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끈끈한 예술을 위한 열정.. 다큐멘터리 감독, 이창민 교수 인터뷰
[인터뷰] 끈끈한 예술을 위한 열정.. 다큐멘터리 감독, 이창민 교수 인터뷰
  • 이성언 기자
  • 승인 2021.01.19 0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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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민 교수는 이번 학기 처음으로 가톨릭대학교에 출강했다. 신학과를 졸업했지만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기 위해 늦은 나이에 예술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어느 사진가의 기억>, <광장>, <디어 앨리펀트> 등을 연출했고 PD로서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그의 삶과 다큐멘터리, 예술의 측면에 대해 살펴본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출처-게티이미지뱅크

 

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학기부터 가톨릭대학교에서 다큐멘터리기획개론을 강의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감독 이창민이라고 합니다.

 

이창민 교수님께서는 신부가 되길 희망하셨지만, 이후에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진로를 바꾸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꿈을 가지시게 된 건가요?

어린 시절부터 저의 꿈은 신부가 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가톨릭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지만 어느 순간 저에게는 성소(聖召), 즉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나는 가톨릭 신부가 될만한 사람이 못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성직자가 되기를 포기했습니다. 이후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나 고민했었어요. 그러던 중에 저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신학생 시절에 가깝게 지내던 민병욱 다큐멘터리 감독님에게 고민 상담을 했어요. 감독님께 영상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하니까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를 추천해주셨어요. 이후 한예종에 대해 알아보니 제가 존경하는 감독인 김동원 감독님이 한예종 영상원에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한예종 영상원에 진학하여 방송영상과에서 다큐멘터리를 전공하게 됐죠.

 

많은 장르 중에서 특별히 다큐멘터리를 전공으로 삼게 된 이유가 있나요?

원래 제가 다큐멘터리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김동원 다큐멘터리 감독님을 존경해서 그 밑에서 공부한 것도 있어요. 하지만 사실 저는 다큐멘터리만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극영화만 고집하지도 않죠.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는 각각 고유의 매력이 있거든요. 극영화는 감독이 세계관을 창작한다는 매력을 가지고 있어요. 이와 달리 다큐멘터리는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삶, 그 자체를 잘 보여줘요. 저는 그런 다큐멘터리의 매력이 가치가 있고 이야기해볼 만한 것이라고 느꼈어요.

 

더 나아가서 다큐멘터리라는 게 단순히 사람의 삶만을 재현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세계에서 사라지는 것들 혹은 사라질 것들에 대한 재현을 담기도 해요. 그런 것 또한 매력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평소에 다큐멘터리의 가치, 양식과 같은 것들을 계속 고민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를 선택하게 된 것 같아요.

 

꿈을 위해 늦은 나이에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되었는데, 학교생활은 어땠나요?

학교에 다니면서 영화감독으로서 버틸 수 있을 만한 기술들을 많이 익히려고 노력했어요. 예를 들면 촬영, 편집, 혹은 색보정, 사운드믹스 같은 것들이죠. 기술들을 많이 익혀서 졸업하고 제작스태프로 참여해서 먹고살았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것들이 있으니까 스태프 일을 하는 것도 즐거웠거든요. 내가 가진 기술로 생활비를 벌고 하고 싶은 작업도 한다는 게 좋았어요.

 

졸업작품이자 첫 장편 작품으로 <어느 사진가의 기억>을 찍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느 사진가의 기억>은 어떻게 찍게 되었나요?

학교에 성격이 괴팍하고 이상한 할아버지가 있었어요. 한예종에서는 교수님을 교수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선생님이라고 많이 불러요. 그런데 어느 날 누가 그 이상한 할아버지가 선생님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 할아버지의 성함은 김영수 선생님이었고 사진을 가르치셨어요. 김영수 선생님께서는 나이 많은 신입생인 저를 신기해하셨어요. 이후 저는 선생님이랑 이야기도 많이 하고 사진을 배우기 위해 따라다니기도 했어요.

 

저는 늦은 나이에 예술학교에 입학해서 예술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좋은 예술가가 되는지 막막했어요. 사실 물어본다고 대답이 있는 질문들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따라다니면서 그 사람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동안 제가 가진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김영수 선생님을 찍기로 결심한 거예요.

 

김영수 선생님께 1년 동안 촬영하기로 약속하고 그해 가을부터 촬영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겨울에 선생님 건강이 안 좋아지시더니 봄에 암이 재발했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이듬해 5월에 세상을 갑자기 떠나셨어요. 그래서 많이 방황했어요. 1년 동안 작업을 이어가지 못했고 스태프 일을 하면서 남은 작업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어요. 그리고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2주기가 됐을 때 추모전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카메라를 챙겨서 2주기 추모전을 찍기 시작했어요. 그 와중에 운이 좋게도 DMZ국제다큐영화제 제작지원이랑 한국예술문화위원회에서 지원을 받게 되었어요. 추모전을 찍으면서 선생님의 지인들을 인터뷰하고 추모전을 영상으로 담아서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또다시 좌절이 왔어요. 어떻게 다시 시작은 했는데 이제는 편집이 안 되는 거예요. 막상 다시 시작했지만 아무 의미 없는 것 같고 만들어서 뭐 하나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에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개원 40주년 기념 영화제를 했거든요. 그때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특별전을 했는데, 집에서 가깝고, 무료이고, 편집도 하기 싫으니까 매일 가서 영화를 보다가 문뜩 생각이 들었어요. 오즈처럼 영화를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나 나름대로 삶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시하는 게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다큐멘터리를 마무리 지어 20148월에 영화가 나오게 되었죠.

 

예술의 의미를 알기 위해 <어느 사진가의 기억>을 제작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는데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요?

사실 예술이 무엇인지 죽을 때까지 알기 힘들 것 같아요. (웃음) 예술에 대해 저 나름대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있긴 해요. 일단 저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관심이 많아요. 세계의 변화를 영화라는 매개에 담아서 재현하고 또 관객들이 그것을 보면서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는 것이 제가 작품을 만드는 의의라고 생각해요.

 

예술가들은 자신의 주제 의식을 여러 소재를 통해서 자신만의 형식으로 세상에 내어놓는 사람이에요. 저의 은사이셨던 김영수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 중에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어요. “나는 반짝하고 시대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적인 것들보다는 끈끈하고 깊이 스며드는 본질적이고 영구한 사진을 찍겠습니다.” 그런 끈끈한 것들을 만들고 싶기도 해요. 제가 김영수 선생님께 건강을 회복하면 어떤 작업을 하시고 싶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선생님은 자신이 처음 만들었던 <현존>이라는 작품의 30년 이후의 모습을 담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때 깨달았던 게 작가의 주제 의식은 처음부터 형성되는 것이고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사실 집에서 눈만 돌려도 김영수 선생님의 흔적이 많아요. 내년이 김영수 선생님의 10주기가 되는 해인데요. 여러 가지를 준비해서 선생님을 기억하고 싶어요. 예술가가 죽고 세상에 남긴 작품은 계속해서 누군가와 상호작용해요. 작품을 보고 누군가가 예술가의 정신을 계승하고 작업을 이어간다는 것이 예술의 중요한 한 측면인 것 같아요.

 

많은 학생들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과 좋아하는 일에서의 갈등이 많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그런 고민이 많겠죠. 내가 어떤 일을 잘할 수 있는지 없는지. 그런데 사실 잘할 수 있는 것도 해보기 전까지 잘 모르는 경우도 많아요. 또 때로는 쉽게 얻어지는 직업에 만족하면서 살 수도 있어요. 저는 그런 것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책임감인 것 같아요. 만약 어떤 직업을 갖게 된다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소명 의식을 가지고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자신이 잘하지 못하고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일들을 계속하면서 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전통적인 개념에서의 직업의 의미가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기본적으로 산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질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무엇을 하면서 살 때 행복한지 또 소명 의식을 가질 수 있는지 먼저 생각해야 해요. 그냥 단순히 취업 준비하는 것보다 소명 의식을 가지고 취업을 준비하는 것은 다르거든요. 사실 어떤 일을 하든 힘들어요. 쉽고 재미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일은 없어요. 중요한 건 책임과 열정을 가지고 끝까지 가보는 마음이에요.

 

마지막으로 가톨릭대학교 학생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번 학기에 처음으로 가톨릭대학교에서 강의했습니다. 또 처음으로 예술학부 학생들 이외의 일반학부 학생들에게 강의했는데요. 학기 동안 가톨릭대 학생분들이 예술학부 학생들 못지않게 열정적이고 강한 창작 의지를 갖추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만약 가톨릭대학교 학생 중에 다큐멘터리감독이 되길 바라는 분이 있다면, 꼭 용기를 가지라고 말하고 싶어요. 스스로 좋은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확신은 없지만, 저는 자신의 이야기가 있다면 꼭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할 수 없는 이야기와 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누구든 남들과 다르고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면 좋은 다큐멘터리감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꾸준히 정진하면 좋은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너무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면 목표 지점에 하루빨리 도달하기 위해 조급해하고 힘들어하지 않아도 됩니다. 한발씩 나아가면 언젠가 반드시 목표에 도달하게 될 테니까요. 저 역시도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고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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