이 존재한다. 환자는 자신의 뜻에 따라 위의 문항을 작성하여 명시적으로 문서화할 수 있으며 등록기관 및 상담자에 대한 정보를 통해 지속적으로 서식을 확인하고 또 수정할 수 있다.

 

한편, 실제 의료현장에서 생애 말기 치료를 수행할 때는 수많은 윤리적 딜레마를 마주치게 된다. 그 구체적인 사례는 크게 연명의료결정과 치료중단, 심폐소생술(DNR)을 지시하는 일, 임종기에서의 영양 공급 및 수분 공급의 결정, 안락사 요청을 받았을 때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위의 경우 대처방안에 대한 의학적, 윤리적 논의가 일정 부분 진행된 사례가 존재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존재한다. 따라서 현재 실질적으로 마련된 법률적 근거와 보건복지부에서 제시하는 바람직한 절차에 대해서 소개하고, 그 사례를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연명의료결정과 치료 중단의 대표 사례이다.

<사례1>

76세 남자 L10년 전 중증 만성폐쇄성질환을 진단받고 흡입기관지확장제 등의 약물치료를 받고 있었다. 3년 전부터는 호흡곤란이 심해지고 폐기능 검사에서 고도 중증 폐쇄성 환기 장애 소견으로 악화되어 장기간 산소 치료를 받고 있었다. 1년 전부터 호흡곤란, 기침, 가래의 악화로 인해 입원 치료가 빈번해졌고, 6개월 전부터는 이로 인해 요양병원에서 지내고 있었다수일 전부터 기침, 발열, 화농성 가래가 증가하였으며, 항생제 치료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악화되어 L은 대학병원 응급실로 전원되었다. 응급실의 내과 당직의는 호흡곤란 등의 호흡기 증상의 악화로 인한 기도삽관 및 기계호흡 가능성에 대해 가족에게 설명하였고 가족들은 그 치료가 환자를 더 힘들게 할 것이라며 기계호흡 치료를 거절했다. 중환자실 입원 3일째 L의 호흡곤란이 더욱 악화되었다. 중환자실 담당의사는 L에게 호흡곤란이 심하여 이대로 두면 사망 가능성이 높으니 기도삽관 및 기계호흡을 해야 한다고 권고하였다. 환자는 의사의 권고에 동의하였고 의사는 곧바로 기도삽관과 기계호흡을 시행했다. 치료에도 불구하고 L은 저산소증 및 고탄산혈증 등의 객관적인 지표가 악화되는 소견을 보였고, 의식저하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졌다. L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것을 보자 가족들은 당장 호흡기 치료 중단을 요구하였다.

 

내과 전공의 안내서에 따르면, 위의 사례의 경우 담당의사가 판단하기에 환자의 상태가 회복 가능하며, 비록 회복 후에도 자가 산소에 의존해서 지내야 하지만 어느 정도 이전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의사는 치료를 지속하여야 한다. 담당의사가 중환자실에서 환자에게 인공호흡기 치료를 제안한 이유도 회복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환자의 상태가 바뀌어 환자가 임종과정에 있다고 판단된다면, 담당의사는 해당 분야 전문의 1명에게 환자의 상태에 대한 진단을 요청하며, 환자가 작성한 사전 연명의료계획서연명의료결정서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두 명의 의사에 의해 임종기 판단이 되었는데 환자가 작성한 문서가 없고, 환자의 의향을 알 수 없다면, 담당의사는 가족의 전체 동의를 받고 환자의 인공호흡기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이 해당 사례에 대한 의학적 결론이다.

 

사례 1과 같이 연명의료중단 등의 결정은 명확히 제도화된 시스템 하에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러한 결정 절차에 대한 구체적인 단계는 다음의 모식도를 통해 파악해볼 수 있다.

 

(그림 2 -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의 절차)
(그림 2 -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의 절차)

 

이어서 심폐소생술 금지(Do Not Resuscitate, DNR)에 관련된 사례이다. 심폐소생술(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CPR)은 다른 치료와는 달리 의사의 처방 없이도 시행될 수 있기 때문에, 만일 환자가 심폐소생술을 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사전에 환자의 의향을 알 수 있어야 한다. , DNR 여부는 사전 시행되어야 한다. 연명의료결정법 제정 이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을 통해 환자가 직접 CPR여부를 결정하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으며, DNR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역시 커지고 있다. 의사는 CPR에 의한 회복 가능성이 극히 낮은 고령의 환자나 말기의 환자에 대하여 환자 본인과 가족들에게 DNR 여부에 대해 상의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의 사례2는 심폐소생술 금지의 상황에서 의료진들이 겪을 수 있는 문제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예이다.

<사례2>

84세 여자 N은 중증 치매로 요양기관에서 돌봄을 받고 있다. 물이나 음식을 먹을 때 종종 기침을 했고, 입안으로 음식을 마구 넣으려는 행동이 관찰되어, 간병인의 수발로 식사가 이루어졌다. 어느 날 간병인이 다른 환자 음식 먹는 것을 도와주는 사이에 N은 자기 앞에 있는 음식을 입안으로 마구 넣었다. 발견 즉시 입안의 음식물을 제거하였으나 의사가 연락을 받고 달려 왔을 때, 기도 내에 음식물이 관찰되었고 이미 환자의 호흡과 의식이 없었다. 이미 가족들과 환자의 DNR에 대해 논의하고 DNR을 결정한 상태였으나, 낮시간까지도 문제 없이 지내던 환자가 갑자기 사망하게 되자 당황한 의료진은 가족들이 올 때까지 CPR을 시행하였다.

 

내과 전공의 안내서에 따르면, 위의 사례의 경우 N은 중증 치매에 연하곤란이 있어 언제든지 흡입성 가사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만약 이것을 가족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시켰다면 갈등이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때로 의사들은 가족에게 환자의 임종을 지킬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DNR 동의가 되었지만 가족이 올 때까지 환자에게 CPR을 하기도 한다. 가족들의 심정을 고려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환자가 받을 고통을 줄이기 위해 DNR에 동의한 가족들의 결정에 반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갑자기 나빠진 환자 상태에 대한 부담으로 의미 없는 CPR을 시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해당 사례에 대한 의학적 결론이다.

 

다음으로 임종기의 환자에게 제공되는 영양공급과 수분공급이 무의미한 연명의료인지 여부에 대한 여러 논란이 존재하는 가운데,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찬반논쟁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인공적 수단을 이용한 영양 및 수분공급 문제는 무의미한 의료인지 여부에서 굉장히 중요한 논쟁 주제이다. 먼저 인공적인 영양 및 수분 공급의 중단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식이와 수분공급이 돌봄의 기본적 치료임을 강조한다. 그들은 기본적 치료의 과정이 배제될 경우 환자에게 고통을 주며, 기본적인 돌봄조차 받지 못하는 환자가 생길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인공적인 영양 및 수분 공급의 중단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심각한 말기 상태의 환자에게 영양 및 수분 공급을 수행하는 것은 삶의 연장이 아니라 죽음의 과정을 연장시키는 것임을 강조한다. 그들은 중증 치매나 전이 암을 가진 환자들은 배고픔이나 목마름의 고통을 거의 느끼지 못하며 오히려 인위적인 급식튜브나 수분 보충 과정 등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임종기에서의 인공적인 영양, 수분 공급에 대한 다음의 사례를 살펴보자.

<사례3>

89세 여자 O8년 전 치매를 진단받고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다. O의 인지능력과 일상생활능력은 점점 저하되었고 약 1년 전부터는 거의 움직이지 못하며, 말도 하지 않았다. 식사도 혼자 할 수 없는 상태인데, 종종 입을 열지 않고 음식을 거부하기도 하였다. 주치의는 가족과 상의하여 O에게 L-tube를 이용한 경관영양을 시행하였다. 경관 영양을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O의 쇠약감은 점점 심해졌고, 더이상 가족을 알아보거나 주변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가족들은 L-tube의 제거를 요구하지는 않지만 가끔씩 의료진에게 치료를 지속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내과 전공의 안내서에 따르면, 위의 사례의 급식튜브를 이용한 영양 공급은 중단 가능한 치료의 논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연명의료결정법에 명시적인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공적 영양 및 수분공급의 기간이 길어지면서 일부의 가족들은 치료 중단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 사례는 다행히 의사와 가족 사이에 의견이 충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때 식사를 거부하였고, 경관 영양에도 불구하고 점점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환자를 돌보면서 의사와 가족은 무엇이 환자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내적 갈등을 경험한다. 의사는 튜브를 이용한 영양 및 수분공급을 유지하되 환자가 편안할 수 있도록 그리고 욕창 등의 합병증이 발생하지 않도록 자세를 자주 바꿔 주고, 청결을 유지하며, 통증이 의심된다면 진통제 처방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의사는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할 지에 대해 가족들과 미리 상의하 것이 바람직하다.

 

연명의료결정법에서는 통증 완화를 위한 의료행위, 영양분 공급, 물 공급, 산소의 단순 공급은 중단할 수 없다. (19)’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의식 없이 장기간 인공적인 영양 및 수액 공급에 의존하는 환자들을 돌보는 의료진과 가족들은 환자의 생존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환자의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 후회 등 많은 감정들을 경험하게 되며 무엇이 진정으로 환자를 위하는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의료진의 차원에서는 중단할 수 없는 치료라는 입장으로 감정적인 부분을 무시하기보다는 환자를 편하게 하는 방향이 무엇일지에 대해 고민하고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의료현장에서 꽤 자주 발생하는 안락사 요청에 관한 사례이다. 의사조력자살(Physician Assisted Suicide)이란, 죽음을 원하는 환자에게 의사가 사망을 위한 지식이나 수단을 제공하여 환자의 죽음을 돕는 행위로, 안락사의 한 종류로 구분된다. 연명의료의 중단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안락사의 경우, 죽음의 직접적 원인이 질병이 아닌 의학적 수단의 인위적 개입에 의한 것이다. 말기의 환자들은 의료진에게 죽고 싶다는 표현을 빈번하게 하지만, 이것은 환자가 죽음 자체를 원한다기 보다는 고통과 두려움으로 점철된 불안정한 현재상태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의사는 이에 대해 조금 더 나은 의료행위와 편안한 상태를 제공해주는 적절한 돌봄으로 응해야 한다.

 

다음의 사례는 실제 의료 현장에서의 실제 사례이다.

<사례4>

35세 여자 P는 위암이 뼈 및 복막으로 전이되어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였다. 고용량의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하여 통증은 조금 나아졌으나 복부 불편감, 구역, 구토 등의 소견이 관찰되었다. 얼마 후 다시 통증이 심해지고, 혼자 돌아누울 수조차 없을 정도로 기운이 없어졌다. P는 주치의를 볼 때마다 빨리 죽을 수 있는 약을 달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내과 전공의 안내서에 따르면, 의사는 환자의 안락사 요청에 응해서는 안 되며, 환자가 호소하는 불편함 및 통증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환자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알리고, 남은 기간을 좀 더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돕겠다고 이야기해볼 수 있다. 또한 전문적으로 말기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호스피스를 제안함과 동시에 환자가 임종기에 원치 않는 연명의료를 받지 않도록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 두어야 한다.

 

위의 사례처럼, 의료진은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음을 환자에게 알리고, 왜 죽음을 앞당기고자 하는지 그 동기를 물어보아야 한다. 또한 환자들이 원하지 않는 연명치료를 받지 않도록 연명의료계획서를 소개하고 함께 작성해야 하며, 호스피스 의료 등을 통해 적절한 돌봄이 제공되도록 해야 한다. 의료진은 환자의 안락사 요구를 무조건 회피하기보다는 환자가 겪는 어려움에 대해 진심으로 공감하고 남은 시간을 고통 없이 지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누구나 죽음이라는 문턱을 지나야 하지만, 그 문턱을 지나는 모습이 모두 같을 순 없다. 내가 어떤 병으로, 어떤 사고로 죽음을 맞이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은 일상과 동떨어져 보이는 죽음에 대해 조금 더 실존적으로 고민해 볼 수 있게 한다. 나의 죽음을 존엄하게 결정할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아름다운 마지막을 내 손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또 다른 축복일지도 모른다.

 

*위의 기사에서 소개된 사례와 의학적 견해들은 내과 전공의 의료윤리 사례집에 근거하여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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